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상과 호국정신이 어우러진 신라 천년고찰 용천사
부처님 자비를 실천하며 민족적 유산의 가치를 되살리는 지거스님
경북 청도군 각북면에 위치한 용천사의 연혁은 18세기 간행된 목판본 ‘청도군각북면용천사사적(淸道郡角北面湧泉寺蹟)’에서 확인할 수 있다. 통일신라기 문무왕 10년(670) 의상대사는 화엄대경을 펼치고 신라를 외적으로부터 보호하고자 10개의 사찰을 세웠다. 신라 문장가 최치원의 <법장화상전>에 화엄십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기록된 옥천사는 상주 스님만 수천 명에 이르는 대가람으로 위상을 떨쳤고 고려 원종 2년(1261) 일연선사에 의해 중창되면서 사찰명도 용천사로 바뀌었다.
용천사는 삼국시대 관기(觀機), 도성(道成) 등 구성(九聖)으로 불리는 아홉 성인과 여러 은둔 성인이 수련하면서 정토신앙과 결합된 불교사상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용천사는 인조 9년(1631) 중창되는 등 불교가 억압받던 조선시대에도 공고히 위상을 지켰다.
올해 7월 용천사 주지로 부임한 지거스님은 화엄종을 완성한 의상대사, 몽고 침략과 내정간섭으로 훼손된 민족정기를 되살린 역사서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선사 등 고승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족정신의 상징이자 수도(修道)의 중심지, 나눔과 자비를 실천하는 사회복지활동의 산실로 이끌어가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감싸 안는 사회복지사업에 주력
지거스님은 30여 년의 수도생활 중 10년을 사회복지활동에 헌신하였다. IMF 때부터 장애인, 노숙자, 아동, 여성 등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을 돕는 데 매진하며 불교의 요익중생(饒益衆生,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에게 넉넉하게 이익을 줌)의 가르침을 실천해 오고 있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보현의집’을 운영하며 노숙인의 복지와 인권증진 및 사회복귀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해 노숙인들의 재활의지를 고취시키고 서울시노숙인복지협회를 설립하여 두 차례 회장을 역임했다.
2007년 12월1일 서울시립영등포장애인복지관을 개관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다양하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였는데, 특히 이 복지관의 설립을 위해 지거스님은 예산 유치 및 설계와 시공, 건축까지 직접 도맡아 할 정도로 열의를 쏟았다.
지거스님은 많은 문화행사를 개최하여 배우 장동건, 김민종, 영화감독 곽경택, 방송인 송해, 엄앵란, 가수 현철, 설운도, 장미화 등 유명 인사들의 자원봉사와 재능기부를 이끌어내어 더 많은 이들의 후원과 참여를 가능케 했다.
또한 사회적 약자의 복지 향상과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등 전반적 사회복지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불교사회복지 유공자 선정, 2008년 불교계 인사로서는 처음으로 서울사회복지상 수상, 2009년 문화관광부장관상, 2011년 보건복지부장관상 등 다수의 사회복지 관련 공로상을 수상했다.
“복지 사업은 돈을 전달하는 것 이상의 값진 의미가 있다. 한 명 한 명과 그 주변인들의 행복을 기원하며 정성들여 모으는 마음이 그들에게는 더 큰 선물이다. 복지사업의 성공을 도와준 것은 보이지 않는 응원과 정성을 보여준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이다”라고 감사를 표한 지거스님은 서울에서 10년간의 복지사업을 완수하고, 출가하여 수도생활을 시작한 대구 팔공산 동화사로 돌아와 동화사 부주지 겸 용천사 주지로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일연선사를 잇는 민족정기 회복 사업인 대견사 재건
용천사는 나라를 지키는 호국정신이 깃든 사찰이다. 의상대사가 통일신라를 위협하는 왜구와 백제부흥군의 발호를 막고자 하는 원력으로 개창하고, 고려시대 일연선사는 이곳에서 민족정기 재정립을 위한 역사서 <삼국유사>를 구상했다.13C 고려는 28년에 걸친 몽고의 침입과 압제로 피폐해졌고 민족의 긍지와 자주성은 땅에 떨어졌다. 역사를 재조명해 민족정신을 높이고자 한 일연선사는 기존 사서 <삼국사기>가 중국 중심의 유교사관에 치중해 고의로 누락한 우리 역사와 신화에 주목해 <삼국유사>를 완성하였다.
지거스님은 호국정신과 민족 주체성이 서린 용천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족정기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일제시대 강제 폐사된 대견사 중창에 힘쓰고 있다.
당나라 태종이 계시를 받아 신라 땅 비슬산에 세워진 대견사는 위치상 대마도를 마주보고 있는데 임진왜란 때 왜적에 의해 한번 폐사되었고, 1900년 중창 작업 중 ‘대마도의 기운을 끌어들이는 지형’이라는 기록이 나오면서 일제에 의해 두 번째 폐사 당했다.
일제에 훼손당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자는 동화사 주지 성문 큰스님의 원력과 김문오 달성군수의 뜻을 모아 추진 중인 대견사 중창은 지난 8월 발굴조사를 통해 초기에 세워진 석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9월부터 본격적인 재건 작업에 들어갔다.
대견사 중창을 통해 불사(佛事)와 민족정기 복원 사업을 동시에 달성하는 중책을 수행하는 지거스님은 “일연선사는 대견사에서 주지를 지내며 용천사를 중창하셨는데 본인은 용천사 주지로서 대견사 중창 불사를 수행하니 일연선사와의 인연이 깊은 모양”이라고 감회를 표현했다.
동국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지거스님은 일연선사의 생애와 <삼국유사>의 저술을 다룬 소설을 집필 중이며 용천사를 전성기 모습으로 중건하기 위한 종합정비계획 및 용천사의 수많은 전설과 역사적 사실들을 엮어 위상과 문화적 가치를 높이고 지역문화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도록 청도군청 및 주민들과의 협력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편, 지거스님은 11월14일 청도사암연합회 회장에 추대되었다. 추대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스님은 “지역불교 전체를 이끌어야 하는 입장에서 항상 객관성과 공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 문화, 자연이 역동하는 행복한 청도지역이 되도록 하는 데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천년고찰 용천사는 역사적·문화적 가치들이 살아있는 지역사회 발전의 중심지로, 부처님의 가피와 민족정신이라는 정신적 유산의 공존, 위로는 도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普리 下化衆生)’을 실천하며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초석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