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 천안함 다큐멘터리 상영금지 검토여부 논란
최종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 놓아야
존 F. 케네디의 암살은 미국 현대사의 최대 미스테리 가운데 하나다. 케네디 암살 직후 미국 정부는 당시 워렌 대법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워렌 위원회’를 꾸려 진상조사에 나섰다.
이 위원회는 1년에 걸친 조사 끝에 이른바 리 하비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으로 결론내리고 사건을 종결했다. 하지만 조사결과는 오히려 의혹만 증폭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미국 대통령의 암살 사건이 한 개인의 단독범행이라는 결론 자체가 납득이 가지 않았는데다 암살범으로 지목된 리 하비 오스왈드는 물론 잭 루비 등 케네디 암살에 연루된 관련자들이 잇달아 목숨을 잃었음에도 여기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워렌 위원회 발표 이후 한 세대 가까운 시간 동안 의혹만 꼬리를 물고 제기돼 오다가 1991년 한 영화감독에 의해 수면위로 떠오르기에 이른다.
‘플래툰’, ‘7월 4일생’ 등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를 잇달아 내놓으며 헐리웃의 지성파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올리버 스톤은 ‘JFK’를 통해 케네디 암살을 둘러싼 의혹을 집중 조명한다. 그는 이 영화에서 놀라운 주장을 제기했다. 그가 제기한 주장의 핵심은 ‘케네디 암살은 베트남전 확전을 노린 군산 복합체의 음모’라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가설의 유력한 근거로 먼저 워렌 위원회의 진상조사가 진실을 은폐하는 방향으로 치밀하게 기획됐다는 점을 들었다. 그가 제시한 두 번째 근거는 케네디 서거 후 린든 존슨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면서 베트남전이 전면전으로 확대됐다는 사실이었다.‘JFK’의 여파는 대단했다. 무엇보다 그동안 의혹만 무성했던 케네디 암살 배후를 군산복합체로 직접 지목한 대목이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영화적 재미를 위한 가설로 치부할 수만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첫 번째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영화 중반 케네디가 머리에 총탄을 맞는 장면을 삽입했다. 이 장면은 워렌 위원회가 내린 결론, 즉 케네디가 후두 부위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는 결론에 의문부호를 찍기에 충분했다.
두 번째 가설의 타당성을 살피기 위해선 역사적 맥락을 되짚어 보아야 한다. 취임 초만 해도 케네디는 피그스만 공습을 감행할 정도로 소련과의 대결정책을 추구했다. 그런데 이런 대결성향은 쿠바 미사일 위기를 계기로 극적으로 반전됐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과 소련의 군사적 긴장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미·소의 전면전은 필연적으로 핵전쟁을 부를 수밖엔 없었고 핵전쟁은 인류의 공멸을 의미했다. 이 같은 인식에 이르자 케네디는 방향을 급선회해 소련과의 화해를 모색했다. 베트남 철수 움직임도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 같은 조치는 냉전 강경론자들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했다. 올리버 스톤은 케네디 암살 전후의 역사적 상황을 전제로 깔고 자신의 음모론을 전개했고 그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었다.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 1985'로 사회 부조리를 고발한 정지영 감독이 천안함 사건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를 제작해 화제다. 정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국방부는 4월30일 “천안함 폭침사건의 원인을 좌초 또는 충돌이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국민에게 혼란만 초래한다”면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 정부는 2010년 5월 공식발표 이후 ‘북한의 어뢰공격에 의한 폭침’이란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2011년 7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천안함 침몰원인에 대한 정부발표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33.6%에 그쳤다. 역으로 따지면 66%에 이르는 국민들이 정부발표에 의문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올리버 스톤의 ‘JFK’는 베일에만 가려져왔던 케네디 암살 의혹을 전면 재조명하는 기폭제가 됐다. 이 영화가 개봉되자 케네디가 암살된 텍사스주 델러스시 당국은 1992년 1월 시경찰국이 봉인해 관리해 온 2,500건의 수사 자료를 공개했다. 제럴드 포드 前 대통령도 케네디 관련 비밀자료의 기밀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천안함 프로젝트’의 제작자인 정지영 감독은 군의 대응에 당혹스러워하는 눈치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방부가 이렇게까지 대응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영화가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군의 명예를 훼손시킬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의혹만 무성했던 천안함 침몰사고의 원인 규명에 기여할 것인지는 궁극적으로 관객들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