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영향을 줄이고 전력 신뢰도는 높인다

전기학계 100년 숙원 HVDC 차단기 개발, 미래 전력망 구축 한 단계 앞당겨

2013-04-02     김미란 기자

전기가 만들어지고 가정, 빌딩, 공장에 이르기까지 발전된 에너지의 80%가 소실된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전기는 당초 발전된 양의 20%일뿐이다. 그만큼 발전하고 송·배전하는 과정에서 많은 전기가 소실된다. 전세계적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에너지 수요에 비해 공급이 충분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은 중요한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 산업과 빌딩, 가정에서 고효율 제품을 사용하고 최적화 하는 것도 전력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한 예로, 전기의 40%를 산업계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 중 2/3은 전기모터를 구동하기 위해 사용된다. 필요에 따라 동작하는 것이 아니라 365일 같은 속도로만 구동되는 모터는 최대 에너지 소모기기다. 이때 인버터를 사용하면 모터를 필요한 만큼 구동하도록 제어해 불필요한 전기소모를 줄인다.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인 ABB는 전력 및 자동화 기술 분야의 선도 기업으로서 환경의 영향은 최소화하면서 유틸리티 및 산업 고객의 생산성 향상에 노력하고 있다. ‘환경으로의 영향을 최대한 줄이면서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ABB의 목표다.

스웨덴과 스위스의 초국가적 기업통합
ABB로 새롭게 탄생하기 전 아세아는 스칸디나비아 시장에서, 브라운 보베리는 독일과 프랑스 시장에서 선두자리를 확보하고 있었다. 두 기업 모두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기업이었다. 그런 두 기업이 합병해 140여 개국에서 850개 법인체를 중심으로 170억 달러 규모의 매출을 기록하는 세계 46위 거대 기업으로 탄생한 것이다. 특히 이들의 합병은 인수나 출자가 아닌 초국가적 기업통합이라는 점에서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아세아의 사장을 역임하다 합병으로 ABB의 대표이사가 된 퍼시 바네빅 회장은 합병 후 본사를 스위스 취리히로 옮겼다. 스웨덴 회사가 스위스 회사를 인수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동시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규모의 경제를 최대한 활용해 비용을 낮추고, 현지 상황에 맞는 제품을 제작하고, 현지 인재를 확보하는 방안을 도입했다. 또한 빠른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해외자회사 중심의 분권화를 실행했다. 단 중앙집권적 통제는 유지했다.
ABB의 규모의 경제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T-50(Time-Based Competition-50) 프로젝트다. 주문, 디자인, 설계, 제조, 수송 등 총 사이클 타임을 줄여 50%까지 단축하는 T-50은 조직을 프로세스 중심을 재편해 복합적 기능의 팀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는 곧 이익센터의 내부까지 분권적, 자율적 원리를 일관되게 적용하는 것으로 기능을 통합하고 이로써 각 부문의 정보가 프로젝트에 따라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올리게 되는 것이다. T-50는 단순히 스피드를 올리는 것만이 아니라 고객과의 긴밀한 접촉, 고객으로부터의 빠른 정보 피드백을 구조화한 것이다.

경쟁력을 높이는 글로벌 매트릭스조직
바네빅 회장은 개인과 조직의 활력을 이끌어내는데 주안점을 뒀다. 그의 조직개혁은 각 개인의 활력을 향상시키고, 한 나라에만 기반이 있던 사업을 글로벌 비즈니스 플랫폼에 올려 연결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이에 조직을 얇고 작은 집단으로 세분화했다.
ABB의 본사는 규모가 작다. 이는 본사의 기능이 각 사업부 및 자회사의 활동을 조정, 평가,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대외적인 커뮤니케이션과 섭외활동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장기 비전과 장기 전략을 세우고 경영자원을 통합하는 기능을 한다. 실제 경영의 최고 의사결정은 그룹경영위원회가 한다. 이 위원회는 발전기기, 송전·변전·배전, 산업기기·빌딩시스템, 수송기기, 금융서비스로 나뉘는 다섯 개 사업영역의 각 총괄부사장과 3명의 각 지역총괄책임자로 이루어져 있다. 한 예로 송전사업의 매트릭스조직의 경우, 스위스 취리히에서 고전압 스위치를 만드는 자회사 사장은 스위스지역 송전사업본부장에 보고한다. 스위스지역 송전사업본부장은 스위스의 모든 현지법인 총괄본부장과 전 세계 송전사업 총괄본부장에게 보고하고, 고전압스위치 총괄본부장도 스웨덴 송전사업본부장과 전 세계 송전사업 총괄본부장에게 보고한다. 이와 같이 ABB의 글로벌 매트릭스조직은 지역별, 제품별 사업부문을 상호 독립적으로 동등하게 운영하고 사업부문의 관리자와 제품부문의 관리자는 서열상 동일한 지위에 있다.
사업영역의 밑에는 46개의 사업부문이 있으며, 그 아래에 약 5,000개의 이익센터가 있다. 이익센터는 말 그대로 그룹에 돈을 벌어다주는 사업단위로, 각각 50명 안팎으로 구성된 최소사업단위로 완전한 분권경영체제를 갖춰 놓고 자체적으로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작성하는 자율책임 경영을 하고 있다. 개인의 인사고과도 자신이 속해 있는 이익센터의 성과에 의해 좌우된다. 이와 같은 글로벌 매트릭스 사업조직구조는 바네빅 회장이 강력히 추진한 조직 구조조정이다. 그룹 이사회 밑에 상호독립적인 사업영역과 지역영역이라는 두 개의 조직을 둠으로써 경쟁 및 협조관계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정보네트워크가 발달한 네트워크형 조직
5,000개에 달하는 이익센터가 전세계에 퍼져 있고 본사는 최소한의 기능만 수행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정보네트워크가 중요하다. ABB의 조직은 네트워크형 조직이라고 불릴 정도로 정보네트워크가 발달돼 있다. 또한 그룹의 가치관을 공유하기 위해 ‘고객중심(Customer Focus)’이라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시행, 구성원들이 회사의 목표와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객중심의 경영 ▲공급업자와의 파트너십 확립 ▲최고의 품질 ▲사업주기의 단축에 의한 경쟁우위의 확립 ▲최고의 사원이라는 다섯 개의 원칙을 공유하는 고객중심 프로그램 덕분에 ABB는 조직이 자율적으로 잘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경영자도 자율책임경영을 가능하게 하는 장본인들이다. ABB는 500여 명의 엘리트 글로벌 경영자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ABB의 가장 큰 자랑이자 자산이다. 세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순환근무를 하는 그들은 조직을 하나로 묶은 매개체 역할을 한다. 또한 그들은 세계 각지에서 얻은 지식과 노하우를 회사 내에 전달해 경영진들이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세계 7개국에 연구센터, 다양한 시도 진행
중국, 독일, 인도, 폴란드, 스웨덴, 스위스, 미국 등 7개국에 위치한 ABB그룹의 연구센터와 사업부 산하 연구 개발 조직들은 다양한 분야의 혁신적인 기술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빠른 성장세를 나타내는 인도, 중국에서의 연구를 늘리고, 미국에서의 입지는 강화하고 있는 ABB는 뿐만 아니라 카네기 멜론, MIT, 캠브리지 대학 연구소를 포함한 세계 최고의 대학 및 저명한 연구 기관 70여 곳과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
ABB의 글로벌 자동화 기술 실험실은 산업 IT 제품과 시스템, 솔루션에 대한 R&D를 통해 새로운 기술 개발을 담당한다. 이는 고객의 자산 생산성을 극대화해 비용 및 환경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ABB의 자동화 기술은 모터의 효율적인 제어를 위해 드라이브가 설치된 각종 산업, 전력 네트워크가 이용되는 유원지, 지능형 빌딩 시스템이 적용된 일반 가정 등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가정의 전등 스위치부터 산업용 로봇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연구와 노력으로 ABB는 그동안 기술 혁신에 대해 다양한 시도를 진행해 왔다. 2009년에는 매출 대비 4.1%에 이르는 13억불을 연구개발에 투자해 태양광 인버터, 수처리 드라이브, 철도용 컨버터, 대용량 HVDC 시스템, 소형 로봇, 배선용 차단기 XT시리즈, 최고 수준의 특화된 차세대 제어 보호 디바이스, 솔라 애플리케이션용 원격 연결 S800-RSU 등 여러 신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발표해 왔다.

HVDC 차단기 개발, 전기학계의 100년 과제 해결
지난해 ABB는 다년간의 연구 끝에 세계 최초로 HVDC(초고압직류송전) 차단기를 개발했다. ‘전기학계의 100년 과제’로 불리는 HVDC 차단기 개발로 미래 전력망 구축을 한 단계 앞당겼다는 평가다.
HVDC 차단기는 매우 빠른 메커니즘과 전력전자를 결합해 1,000분의 5초 안에 대규모 발전소의 전력 조류를 차단할 수 있다. 이는 사람이 눈을 깜박이는 것보다 30배 빠른 속도다. 수력발전소, 해상풍력의 연계, 태양광(열) 프로젝트의 발전 및 서로 다른 전력망의 상호연계 등으로부터 장거리 전력전송을 위해 필요한 기술을 위해 이미 1950년대에 HVDC 기술을 개발한 ABB는 이 차단기 개발을 위해 매년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으며, 또한 이번 HVDC 차단기 개발을 계기로 미래 직류 전력망 운영 솔루션 개발을 위해 HVDC망 시뮬레이션센터도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호건 ABB CEO는 HVDC 차단기 개발에 대해 “ABB는 전기엔지니어링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면서 “이 역사적 진보를 통해 미래 전력망 구축을 가능하게 하고 직류 계통이 나라와 대륙을 연계해 전력부하 균형을 조정함으로써 기존 교류망을 보강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