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 체제 162일 만에 돛을 내리다

지도부 총사퇴로 파행 빚은 단일화 논의에 활력 불어넣어

2012-11-18     정대근 기자

일요일이었던 지난 11월18일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가 전격 사퇴하고 지도부 또한 총사퇴를 결의했다. 이는 이 대표가 취임한 지 162일 만이다. 다만, 다만 박지원 원내대표는 정기국회가 진행되고 있는 기간인 만큼 회기가 끝날 때까지 원내대표직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 대표 체제는 지난 6.9전당대회를 통해 출범했으며 당내 결집력 강화를 통해 12월 대선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각오를 다져왔다. 하지만 본선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중도하차한 셈이 됐다.

아듀, 이해찬 대표 체제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 및 지도부 총사퇴는 교착상태에 빠진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11월14일 안 후보 캠프 측은 문 후보 측이 이른바 ‘안철수 양보론’으로 불리는 불명확한 정보를 언론에 흘리고, 당 차원에서 조직을 동원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단일화 협상 실무 개시 하루 만에 협상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뒤이어 안철수 후보 측은 민주통합당의 근본적인 개혁 없이는 단일화 협상을 재개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에 민주통합당으로서는 단일화 협상재개를 위한 국면전환이 절실한 실정이었다.

민주통합당 관계자에 따르면 당초 당내에서 이 대표만 사퇴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왕 이 대표가 사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면 지도부 역시 공동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가 결심을 굳힌 것은 지난 16일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튿날인 17일 문 후보에게 사퇴의사를 전달했으며, 이날 밤 최고위원회의 소집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이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인 충청권 등을 돌며 선거 지원을 할 예정이다.

이 대표에 대한 사퇴압박은 6.9전당대회 당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른바 ‘이해찬-박지원 역할분담론’이 불거지면서 비노무현계역과 반노무현계열의 당내 세력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던 것이다.

이러한 당내 반발은 당내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과정에서 정점을 찍은 바 있다. 문 후보의 최대 승부처로 예상됐던 제주지역 경선에서 예상을 엎고 압승을 거두자 비문재인계열 주자들이 당 지도부의 불공정한 경선관리를 문제 삼고 나섰다.

이들이 주장했던 ‘불공정한 경선관리’의 골자는 이 대표가 문 후보에게 유리한 경선룰을 만들어 편파적인 경선운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혹과 반발은 문 후보가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후에도 잠잠해지지 않았다. 사실상 이 대표가 문 후보 뒤에서 수렴청정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던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인적쇄신론’을 중심으로 한 지도부 개편론이 제기돼 이 대표의 목덜미를 잡았다. 안 후보가 개혁정치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와 단일화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이에 걸맞는 수준의 쇄신과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문 후보는 이 대표를 ‘고위전략회의’에 배치해 ‘용광로 선대위’를 제안하며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하지만 문 후보가 직접 설계하고 설치한 ‘새로운정치위원회’에서조차 이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 총사퇴론을 제기해 문 후보를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중해 달라”

총사퇴를 선언한 지도부 내에서는 냉기가 감돌고 있다. 안 후보 측이 민주통합당의 개혁을 요구하며 현 지도부를 인적쇄신의 대상으로 분류한 것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퇴 회견문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회견문에는 “민주당을 구태정당으로 지목하고 이 사람들을 청산 대상으로 모는 것은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라며 “안 후보도 이분들을 존경한다고 하신바 그 마음을 잊지 말아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이 대표와 지도부의 총사퇴로 인해 지도체제의 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민주통합당 측은 별도의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지 않고 문 후보가 당 대표권한대행을 겸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당헌상 최고위 결의로 문 후보에게 당 대표 권한을 위임하기로 했다”며 “박 원내대표는 정기국회 때까지 책임지는 것으로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는 이미 사퇴한 김한길 전 최고위원을 제외한 전체 재적 8명 가운데 박지원 이종걸 장하나 최고위원 등 3명이 지방 출장 등의 이유로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와 지도부 총사퇴를 알리는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는 비장했다. 회견문의 전반적인 내용은 ‘단일화 성사’와 ‘정권교체의 달성’이라는 큰 골격을 구성하고 있었지만, 중간중간에는 의미심장한 발언들이 숨어 있었다.

이 대표는 회견 말미에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중해달라”며, “민주당은 그 분들이 이끈 정당이고, 박지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이른바 동교동의 분들, 그리고 이른바 친노는 그 분들과 함께 민주화 운동의 사선을 넘었고, 평화적 정권교체와 참여적 정치를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민주당을 구태 정당으로 지목하고 이 사람들을 청산대상으로 모는 것은 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모욕”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는 정권교체라는 시대적 요구를 부응하기 위해 사퇴를 결행하지만 자신을 포함한 친노무현 세력을 구태세력으로 연결짓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짧지만 강한 항변으로 풀이된다.

安 “요구했던 것은 인적쇄신이 아니었다”

민주통합당 측의 지도부 총사퇴 소식을 접한 안 후보 측 캠프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급기야 안 후보가 직접 나서 “민주당에 요구했던 것이 인적쇄신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이 대표가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그런 결단을 내리셔서 진심으로 존중의 말씀을 드린다”며 “모든 것을 걸고 단일화를 이루겠다”고 말했다.

이에 안 후보 캠프 내부는 물론이고, 문 후보 캠프 측과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초 안철수 후보 측은 단일화 협상 재개의 전제로 ‘민주통합당의 쇄신’을 강하게 요구해 온 바 있다. 이에 민주통합당은 이러한 안 후보 측의 요구를 이해찬 대표 및 지도부 총사퇴로 해석하고 이를 전격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는 이를 통해 단일화 협상이 재개됐지만, 안 후보가 “인적쇄신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고 밝힌 점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안 후보는 11월18일 광주지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에 요구했던 것은 인적쇄신이 아닌 정치관행에 대한 개선이었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후보가 자신의 뜻이 캠프 실무진과 상대 캠프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음을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 것은 안 후보 본인의 모호한 발표도 반영된 결과다. 그는 지난 11월16일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요구하고, 민주당 내부에서 이미 제기되고 있는 당 혁신 과제들을 즉각 실천에 옮겨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또한 이 자리에서 “문 후보가 직접 단일화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필요한 조치 취하셔야 한다”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실질적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 이후 유민영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혁신 논의와 관련해 민주당 내 ‘새로운정치위원회’ 안경환 위원장이 당의 계파적 기득권 구조를 포함, 당 개혁을 언급한 것이 있으니 이런 대목들을 참고해 달라"고 밝혔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새로운정치위원회’는 민주통합당 쇄신의 과제로, 지도부 총사퇴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쳐 왔다. 이를 기억하는 기자들이 “안 후보가 민주통합당의 인적쇄신을 요구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쏟아냈지만, 안 후보 측은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다소 모호한 답변으로 즉답을 피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면, 아마도 이 시점부터 안 후보 본인의 뜻과 다른 방향으로 해석될 여지가 생긴 셈이었다.

11월18일 오후 안 후보의 해명 기자회겨 직후 “캠프 내 메시지 전달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유민영 대변인은 “앞서 민주당의 구조와 관행에 대해 말씀드린바 있는데, 이전 상황에 대해서 다시 설명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답변을 피했다.

“민주통합당 공중분해 수순(?)” 새누리당 맹공 퍼부어

한편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와 지도부 총사퇴에 대해 맹공을 퍼붓고 나섰다.

이정현 공보단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이해찬 대표의 사퇴 자체가 문 후보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라면서 “민주당이 친노가 주축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자 구태정치의 본산이라는 지적을 시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단장은 민주당의 자진해체를 촉구하면서 “민주당이 드디어 공중분해 수순에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안형환 새누리당 대변인은 당사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안 후보가 민주당을 해체하라고 하면 해체해야 하는가”라고 물으며 “어떻게 하다 60년 전통 정당의 지도부가 무소속 후보의 떼쓰기에 나가야 하는지 안타깝다”고 밝혔다. 또한 “지도부가 물러나려면 납득가능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민주당 지도부는 안 후보에게 바쳐진 제물이 됐을 뿐”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그는 안 후보에 대해 “그동안 ‘국민국민’ 하면서 애타게 말했던 정치개혁의 본질이 이해찬 대표의 사퇴라고 한다면 어이없는 일”이라며 “이번 사태는 후보사퇴협상이 마음대로 되지 않자 배후세력으로 이 대표를 지목, 찍어내려 했던 것에서 비롯됐는데 결국 안 후보의 떼쓰기가 통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근혜 후보는 이날 인천 송도에서 열린 비전선포식에 참석한 자리에서 “국민의 삶과 관계없는 단일화 이벤트는 국민의 알권리와 선택권을 침해하는 잘못된 정치”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이에 대해 안 대변인은 “대선 한 달 전까지 대진표가 짜지지 않은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로, 문 후보와 안 후보는 더 이상 국민을 거론하지 말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면서 “후보사퇴협상 방식을 보면 가치연대니 철학의 공유니 하는 말은 온데간데없고 싸늘한 권력욕만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