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와 성장하는 삶은 언제나 ‘二八靑春’

업계 최고의 회사에서 일한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2013-03-28     박상목 부장

줄탁동시라는 말이 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어미닭이 쪼아준다는 의미다. 글자 그대로하면 병아리가 깨고 어미닭이 쪼아주는 것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말이지만 사실은 ‘줄’이 먼저라고 한다. 병아리가 먼저 껍질을 깨는 소리를 내야만 어미닭이 도와준다는 것. 삼성화재 김현숙 RC도 자신의 성공이 줄탁동시와 같다고 말한다. 자신의 노력에 삼성화재의 지원이 있었기에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시장점유율 1위의 자부심으로
고객을 만나다

김현숙 RC가 보험업계에 들어선 지도 어느 덧 16년. 그녀의 나이도 쉰 살이 되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남편의 벌이만으로는 서울에서 집을 마련하고 아이들에게 여유로운 삶을 보장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뛰어든 보험일은 천직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었고 아이들은 장성했다. 많은 50대 여성들이 사회로부터 은퇴를 하거나 가버린 세월을 아쉬워하며 갱년기 우울증을 겪기도 하지만 김 RC는 이팔청춘(二八靑春)이다. 여전히 성장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김 RC가 함께하는 삼성화재 장충지점 태령대리점은 다양한 연령대의 팀원들이 한 데 모여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지점’을 향해 성장해가고 있다.
“삼성화재에서 일하며 매일 만나는 동료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것을 느낍니다. 점점 발전해나가며 내일의 내 모습이 기대되기에 우울할 틈이 없죠.”
둘째 아이를 출산하며 육아를 핑계 삼아 다니던 직장을 관뒀던 김 RC. 몇 달간 쉬다가 새로운 직장에 취직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지만 고작 두 달 뒤의 상황은 생각과 많이 달랐다. IMF 상황에 애가 둘이나 되는 서른 중반의 아줌마를 고용할 리 만무했던 것이다. 그렇게 육아에 전념하던 그녀는 큰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낼 즈음 보험업계에 입문했다. 보험설계사 보다는 ‘보험아줌마’라는 인식이 강했던 당시 만류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 하지 않던가. 아이들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보험설계를 시작했다. 주변의 응원이나 격려는 없었지만 그녀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삼성화재의 보험설계사라는 것. 최고의 회사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은 삼성화재의 RC로서 자신 있고 당당하게 고객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업계 최고의 회사에서 일한다는 사실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줄 뿐만 아니라 보험아줌마라는 편견을 극복하고 도약할 수 있는 자신감과 자부심을 불어넣어 줬습니다.”
실제로 삼성화재는 업계 최고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삼성화재의 다양한 교육으로 얻은 소중한 추억
김 RC가 처음부터 보험설계의 전문가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별한 자격과 조건을 묻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준 삼성화재가 고맙다는 그녀는 “입사 후 꾸준히 발전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설계사 교육에 끊임없이 투자하는 삼성화재 덕분입니다”라고 말한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다면 얻지 못했을 기회들을 삼성화재의 RC라는 이유로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보험 상품에 대한 교육만 있었다면 특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화재는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들을 초빙한 특강부터 MBA까지 다방면의 교육을 RC들에게 아낌없이 제공한다.
“특히 성균관대학교에서의 MBA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삼성화재가 아니었다면 아이 둘을 키우는 아줌마가 캠퍼스의 낭만을 느껴볼 수 있었을까요. 보험 상품에 대한 지식이나 영업에 대한 기술을 기계적으로 외우기만 했다면 제가 하는 일이 단순한 노동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삼성화재의 다양한 교육의 기회는 전문성을 키워주는 동시에 제게 소중한 추억도 선물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삼성화재의 전폭적인 지원과 교육이 있었기에 김 RC는 보험설계사가 천직이라는 소리도 여러 번 들었다. 그럴 때마다 양심이 찔려 웃음이 난다는 그녀다. 또 하나 그녀를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은 바로 누군가의 미래를 지켜주는 일을 한다는 보람감이다.
“15년 전 친정어머니께서 난소암에 걸리셔서 한 주에 130만 원이라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돈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당시 어머니의 나이로 인해 보험 혜택이 많지 않았고, 보장액도 적어 건강 앞에 돈 때문에 전전긍긍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치료를 잘 마쳐 여전히 건강하시지만 당시에는 아픈 부모님 앞에서 돈 걱정을 해야 하는 제 모습이 밉고 싫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보험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죠. 보험은 언제 발생할지 모를 사고를 잘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투자이고, 보험설계사는 이러한 투자를 좀 더 합리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RC들이 보험 상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기에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하지만 전문성을 가지고 고객에게 가장 합리적인 상품을 소개하고, 위험을 방지해 고객의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를 추구한다는 것은 김 RC에게 있어서 어떤 일보다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래서 고객 한명의 보험 설계에도 소홀할 수 없다. 내 보험을 설계하듯이 꼼꼼하게 살펴보고 설계하는 모습은 고객들에게 많은 신뢰감을 주었고 그녀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마음으로 최고가 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에게, 자식 앞에 당당한 삶을 살다
보람과 자부심을 가지고 하는 일은 자식 앞에 당당한 엄마의 모습도 선물해 주었다. 비싼 등록금으로 많은 대학생들이 대학 졸업과 동시에 빚더미에 앉게 되는 요즘이지만, 김 RC는 두 아이의 대학 등록금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지원도 아낌없이 해줄 수 있는 엄마라서 뿌듯하다. 자식이 하고 싶은 일을 지원해주지 못해 가슴 아파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쉰 살의 아줌마가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아이들을 지원해 줄 수 있어 자신의 일에 더욱 자부심을 갖게 된다는 김 RC는 RC의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주저 없이 도전하라고 추천한다. 고객과 동료들을 통해 배우고 발전하는 모습은 자녀들에게 본보기가 될 뿐만 경제적인 여유로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엄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RC는 “보험은 처음 짓는 농사와 같습니다. 경작할 땅에 꼭 옥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못 쓰는 땅이 많을 확률이 더 높겠지요. 하지만 자갈밭, 가시밭, 돌밭을 갈아 비옥하게 만들어 곡식을 거둘 때 보람은 몇 배 더 크지 않을까요. 제게 보험은 도저히 싹이 날 것 같지 않던 부박한 땅에서 싹이 나고 큰 줄기가 되고 열매를 얻게 된 소중한 경험입니다. 자신 없거나 계획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는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매순간 최선을 다해 고객을 만나고 제게 주어진 밭을 착실하게 가꿔나가고 싶습니다.”
짧지만 간결한 말에서 김 RC의 삶의 태도와 성공의 비결을 엿볼 수 있었다. 자신 있고 당당한 엄마이자 보험설계 전문가로서 빛나는 김 RC의 삶을 기대해 본다. 
취재_박상목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