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기술·서비스뿐 아니라 나눔도 세계 최고
애플, 휴렛패커드 등 쟁쟁한 대기업 제치고 ‘가장 친환경적인 기업’ 선정
인도 정부는 2010년부터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총망라하는 IT산업 선진국을 목표로 지원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몇몇 주 정부는 중앙정부와 별도로 소프트웨어산업을 경쟁력으로 지원하며 일부에서는 공장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이 같은 노력 덕에 현재 인도는 IT 산업의 거대시장이 됐고, 인도의 IT 산업은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당당히 세계 IT 산업의 중심이 됐다.
인도의 IT 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타타 컨설턴시(Tatar Consultancy), 인포시스(Infosys), 위프로(Wipro) 등 인도를 대표하는 IT 기업들의 활약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타타 컨설턴시는 포춘이 선정한 미국의 10대 기업 중 8개를 고객으로 두고 있으며, 인포시스는 1999년 인도 기업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그리고 위프로는 애플, 휴렛패커드 등 쟁쟁한 대기업을 제치고 글로벌 IT업계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기업으로 선정됐다.
식용유 회사에서 세계 굴지의 IT 기업으로
인도 남부의 벵갈루루는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2,000개가 넘는 IT 기업과 세계적인 IT 기업들의 연구개발센터가 모여 있다. 이 벵갈루루에 위프로의 아짐 프렘지(Azim Premji) 회장이 처음 공장을 세우며 인도 IT 산업의 부흥을 이끌었다.
위프로는 1945년 식용유제조회사로 출발했다. 위프로라는 회사 이름도 ‘식물에서 뽑아낸 기름을 생산하는 인도 기업’을 의미하는 ‘웨스턴 인디아 베지터블 프로덕트(Western India Vegetable Product)’의 약자다. 이 위프로는 프렘지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였다. 그러나 프렘지가 스탠퍼드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수학하던 중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그가 회사를 물려받게 됐다. 1966년, 그의 나이 겨우 스물 한 살이었다.
학업을 중단하고 인도로 돌아와 회사를 맡게 프렘지는 식용유만으로는 회사가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비누, 미용용품, 전구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등 변화를 모색했다. 그리고 1970년대 드디어 프렘지에게 기회가 왔다. 인도에 사회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외국기업을 탄압하자 IBM, 코카콜라 등 거대 기업들이 인도에서 철수하기 시작한 것. 프렘지는 IBM의 빈자리를 노리며 컴퓨터 사업에 진출하기로 결심했다. 이에 대만의 에이서와 제휴해 PC 시장에 뛰어들었다. 벵갈루루에 공장을 세워 PC만들기에 돌입한 위프로는 1981년 첫 미니PC를 생산했다. 인도에서 만든 최초의 컴퓨터였다. 이때 프렘지는 또 하나의 도전을 감행했다. 바로 애프터서비스(AS). ‘서비스 중시’ 전략을 내세운 프렘지는 판매 직원 1명당 3명의 AS 직원을 두고 소비자를 만족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AS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인도에서 위프로의 이 같은 전략은 당연히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후 전세계적으로 PC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프렘지의 IT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재미도 잠시, 1991년 정권이 교체되면서 인도 시장은 또 다시 개방이 됐다. 이러면서 물러났던 IBM은 물론 컴팩, HP 등 세계적인 PC 제조업체가 인도로 몰려들었다. 거대 기업들을 상대하기에 역부족이었던 프렘지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방향을 틀었다. 거대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은 것을 적극 활용해 GE 등 세계적인 기업들의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를 맡기 시작한 위프로는 1995년에 ISO 9000 품질인증을 획득했고, 1999년에는 세계 최초로 국제공인 소프트웨어 기술표준인 CMM에서 최고등급(5등급)을 받았다. 인재 표준인 CMMI에서도 최고등급인 5등급을 받았다.
포춘 500대 기업 파트너가 되기 위한 광범위한 활약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공급업체인 위프로는 IT 컨설팅, 전자상거래, 전사적 자원관리 지원 등의 분야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미국, 유럽, 일본, 아태지역에 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포춘 500대 기업 중 약 100개 사가 위프로의 고객이다.
지난 2010년에는 한국에도 진출했다. 한국법인을 설립한 위프로는 삼성전자, KT 등 국내 주요 기업을 고객사로 확보해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개발(프로덕트 엔지니어링 서비스), 정보 시스템 개발 등 개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위프로는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인도 벵갈루루에 세운 인도 소프트웨어 개발 지원센터의 운영을 맡아 국내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에게 소프트웨어 개발 아웃소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위프로는 한국의 공공시장에 직접 진출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국내 IT서비스 기업과 협력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어가는 것은 고려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위프로를 IT 기업으로만 분류하기 어렵다. PC제조는 물론 전기용품, 의료기기, 유아용 기저귀 같은 소비재 상품 분야에서도 높은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위프로이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해 IT 시장에 불황이 와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된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IT 기업들이 소수의 한정된 기술과 시장에 주력할 때 위프로는 세계 500개 기업의 파트너가 되기 위해 광범위한 분야에서 전문 지식을 쌓아왔다. 그리고 이를 통해 기술, 서비스 솔루션, 비즈니스 프로세스라는 세 가지 주력 분야에 집중해 혁신을 이뤄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위프로는 인도 최초로 식스시그마를 도입하기도 했다.
철저한 품질관리도 위프로의 성공요인이다. SEI-CAM , ISO9001, ITAA2000 인증을 보유하고 있는 위프로는 품질관리 시스템인 ‘식스 시그마 토털 퀄리티 매니지먼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인력관리, 처리 과정, 부서 간 협조를 원활하게 해 제품의 결점을 줄이고 생산 주기를 단축하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인재 선발이 회사의 미래를 좌우한다”
위프로는 매년 수천 명의 직원을 신규 채용한다. 유능한 소프트웨어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이공계 대학은 물론 다양한 대학과 공동으로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위프로의 직원들이 세계 각국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은 순혈주의를 고집하지 않는 것도 큰 이유다.
프렘지는 인재 선발이 회사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직원 선발과 관리에 심혈을 기울인다. 반드시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될 경우에는 장기간 면접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뛰어난 인재들을 다른 회사에 뺏기지 않기 위해 특별업무마다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등 적절한 보상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위프로 안에서 오랜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꾸준히 비전과 목표를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탁월성 센터’를 두어 직원 개개인의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기술 비즈니스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장려하고 있기도 하다. 한 예로 위프로는 직원들에게 IBM보다 많은 급여를 줘 자부심을 갖게 한다. 그리고 꾸준히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자신들의 노력과 노하우가 세계 시장에서 그 어떤 기업보다 앞서고 있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프렘지는 ‘노력’을 가장 큰 가치로 삼아 개개인이 갖고 있는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더 나은 위프로, 더 나은 인도, 더 나은 인류의 미래가 건설되기 때문이다.
인도 초등교육 개혁 위해 매년 500만 달러 기부
프렘지가 인도의 IT 산업 발전만큼이나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인도의 공교육 혁신이다.
프렘지는 2010년 12월에 20억 달러(약 2조 2,000억 원)를 기부했다. 인도 역사상 가장 많은 기부액이었다. 프렘지의 재산 1/8에 해당하는 20억 달러는 2025년까지 인도 전역에 1,300여 개의 학교를 세우고 지역의 언어로 무상교육을 하는데 쓰인다.
지난 2001년 사재 5,000만 달러(약 600억 원)로 자신의 이름을 딴 ‘아짐 프렘지 재단(APF)’을 설립한 프렘지는 그동안 인도 전역의 13개 주정부와 파트너십을 맺고 인도의 초등교육 개혁에 주력해왔다. “인구가 많고 사회·경제적 신분 격차가 심한 인도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은 낙후한 교육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프렘지는 제대로 된 초등교육이야 말로 빈곤 탈출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믿고 있다. 이에 그는 매년 500만 달러를 기부해 200만 명에 달하는 학생들을 지원한다. 또한 APF는 무엇보다 공교육 개혁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교사들의 자질 향상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개혁의 주체인 교사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프렘지는 2011년 아예 선진 교수법과 교육정책, 학교경영, 리더십 등을 가르치는 아짐 프렘지 대학을 세우기도 했다.
또한 APF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창의적인 교육방식에 따라 전국에서 시범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2016년까지 100개의 시범학교를 세운다는 목표다. 이를 통해 인도 정부가 APF의 시범학교를 교육모델로 도입하길 바라는 것이 APF의 궁극적 목표다.
적극적인 기부활동으로 2011년 포브스가 선정한 전세계 기부자 순위에서 8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 프렘지이지만 사실 그는 누구보다 검소한 구두쇠다. 인도에서는 물론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이지만 그가 타고 다니는 차는 토요타의 1,800cc급 중형차인 코롤라(Corolla)다. 이마저도 2005년에 구입한 것이다. 그 전까지 프렘지는 포드의 1996년식 소형차 에스코트(Escort)를 타고 다녔다. 그는 비행기 좌석도 비즈니스 대신 이코노미, 숙소는 호텔 대신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한다. 그에게는 최소한만 갖춰지면 충분하다. 회장이 몸소 검소와 절약을 생활화 하다 보니 위프로는 직원들도 자연스럽게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절약과 비용절감은 위프로에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된 것이다.
어쩌면 돈을 버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번 돈을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프렘지야말로 땀 흘려 힘들게 번 돈을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알고 있는 이 시대의 진정한 롤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