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푸드 이용, 음식 그 이상의 작품을 만든다
김제시민들 홀린 건강한 맛 ‘이조(닭, 오리 해신한방백숙)’
슬로푸드는 표준화된 맛과 미각의 세계화에 저항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전통적이고 다양한 식생활 문화를 추구하는 국제적 움직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의 체질에 맞는 전통식, 건강에 좋은 식재료, 유기 농업의 활성화를 통한 건강한 식생활 문화 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슬로푸드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우리의 밥상에 오르는 한식은 대표적인 슬로푸드다. 최근 한식이 세계적으로 조명 받는 것도 건강에 좋은 슬로푸드이기 때문이다. 한식은 그 어떤 요리도 눈 깜짝할 사이에 탄생하지 않는다. 된장과 간장, 고추장, 김치, 젓갈 등은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 제대로 된 고유의 맛을 얻을 수 있고, 곰탕, 설렁탕, 삼계탕 등도 오래 끓여야 진한 육수를 맛볼 수 있다. 이처럼 한식은 기다릴 줄 아는 이에게 참맛을 선사하는 슬로푸드 중의 슬로푸드다.
각각의 주재료와 궁합이 맞는 한약재가 듬뿍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자리 잡고 있는 빈랑(貧廊)은 약선(藥膳) 요리전문점이다. 약선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유형에 따라 적합한 형태의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질병예방과 건강 증진을 통해 장수에 그 목적을 두는 임상응용 식사요법이다. 쉽게 말해 각종 한방약의 재료로 쓰이는 것들을 요리에 사용해 사람의 몸을 튼튼하게 해주고 병의 치료를 도와주는 건강식이다. 이에 손예립 대표는 김제 지역에서 많이 나오는 토종닭과 오리, 소 도가니를 주재료로 해 각각의 재료와 궁합이 맞는 한약재를 이용해 만든 육수를 주 메뉴와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반찬으로 상을 차린다. 이렇게 차린 한 상에는 고객의 건강이 좋아지길 기원하는 손 대표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귀한 손님을 모신다’는 뜻을 담고 있는 한방약선 요리전문점 빈랑의 힘은 뭐니 뭐니 해도 로컬푸드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어느 산해진미와 겨누어도 절대 뒤지지 않는 김제산 주재료들은 홀로 쓰이지 않고 가금류와 해산물이 한 그릇에 담긴다. 여기에 한의학 박사가 조제한 약재들이 더해져 빈랑의 요리들은 음식 그 이상을 넘어 먹으면 약이 되는 신비의 음식이 된다.
재료가 충분하지 않으면 가게 문을 열지 않는다
깨끗하고 친절하며, 맛이 좋고 값이 적정한 빈랑은 김제시의 대표 음식점이다. 매일 직접 재래시장에서 식자재를 구매해 반찬을 만들고 1년 전부터 전통 된장과 간장을 이용해 절임과 장아찌 등 저장음식을 만들어 밑반찬으로 내놓고 있다. 그날 내놓을 음식 재료 중 단 한 가지라도 충분하지 않으면 가게 문을 열지 않는 고집스러움은 고객에게 불편함을 안기지 않겠다는 손 대표의 신념이기도 하다. 그렇게 재료 한 가지, 반찬 한가지에도 최선을 다하는 빈랑은 굳이 소문을 내지 않아도 손님들이 먼저 알아보고 찾아주는 김제시의 대표 맛집이 됐다.
지난해에는 ‘전북음식문화대전’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전라북도 주관으로 ‘한식의 세계화’라는 기치 아래 도내 모범, 향토음식점 등 70여 개 일반음식점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빈랑은 각종 해산물과 한약재를 이용해 만든 ‘해신한방백숙’으로 심사위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손 대표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식재료의 부담. 극심한 경기불황에도 변함없는 상차림을 보며 손님들이 되레 “이렇게 해서 남아요?”라고 걱정하지만 손 대표는 귀한 손님을 모신다는 빈랑의 상호에 누가 되지 않도록 변치 않는 마음과 상차림으로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도 엄연히 업주다. 불안정한 경제상황은 손 대표 뿐 아니라 모든 요식 업주들에게 힘겨움을 안겨주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손 대표는 빈랑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서라도 조금 힘들지만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정직하고 정성스럽게 손맛을 선사할 생각이다.
‘나의 손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
빈랑을 향한 손 대표의 애정은 남다르다. 그리고 이것은 어머니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인생의 멘토는 어머님이다”라는 손 대표. 그에게 어머니는 항상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외지에서 와서 행상을 하는 이들에게는 음식은 물론 잠자리까지 챙길 정도로 다른 이들을 위했다. 그래서 시골집은 항상 사람들로 넘쳤다.
음식을 내어놓는 손 대표는 늘 사람을 위하던 어머니의 마음을 닮으려 노력하고 있다. 어느 누구라도 소홀히 생각하지 않고, 그들에게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그가 요리를 하는 가장 큰 이유이자 큰 행복이다. 또한 그는 요리를 하면서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되새긴다. ‘나의 손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는 보람 말이다.
그가 빈랑에 애정을 갖는 또 다른 이유는 내면을 중시하는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 시대는 안이 아닌 겉만 보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명장들이 꽃을 피우지 못 한다”고 안타까워하는 손 대표는 빈랑이 요란한 겉이 아니라 옹골찬 내면으로 사람들에게 평가받길 원한다. 그래서 늘 빈틈없이 안을 보고 또 보려하는 손 대표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이여, 잠시 빈랑에 들러 지친 나의 몸과 마음에 따뜻한 음식 한 상 대접해보는 것은 어떨까. 힘든 시간을 지나쳐온 스스로에게 가장 값진 선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