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시에 위치한 화궁반점 ‘간짬뽕’ 드셔보셨나요”

아직은 ‘우리밀’에 대한 홍보와 정보, 소비자의 인식이 많이 부족해

2012-12-12     취재_공동취재단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지역의 특산물을 홍보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에 지역민들 역시 지역 특산물을 이용함으로써 지자체의 내 고장 특산물 알리기에 동참하고 있다. 전라북도 김제시 우리밀영농조합법인은 지난 2009년 11월 김제시에 소재한 중화요리 전문점 ‘화궁반점’을 ‘우리밀’ 1호점으로 지정하며 김제시 농산물 알리기에 나섰다. 지역 농산물의 브랜드화는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브랜드화의 성공은 지역 브랜드가치 상승과 더불어 농민들에게 막대한 수익을 안겨다 주기도 한다. 이에 화궁반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밀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지방경제시대 속에서 각 지자체 간 도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전략이 쏟아지고 있으며 이러한 지자체 간 뜨거운 경쟁은 때론 국가 경쟁력의 활력을 불어 넣기도 한다. 하지만 지자체마다 도시를 알리기 위한,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도시정책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무리한 정책 추진으로 인한 막대한 예산만 날리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전라북도에 위치한 김제시는 예부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농업도시였다. 부유한 도시로도 유명했던 도시였지만 지금은 많은 인구가 도시로 빠져 나가며 시 전체 인구가 9만여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제 시민들은 말한다. 우수한 자연환경을 이용해 올바른 도시정책이 추진된다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도시가 김제라고.

우리밀 홍보와 정보, 소비자의 인식 부족해

김제의 우리밀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는 화궁반점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에 우리밀로 만든 과자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호패지 대표는 “우리밀로 만든 과자류를 식당 내에 진열해 놓고 홍보하기 위해 판매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 전혀 수익이 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 고향인 김제의 농산물을 알리기 위해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지역 농산물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아직은 우리밀에 대한 홍보와 정보, 그리고 소비자의 인식이 많이 부족해서 저 역시 조금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우리밀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호 대표는 화교 출신으로 6.25 직전 한국으로 건너온 그의 아버님은 6.25 전쟁이 터진 후 한국에 정착하게 됐다. 그렇게 그의 아버지는 김제에서 터를 잡았고 호 대표는 그렇게 김제에서 태어났다.
지난 1952년 시작된 화궁반점은 지금까지 60년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껏 쌓인 중화요리에 대한 요리솜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이다. 특히 화궁반점의 ‘간짬뽕’은 인기 만점의 대표메뉴 중 하나이다. 국물 없는 짬뽕으로서 그 맛과 푸짐함은 가히 일품이라 말할 수 있다.

그는 화궁반점의 간짬뽕의 시작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제가 19살 때 쯤 외삼촌께서 제게 간짬뽕이나 한 그릇 만들어 달라 하셨습니다. 그 때 저는 좀 더 특이한 간짬뽕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기존의 형태와는 다르게 만들어보게 되었고 제가 만든 간짬뽕을 드신 외삼촌은 극찬을 하셨습니다. 바로 그때부터 지금의 간짬뽕이 시작된 것입니다. 참고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간짬뽕의 ‘간’ 이라는 말은 중국말로 국물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는 화궁반점에 대한 지역민들의 큰 사랑에 보답하고자 많은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음식의 맛과 청결, 그리고 항상 친절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또 안전한 먹거리를 시민 분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좋은 식자재만을 쓰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호 대표의 모습은 친절이 몸에 배어있는 듯 보였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 도중 식당으로 들어오는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깍듯이 인사를 건네며 그들을 맞았다.

김제 토박이 호 대표가 말하는 김제 시민

호 대표는 김제시에 대해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서민들이 살기에 좋은 도시라고 말한다. “김제 시민들은 전라도 사람들이면서도 정작 충청도 사람들의 성향에 가깝습니다. 시민들이 대체적으로 서두르지 않고 항상 여유가 있으며 또 큰 욕심이 없습니다.
오래 전 김제는 국내 제일의 농경도시로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도시 발전이 멈춘 것 같지만 그래도 시민들은 그저 큰 불만이나 큰 만족도 없이 그냥 수수하게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라며 김제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아직도 조금은 서툰 한글 쓰기와 한국말은 그가 화교임을 짐작할 수도 있지만 또한 그와는 반대로 그런 호 대표가 말하는 김제에 대한 얘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그는 분명 김제 토박이임이 분명해 보였다. 김제 토박이로서 김제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했고 김제시의 지난 과거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국에 와서 혼자 자수성가하신 아버님을 존경합니다”

호 대표는 현재 김제시 의용소방대와 깨알봉사단, 친환경21, 로타리클럽, 민주통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역사회를 위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호 대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참 정직하고 바르고 성실한 사람입니다”라고. 자신의 고향 김제에서 그저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지금처럼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소박한 말 그대로 그냥 소박한 김제의 한 시민이었다.
한국전쟁 전 한국에 온 아버지를 삶의 멘토로 삶고 있다는 그는 혼란했던 한국전쟁 때 홀로 한국에서 버텨 내시며 자수성가 하신 그의 아버님을 존경한다고 말한다. “아버님이 처음 한국으로 오실 때 역시 전혀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으며 한국에 와서도 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외롭고 힘든 상황에서도 자수성가하셔서 제가 지금 이렇게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김제라는 도시에서 잘 살아올 수 있게 해 주신 아버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