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악재 한숨 잘 날 없는 박근혜 캠프

흔들리는 대세론 끝가지 잘 지켜낼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 높아

2012-10-04     김길수 편집국장

지난 9월24일 오전,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유신헌법, 인혁당 사건 등을 둘러싼 역사인식 논란과 관련해 전향적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선을 불과 석 달 앞둔 시점에서 이를 둘러싼 논란으로 대세론까지 위협받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자 전격적으로 진행된 회견이었다. 결국 박 후보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통해 논란에서 벗어난다는 정공법을 택한 것으로 풀이됐다.

박근혜 후보 결국,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
9월24일 오전 9시,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긴급기자회견에서 박근혜 후보는 “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음은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할 민주주의 가치라고 믿는다”며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며 “저 역시 가족을 잃는 아픔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만큼, 그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박 후보의 발언은 기존의 입장에서 크게 물러선 것이었다. 과거 비슷한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박 후보는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반복해 왔다. 그러나 역사인식 관련 논란은 당내 경선 때부터 본격적으로 터져 나왔다. 지난 7월에 진행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는 5·16과 관련해 “아버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평가하자 비박계 경선주자들이 이를 일제히 비난하고 나선 바 있다.
이후 박 후보는 공식 후보 선출 후 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 등 이른바 ‘대통합 행보’를 이어가며 논란을 잠재우는 듯 했지만, 9월10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대법원의 인혁당 판결은 두 개”라고 언급하며 다시 논란 속으로 빠져든 바 있다. 이로 인해 박 후보의 지지율은 눈에 띄는 하락세를 보였다. 이와 함께 야권의 후보들이 속속 확정됨에 따라 박 후보의 과거사 인식논란은 계속해서 그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였다.
지난 9월19일 안철수 후보가 무소속 출마를 선언은 박 후보로서는 하락세의 정점이나 마찬가지였다. 양자구도 조사에서 박 후보가 안 후보는 물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게도 뒤지는 결과가 다수 발표됐을 정도다. 또한 다자구도에서도 안 후보가 3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 기존 박 후보의 지지율 중 상당수의 중도층 표심을 빼앗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박 후보로서는 지지율 회복을 저해하는 최대 걸림돌이 과거사 인식논란으로 여길 만한 대목이었다.

끝없는 악재, 대세론 흔들리나
안철수 후보의 등장으로 대선판도는 요동치고 있지만, 장기간 대세론을 구가해온 박근혜 후보는 막판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안 원장이 대선출마 기자회견을 예고한 9월19일, 새누리당은 내부에서 터진 대형악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송영선 전 의원이 지난 총선 직후 한 사업가를 만나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위해 필요하다며 1억5천만 원을 요구한 내용의 녹취록이 한겨레신문을 통해 공개됐던 것이다.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송 전 의원은 강남의 한 사업가에게 “12월 대선 때 지역구 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6만 표를 얻으려면 1억 5천만 원이 필요하다”며 노골적인 자금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박 후보의 핵심 측근에게 2억~3억 원만 갖다 줬어도 (대구에서) 공천을 받았을 텐데 돈을 안 줘서 남양주갑 공천을 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에 새누리당은 긴급진화에 나섰다. 우선 원외 인사인 송 전 의원에 대해 의원총회 의결 없이 최고위원회의 의결로 신속하게 제명했다. 이와 함께 고강도 정치쇄신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도 했다. 사건이 알려진 당일 당 정치쇄신특위 정옥임 위원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치부패 신고센터를 설치하기로 했으며, 정치부패가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특위와 당 윤리위가 모든 힘을 모아 신속하고 엄정하게 대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한겨레의 녹취는 사실이지만 송 전 의원이 말한 내용은 근거가 없는 허위사실”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이날 정치쇄신특위 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후보도 “당에 식구들이 많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다”며 “바람 잘 날 없는 것 같다”며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준길 전 공보위원의 ‘안철수 원장 불출마 종용’ 파문에 이어 박 후보 경선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홍사덕 전 의원이 불법 정치자금 6천만 원을 받은 혐의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검찰에 고발돼 전격 탈당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불거진 대형 사고에 박 후보로서도 매우 실망스러운 안색이었다.

새누리당, 막말파문 대변인 임명 보류
당초 새누리당 대변인으로 임명될 것으로 알려졌던 김재원 의원이 구설수에 휘말린 끝에 임명보류가 결정됐다. 박 후보의 과거사 기자회견 전날인 9월23일 김 의원이 기자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욕설파문을 일으켰던 것.
새누리당은 24일 오전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김고성 전 의원의 세종시 당협위원장 임명안만 처리하고 전날 대변인에 선임된 김 의원의 대변인 임명안은 처리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당 관계자에 따르면 최고위는 회의 전에 김 의원의 대변인 임명안 자체를 일체 논의치 않기로 했다.
지난 9월24일 홍일표 의원의 사퇴에 따라 김 의원을 신임 대변인에 선임하고 이날 임명장을 수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김 의원이 대변인 선임 당일 저녁식사에서 만취해 기자들에게 욕설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었다.
이와 관련해 김 의원은 다음날 오전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잘못된 정보보고 내용에 대해 항의하는 과정에서 실수한 것이 내용의 전부”라며 “반성하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일과 후 같이 식사를 하면서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하지 않은 이야기를 과장해서 정보보고 하고 그것이 또 말이 건네지다보면 과장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시간 내에 다시 내게 전달되는 것이 섭섭한 마음에 기자들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잘못됐던 부분”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서병수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기자들에게 실수를 해 대변인 교체여부를 고민 중”이라며 “의견을 수렴해 다음번 최고위까지 결정을 내리겠다”고 전했다.

논란 속의 박근혜 캠프, 정책레이스 가속 중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 캠프는 새로운 전세제도를 제시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정책레이스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에 내놓은 정책은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자신의 주택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대출받고, 세입자는 그 대출금의 이자를 납부하는 형태이다.
이른바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로 명명된 이 개선방안은 집주인이 집을 새로 임대하거나 기존 전세금을 올릴 때, 전세보증금을 금융기관에서 저금리로 대출해 조달하고 세입자(임차인)는 그 이자를 금융기관에 납부토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세입자가 이자를 내지 못하면 공적금융기관이 이자 지급을 보증하게 된다.
우선 수도권 3억 원, 지방 2억 원 이하의 주택임차계약을 하고자 하는 연소득 5천만 원 이하의 소득자에게 적용하는 것으로 설계됐다. 대출 부담을 안게 되는 집주인에게는 대출이자상환 소득공제 40% 인정, 3주택 이상 소유한 경우 전세보증금 수입에 대한 면세 등의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이 제도가 보편화되면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세제도는 점차 사라지고 결국 월세문화가 정책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기관 대출로 집을 매입했으나, 집값하락으로 인해 대출을 감당하기 힘든 경우 주택지분의 일부를 공공기관에 매각할 수 있는 방안도 제시했다. 이러한 지분매각제도는 집주인이 자신이 소유한 주택의 지분 일부를 공적금융기관에 매각한 뒤 매각대금으로 대출금 일부를 상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집은 공동명의가 되므로 집주인은 공적금융기관에 매각지분에 대한 임대료를 지급하지만 계속 해서 거주할 수 있게 된다.
공적금융기관은 사들인 지분들을 기초로 유동화증권을 발행해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이 제도의 대상은 1가구1주택 보유자, 수도권 6억 원 이하의 주택, 담보가치인정비율 상한 80% 이하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주택연금사전가입제도는 현재 주택연금제도의 가입조건을 현재 60세 이상에서 50세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다. 조기퇴직으로 금전적 어려움을 겪는 베이비부머의 지원에 초점이 맞춰진 제도다.
이러한 ‘박근혜표 전세대책’을 두고 시장에서는 엇갈리는 반응이 나왔다. 업계종사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주로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목돈 안 드는 전세대책’이다. 대출금이 많아 전세가 안 나가는 주택의 경우 전세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세입자가 받아야 할 대출을 집주인의 명의로 받아야 한다는 점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위해 전세보증금 수입에 대해 과세를 면제해 주거나 대출이자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방안도 부족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실제 다가구 주택의 경우 공급의 90% 가까이가 월세로 나올 정도로 부동산 시장에 전세 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집주인이 굳이 빚까지 내가며 전세금이 충분치 않은 세입자와 계약을 맺을 리 만무한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