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단일화에 맞서는 ‘대세론’ 박근혜 후보의 움직임

과거사 사과에 선진통일당 합당까지, 대선가도 순풍 타나

2012-11-01     김길수 편집국장

지난 10월26일은 전직 대통령이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아버지기이기도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33주기 서거일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3년이 흘렀다. 하지만 그 이름의 무게감은 여전하다. 박근혜 후보가 지난 수 년 간 대세론을 누리며 집권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될 수 있었던 것도 보이지 않는 그의 이름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진보와 보수, 영남과 호남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우리나라 정치현실 속에서 그의 이름을 통해 혜택만 볼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朴후보, 과거사 논란 반전카드
지난 10월26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33주기 추도식에 참석해“아버지 시대에 이룩한 성취는 국민께 돌려드리고 그 때의 아픔과 상처는 제가 안고 가겠다”며“이제 아버지를 놓아드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한“마음의 상처와 피해를 입으신 분들에게는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에 빚었던 과오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하기도 했다. 박 후보는 대선 출마 직후부터 아버지인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여러 역사인식 논란에 시달려 왔다. 박 대통령 시절에 발생했던 5.16군사쿠데타, 10월 유신, 인혁당 사건 등으로 야권의 거센 공세를 받아왔다. 특히 최근 불거진 정수장학회‘강제헌납’논란은 박 후보의 지지율마저 위태롭게 했다는 평가다. 이에 지난 9월24일, 박 후보는 과거사와 관련된 사과 기자회견을 가졌고, 10월21일에는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에게 입장표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수세에 몰려 있던 새누리당과 박 후보 측은 때마침 불거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당시 북한한계선(NLL) 포기 발언 의혹으로 반전을 모색했다. 이 발언의 진위 여부와 추가적인 의혹을 제기하며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압박하고 나섰던 것이다. 새누리당에서도 당 차원의 지원사격에 나섰다. 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를 비판하며 박 후보의 지지층을 결집하며, 향후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는 야권연대의 고리를 느슨하게 만들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주영 특보단장은 10월26일 중앙선대위 회의에서“문 후보는 NLL을 평화적으로 지키는데 남북어로구역 설정 보다 더 나은 방안이 있으면 제시해 보라고 큰소리를 치는데 참으로 순진하고 위험한 발상”이라며“문 후보에게 국가안보를 맡겨서는 위험천만하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한편 김무성 총괄본부장은 안 후보를 향해“NLL 영토주권에 대한 안 후보 본인의 생각은 무엇인지, 노 전 대통령의 망언이 기록돼 있는 대화록을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라”며“여야의 NLL 공방 뒤에 숨어서 정치 공학적 이득을 취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로서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니다”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NLL을 둘러싼 공세가 국면전환을 이끌어낸 이후 별다른 성과 없이 지루하게 계속되는 것에 대해 새누리당내에서조차 회의론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슬슬 역풍에 대해 우려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SBS 라디오에 출연한 새누리당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NLL 문제를 가지고 계속 공세적으로 나가는 것이 대선에서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없다”는 지적 또한 이러한 맥락이다. 김 위원장은“2010년 천안함 폭발 이후 그것이 굉장히 안보의식을 고취해서 당시 새누리당에 유리할 것이라고 예측 했지만 선거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며“이런 것을 생각해볼 것 같으면 선거 전략상 무엇이 현명한 것인가 잘 판단하리라 본다”고 말했다.

선진통일당과 합당, 범보수세력 통합 시작됐나

지난 10월25일,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은 합당을 공식 선언했다. 이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야권후보 단일화에 맞선 범보수세력의 통합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날 나란히 기자회견장에 선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선진통일당 이인제 대표는“이번 대선에서 나라의 안정과 국민의 행복을 키울 수 있는 건강한 정권 창출이 시대적 소명이자 국민의 여망”이라며“두 당이 하나가 돼 소명에부응하고 여망을 받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용광로의 쇠처럼 뜨겁게 결합해 박근혜 후보를 압도적으로 당선시키자”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은 선진당을 사실상 흡수함으로써 역대 대선에서 캐스팅보트였던 충청 지역에서의 세 확산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실제 염홍철 대전 시장을 비롯해 선진당 소속 9명의 광역·기초단체장도 합류했다. 국회 의석도 선진당 4석을 더해 153석으로 늘어 과반 의석을 되찾게 됐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인제 대표는“선진당 대표와 국회의 원은 기득권을 포기하고 백의종군하면서 박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로써 1995년 자유민주연합, 2008년 자유선진당으로 이어졌던 충청 기반 정당의 맥이 사실상 끊어진 셈이 됐다. 이 대표는 선진당 성완종 원내대표 등을 통해 충청권의 상징적 정치인인 이회창 전 대표, 김종필 전 총재, 심대평 전 대표에게 통합 논의를 상세히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이 대표는 1997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탈당 이후 15년 만의 당적을 회복한 셈이 된다. 당시 그는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패배해 탈당한 뒤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 출마를 강행했다가 대선에서 패배한 바 있다. 2002년 대선에서는 민주당 후보로 나섰지만 노무현 후보에 밀리자 사퇴한 뒤 탈당했다. 이어 자민련에 입당했다가 2007년 대선 때는 민주당에 복당한 후 세 번째 대선 도전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그는 2008년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돼 지난해 10월 자유선진당에 입당했고 지난 4.11총선에서 6선에 성공했다.

흡수합당, 후폭풍은 없나

합당은 새누리당이 선진당을 흡수하는 형태로 이뤄질 전망이다. 선진당은 2008년 2월, 자유선진당의 이름으로 출범한 이후 4년 8개월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선진당은 창당 2개월 만에 치른 2008년 총선에서 18석을 얻어 제3당으로 발돋움했지만 지난 총선에서는 5석에 그쳐 군소정당으로 전락했다. 이는 충청권을 기반으로 했던 자유민주연합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것이어서 주목을 끌고 있다. 1995년에 창당한 자민련은 1996년 총선 때 50석을 확보했으며 1997년 대선 때는‘김대중·김종필(DJP) 연합’을 통해 권력의 한 축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 총선 17석, 2004년 총선 4석 등의 고전하다 결국 2006년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에 흡수됐다. 하지만 이회창 전 대표 측은 합당 기자회견 직후“사실과 다르다”고 언급하는 등 합당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회창 전 대표 측근들에 따라면 이 전 대표는 최근에 이인제 대표를 만난 적도 없으며, ‘전폭적 지지 표명’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 전 대표가 합당 기자회견을 한 것을 보고 화가난 상태라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전했다. 선진당 일각의 합당 반대 움직임이 이 전대표와 관련돼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선진통일당 정상화를 위한 전국 당원협의회’는 이날 새누리당과 선진당의 합당 금지 가처분신청을 서울남부지법에 제기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