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 아프리카에서 희망을 쏘아 올리다

아프리카 현장에서 긴급하게 필요한 기자재를 빠르고 저렴하게 공급

2013-03-29     이준동 차장

아프리카에서 28년째 살고 있는 우리코퍼레이션 정해권 대표는 “아직도 아프리카는 기회의 땅”이라고 말한다. 특히 소자본으로 성공하고 싶은 이들에게 아프리카는 도전해볼만한 미개척 땅이라는 것. “물론 헝그리 정신이 있어야 하고, 뒤쳐진 환경과 열악한 기후, 오지에서의 고생은 각오해야 한다”는 그는 능력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 기회의 땅에 진출해 자신들의 꿈을 펼쳐보길 바란다고 전한다.

처음 아프리카 가나에 발을 디뎠을 때 정해권 대표 역시 청운의 꿈을 안은 30대였다. ‘무엇을 해도 될 것 같은’ 무한한 가능성도 엿봤다.
대우중공업(주)에서 일하던 그가 아프리카 가나로 출장을 가게 되면서 아프리카와의 인연은 시작됐다. “디젤 전기기관차 6대에 대한 국제 경쟁 입찰에 대우중공업(주)가 국내 최초로 응찰하게 됐는데 가나 철도청에서 제작 실적도 없는 회사에게 2,000마력급 디젤 기관차를 발주하길 망설이고 있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정 대표.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기술적으로 가나철도청을 설득해 수주를 따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프리카와의 인연이 시작된 그는 7년여 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가나 현지 무역회사에 취직하면서 본격적으로 아프리카 인생을 시작했다.

가나와 레소토에서 신발 도소매로 웃고 울다
가나에서 정 대표는 세계은행 또는 아프리카 개발은행 등의 차관으로 시행하는 정부기간산업 제품구매 프로젝트에 국내 업체와 함께 참여하는가 하면 타이어, 어망, 차량용 배터리 등 돈이 될 만한 일반상품을 수입해 도매하는 일을 했다. “그때만 해도 가나에는 제조 산업이 발달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품질 좋고 가격이 싼 한국산 제품은 수입만 하면 판매 걱정이 없던 시절이었다”는 정 대표는 한국에서 더 이상 판매되지 않는 학생용 운동화 7만 켤레를 소위 ‘땡처리’ 가격으로 수입해 7배 가격으로 팔기도 했다. 그만큼 그 시절에는 한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좋았다.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은 정 대표는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무작정 남아공으로 향했다. 가나에서의 경험을 살려 이제는 내 사업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아공은 인종차별정책으로 입국 비자를 받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신 레소토라는 오지에서 신발 수입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가나에서의 좋았던 기억은 한순간 악몽이 됐다.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그동안 모은 돈마저 다 날려버린 것이다.
“같은 아프리카라고 해도 서부아프리카와 남부아프리카 시장은 소비성향이 다른데 가나에서의 성공이 남부아프리카에서도 통할 것이라는 내 자만심이 부른 실패였다.”
다시 취직할 수도, 그렇다고 재기할 만한 재정적 여건도 되지 않던 그에게 그때 마침 학교 선배가 재정적인 도움을 줘 정 대표는 다시 무역업을 시작하게 됐다. “말이 무역업이지 보따리 장사라고 해도 무방할 규모였다”는 정 대표는 그렇지만 젊은 패기와 성실함으로 새롭게 꿈을 꾸게 됐다.
그는 레소토에서 점점 사업을 확장해 10년 만에 신발매장을 5개나 운영하게 됐다. 그러는 동안 남아공 입국 비자도 받아서 사업영역을 남아공까지 확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신발 수입·도소매 사업은 한국의 신발제조 산업이 점점 중국, 태국, 베트남 등지로 이전되면서 주수입선도 한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했다. 여기에 1998년 레소토에서 정치폭동사태까지 발생, 그동안 모아뒀던 재산은 물론 3개 매장에 쌓아뒀던 재고가 전부 불타 없어지는 최악의 지경에 이르렀다.

기술무역으로 복귀, 인정받는 협력업체로 부상
10년 만에 다시 전 재산을 잃은 정 대표는 ‘체념의 지혜’를 떠올렸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가슴에 새긴 그는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가 맨 처음 아프리카에 발을 내딛게 된 ‘기술무역’으로 사업을 전환한 것.
“아프리카에 진출해 있는 국내 건설업체들이 아프리카 현장에서 긴급하게 필요로 하는 기자재를 빠르고 저렴하게 공급하는 다국 기술무역업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정유/저유 플랜트 산업, 화력 발전소, 광업제련소 등의 플랜트건설 사업에 소요되는 기자재의 이름이 생소한 것도 있었지만 하나씩 배우면서 일했다. 그런 것이 벌써 15년이 흘렀다. 이제는 나름 전문가라고 해도 부끄럽지 않다.”
우리코퍼레이션은 가나 정유공장 보완시설 시공사였던 (주)선경건설의 협력업체를 시작으로 해 현재는 가나 현지 건설업체, 글로테크 엔지니어링, 마다가스카르 앰바토비 발전소/광업프로젝트 등으로부터 인정받는 협력업체로 부상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상당한 규모의 시장이다. 특히 아프리카 각국 정부 차원에서 시행하는 각종 플랜트 사업이 매력적이다. 정유 및 저유 시설 분야, 발전소 건설이나 지하자원 개발 등 국가 기간산업의 확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프리카는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이나 개인 사업자라면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산업과 연계되는 업종을 고려하는 것도 안전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한국 자동차의 부품 공급 사업이나 가발제조무역 도소매업 그리고 국내에서는 사양되는 제조업이 이전해 오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인 2세에게 ‘한국’ 가르치는 더반 한글학교 교장
정 대표는 남아공 콰줄루나탈 한인 회장으로 한인지역사회에 봉사하기도 했다. “현재 남아공에는 약 4,000명의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에 3,000명, 케이프타운에 700명, 더반 등 기타 지역이 300명 정도 살고 있다”는 정 대표는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2세들의 한국어 및 역사, 문화 교육에도 관심을 갖고 이들에게 한국어 교육과 한국의 역사, 문화를 가르치는데 앞장서고 있다. 7년째 ‘더반 한글학교’의 교장으로 어린이들에게 한글교육을 펼치고 있다. 앞으로 이 지역의 어린이들과 한인 사회를 위해 한인학교를 건축하는 꿈도 꾸고 있다.
끝으로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다는 바람도 전한다.
“아프리카 땅은 나에게 많은 것을 베풀었다. 이제는 나도 이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 미흡하지만 현지에 파견된 선교사들을 통해 어려운 현지인들 몇 명에게 정기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 수를 점진적으로 늘려볼 생각이다.”       
취재_이준동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