“5월엔 TV 끄고 가족과 대화 많이 하세요”
가족 간의 단절, 마음 터놓고 대화를 통해 해소해야
‘2012년 방송매체이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TV시청자들은 하루 평균 3시간 9분 스마트폰 이용자들은 하루 평균 1시간 57분을 각 매체의 시청에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8시간 수면시간을 제외하면 1년에 68일 간을 TV에 사로잡혀 있는 셈이다. 이를 평생으로 계산하면 우리는 10년 동안 TV를 본다는 조사도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TV가 대화를 단절시킨다는 느낌을 누구라도 한번쯤 가져보았을 것이다. 이번 5월에는 가족들과 함께 TV를 끌고 대화의 자리를 마련해 보자.
집에서 TV를 끈 지 8개월째인 세 사내아이의 엄마 이경임씨는 틈만 나면 TV앞에서 혼을 빼는 아이들에게 TV보다 나은 오락거리며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자니 고민거리가 많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이들이 심심하면 책을 찾고 종이접기 등 학습 습관이 붙는 놀이에 관심을 갖는 것을 볼 땐 8개월 전 ‘결행’이 스스로 대견스럽기만 하다.
TV를 끄기 전 전업주부인 이 씨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 아이와 유아원생 둘과 하루 하루를 전쟁 치르듯 보냈다. 은행에 다니는 남편의 귀가는 대개 아이들이 잠든 후다. 같이 사는 친정어머니가 집안 살림을 도와주기는 하지만 항상 힘에 부쳤다.
그래서 지치고 피곤할 땐 애들을 모아놓고 TV를 켰다. TV 앞에선 싸움도 멈췄고 놀랍도록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TV를 볼 때 엄마가 말을 걸면 짜증을 낼 정도였다. 엄마의 존재가 필요 없는 시간이 됐다. TV는 편안한 시간을 보장하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러나 평화는 잠깐 뿐. 가장 큰 문제는 한 번 켜면 쉽게 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TV 앞으로 몰려들고, 얼마 지나면 채널 다툼에 우는 놈이 생긴다. ‘TV 그만 보라’는 엄마의 목청이 덩달아 높아지는 건 당연지사다. TV 앞 휴식과 전쟁이 반복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여느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이 씨의 최대 관심사는 교육이다. 그런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어느 날 갑자기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익히는 데 중점을 두고 있지만, 지금 하는 것은 그 반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아들 셋 모두를 보낸 숙명여자대학교 부설 숙명유아원이 펼친 ‘1주일 간 TV 안 보기’에 주변의 권유로 참여했다. 처음엔 큰 기대 없이 다만 얘들이 잘 따를까 걱정을 했지만 별 저항 없이 그런대로 넘어갔다. 남편 도움도 컸다. 주말에 함께 산책을 가 ‘TV의 안 보기 체험’의 의미를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남편의 몫이었다.
비록 1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막상 TV를 끄니 느끼는 게 의외로 많았다. 우선 엄마로서의 반성이다. 혼자 편하자고 아이들을 몇 시간씩 TV에 몰아넣는 것은 일종의 방치 아닌가 하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이와 함께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려면 스스로가 먼저 교육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아이들과 함께 독서와 만들기 등 오락거리를 찾으면서 부모로서 부족함을 느끼게 됐고,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해 인근 도서관도 찾게 됐다. 가족생활 자체에 긍정적인 변화가 왔다.
TV 안 보기 체험 후 이 씨는 먼저 리모컨을 던져 버렸다. TV 보기를 어렵게 하기 위한 1단계 작전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별 효과가 없었다. 말이 TV를 가려서 보고, 절제해서 보는 것이지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가 나올 때까지 켜 놓기가 다반사였다. ‘어른들도 이러한데 아이들은…’에 생각이 이르자 결단을 내렸고, 지난해 10월 마침내 실행에 옮겼다. 거실 상석에 버티고 있던 TV를 외조부모 방으로 옮겼다. 아이들에게는 TV가 고장이 나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아직 TV에 덜 중독된 탓인지 TV 보자며 심하게 조르는 아이는 없었다. 이제 TV는 할아버지, 할머니만 볼 수 있게 됐다.
TV가 있던 자리에 놀이 탁자를 놓고 방에 있던 큰 아이의 책상을 거실로 옮겼다. 거실 바닥에는 세계 지도를 딱하니 깔았다. TV를 치우니 공간도 꽤 넓어지고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무엇보다 집안이 학습과 놀이 중심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TV 치우기는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예전에는 되는대로 하루를 보냈으나 이제는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특히 아예 TV를 안 보는 주말에는 왜 그렇게 하루가 긴지 며칠 전부터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만 했다.
계획을 짜다 보니 당연히 남편과 의논하게 돼 자연스레 대화도 늘었다. 예전에는 서로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제는 ‘건설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해 대화 자체를 즐기게 됐다. 또 공연 할인권 같은 것도 예사로 보아 넘기지 않게 되는 등 각종 형식의 문화를 직접 접하는 기회도 늘었다. 전에 비해 돈이 조금 많이 들지만, 얻는 것에 비하면 얼마든지 감수할 정도다.
이 씨는 무엇보다 아이들 학습 습관이 제자리를 잡아 가는 모습에 대만족이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큰 아들 성빈이는 책 읽는 습관이 붙었고, 책상에 앉아 훨씬 오래 버티게 됐다. 또 수첩을 들고 다니며 시도 때도 없이 무얼 적는다. 기록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통솔력도 생겼다. 조그만 일에도 다투었던 것에서 벗어났다. 의젓해진 것이다.
이 씨는 거의 매일 아이들과 함께 ‘TV 안 보기’를 실천하고 있는 가족들이 모이는 효창공원에 간다. 그곳에서 서로 애들 교육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등 온갖 이야기를 나눈다. 가족 단위의 동아리 활동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까지 생활에 활력과 리듬이 붙었다. 요즘 이 씨는 도서관족(族)이 됐다. 애들 책은 물론이고 자신의 읽을거리를 찾아 동네 교회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을 일주일에 두세 차례 찾는다.
TV를 안 보면 인기 드라마가 화제에 오르는 모임에서 소외감을 느끼거나 큰 사건의 실시간 정보가 궁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이 씨의 생각은 의외로 간단하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 궁금하면 신문 읽고 인터넷 보면 되고, 드라마에 괜히 애간장 녹일 일 없다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 즐기는 가족여가 문화가 뜬다
주5일근무제의 실시는 우리생활의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자극적인 밤의 문화보다는 자연환경에서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는 낮의 문화가 선호되고 있는 것.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여가활동이다. 과거에 ‘나’ 중심에서 ‘가족’중심으로 변화하면서 기존의 외식·놀이문화 등이 가족단위로 자연스럽게 변화했고, 각 지자체 등에서도 가족을 테마로 실시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단순히 눈으로 즐기던 관광문화가 이제는 교육적 가치에 비중을 둔 체험관광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주말을 이용해 아이들과 함께 배우며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장소를 찾아 떠나는 가족들이 많다. 이밖에 생태체험학습장인 여의도 샛강생태공원과 자연과 역사문화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몽촌토성, 아차산 생태공원도 아이들과 함께 가볼만한 곳 중 하나며 직접 작물재배를 할 수 있는 주말농장도 인기다.
이러한 문화를 겨냥해 찜질방, DVD방 등도 가족단위를 위한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여가체계가 2박3일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리조트, 콘도미니엄 등 레저형태의 문화도 가족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주5일근무제 시행 5년, 대부분의 기업체들이 주5일근무제를 시행함으로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즐길 거리를 찾아 떠나는 가족이 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전통과 자연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은 물론 가족을 위한 공원 등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전통테마마을로 지정 운영되고 있는 남해 다랭이 마을, 산청 예담촌, 의령 산천렵마을 등 은 주5일근무제 정착 이후 온 가족이 함께 방문하는 수가 꾸준히 늘었다. 수림이 울창하고 풍광이 뛰어난 경기도 내 산림지역에도 다양한 여가·휴양시설이 잇따라 조성되고 있다. 현재도 용인, 가평, 포천 등지에서 자연휴양림을 비롯해 수목원 숲체험쉼터 등의 조성사업이 속속 진행되고 있다.
방 문화, 이제는 가족을 테마로 새롭게 변신
가족단위를 겨냥해 새롭게 태어난 DVD방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과거 음지의 문화공간으로만 여겨졌던 DVD방에서 탈피해 이제는 가족단위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쾌적하고 건전한 곳으로 거듭나고 있다.
강남의 한 DVD방은 웬만한 극장 로비 못지않은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웹서핑이 가능한 PC는 물론 각종 잡지 및 미니바까지 구비되어 있다. 팝콘은 무료로 제공되며 테마별로 수성·금성·지구 룸 등으로 마련되어 있다.
DVD방 관계자는 “최근 들어 DVD방에 대한 인식도 많이 좋아지면서 가족단위의 고객이 많이 늘었어요. 예전에는 주말에 젊은 남녀 고객들이 주를 이뤘지만 요즘에는 가족단위로 찾아오는 고객들도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찜질방의 경우 가족 단위로 이용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곳 중 하나로 최근 찜질방을 보면 노래방, 서점 등을 구비하며 단순히 목욕이나 땀을 빼기위해 찾았던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시설을 구비해 가족단위 문화공간으로 급부상 하고 있다. ‘다목적 웰빙 찜질방’의 가장 큰 장점은 모임은 물론 운동, 독서, 오락 활동 등 다양한 여가시설을 한 곳에서 접할 수 있어 가족 문화 공간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신도시 지역의 경우 문화공간을 갖춘 대형 찜질방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그 중 지난 2005년 문을 연 한 찜질방은 휴게실을 비롯해 서점, 헬스장, 노래방, PC방, 안마시설, 피부관리실, 네일아트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가족단위고객을 위해 매주 노래자랑 이벤트를 펼치고 있다.
이곳을 찾은 김모 씨는 “찜질방은 아줌마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곳으로 여겨왔는데 의외로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많아 좋아요”라고 말했다.
찜질방의 한 관계자는 “주5일근무제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학생들은 물론 직장인, 가족단위 모임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중계동의 찜질방도 넓은 공간으로 가족과 함께 피로를 풀기엔 좋은 곳이다. 야생화가 피어난 야외 휴게실과 테마방인 굵은 광염으로 뒤덮인 소금방, 동굴방 등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인기다. 특히 옥상공원은 가족이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으로 가족단위 고객이 많이 찾는다.
이곳을 찾은 김모 씨는 “옥상공원에서 하늘도 보고 산도 보고 서울 같지 않아서 좋아요. 연인, 가족 모두에게 좋은 곳이에요”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주5일근무제 실시이후 외식문화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강북구 수유동의 스테이크 전문점으로 유명한 패밀리레스토랑은 토요일 오후면 가족단위 또는 또래나 연인끼리 외식을 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주5일근무제가 전 기업으로 확산되면서 부엌에서 장시간 음식을 장만하기 보다는 간편하게 외식을 즐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때문에 외식업계에서도 이를 겨냥한 다양한 메뉴나 이벤트를 마련하고 있다.
대화로 ‘마음의 문’ 연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를 복원하는 프로그램들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그 관계 복원의 핵심은 올바른 대화법. 김용수 (사)부산건강가정운동본부 대표는 “부모가 자녀에게 상처 주는 말을 골라서 하는 원인은 ‘부정적 사고의 중독’에 있다”고 진단했다. 때론 의식적으로 잘해 주고자 결심하기도 하지만 막상 자녀를 만나는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부정적인 사고와 태도가 앞서게 된다는 것이다. 자녀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이에 따라오지 못하는 현실과의 갭(gap)에서 느끼는 상실감이 자녀에 대한 부정적인 사고와 태도를 만든다. 또한 자신이 갖고 있는 결점이 자녀에게서 똑같이 발현되는 경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고 자녀가 이를 바꾸지 못하는 동안엔 계속 자녀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드러내게 된다.
교육학자인 몬테소리가 “청소년을 원고로 해서 법정을 만들면 첫 번째 피고가 어머니요, 두 번째 피고는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연승 경성대 유아교육과 교수도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는 훈육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우리 아이들의 영혼과 정신을 해치지 않으면서 어떻게 아이들의 의지를 바람직하게 형성시키는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부모-자녀 간 대화를 복원하는 방법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이 교수는 첫째, 자녀의 얘기를 적극적으로 경청하려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녀가 부모와 대화하려고 할 때는 부모에게 문제를 이야기하고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다는 뜻인데 부모들은 이를 자신의 기준이나 관점으로 재단하고 또 강요하려 하기 때문에 부모와의 의사소통을 피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또 자신의 반응을 보일 땐 반드시 ‘나 전달법(I-message)’으로 말해야 한다고 했다. “너는 왜 늘 그러니”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네가 그렇게 하니 엄마 마음이 아프구나”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녀들이 스스로를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하게 되는 것도 미연에 방지하게 된다.
때론 직접적이고 단호한 대화도 필요하다. 늘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화해야 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선 단호하게 잘못된 행동을 지적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와 함께 사소한 것에도 ‘기쁨과 감사의 표현’을 해보려 하는 것 도 부모-자녀 간 대화를 복원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