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폭하는 안보 불확실성, 다자외교로 풀어야

北 핵과 미사일, 균형외교로 주도권 확보 급선무

2017-06-02     김옥경 부장

한·미 정상회담, 합의 위한 구체적 로드맵 만들어야
EU·독일 벤치마킹, 한반도 평화 정착 좋은 견본

 
   
 
중국의 한 동북아정세 전문가는 문재인 대통령이 ‘난장판’ 같은 나라를 인수받았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문 대통령이 인수받은 한국이 국제적·지역적 영향력이 거의 직선으로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전문가는 문 대통령이 미·중·일 3개국과의 양자관계, 다자관계를 원만하게 처리하고 남북 관계를 안정시키며,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발언권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취임 초반 준비된 대통령의 면모를 보이며 순조롭게 출발하는 문재인 정부가 과연 한·미, 한·중, 한·일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할지 짚어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2주 만에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특사를 파견하며 일시 중단되었던 정상외교에 시동을 걸었다. 거듭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시험과 미국의 강경도일변의 대북제재 발언 속에서 발빠르게 움직였다는 평가다. 그러나 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자국이익 우선주의의 확산은 안 그래도 어려운 국제정세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더불어 냉전 이후 정립된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중국의 부상과 함께 흔들리고 있는 것이나, 트럼프, 시진핑, 아베, 김정은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의 지도자들이 하나같이 ‘스트롱맨’ 리더십에 기반한다는 사실도 정상외교의 난제로 지목되고 있다.
다행히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의 우려와는 달리 안정적인 한·미 군사동맹과 경제협력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홍석현 특사를 면담한 자리에서 ‘어떤 조건이 되면 관여정책으로 평화를 만들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물론 ‘어떤 조건’이라는 전제가 붙긴 했지만 ‘전쟁’까지 운운하며 강경발언을 이어왔던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평화를 언급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조령모개(朝令暮改)하는 트럼프의 기질상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주한 미군 방위비 분담금 등 풀어야할 현안도 산적하다. 때문에 이달 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은 향후 4강 외교를 푸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 북한 노동신문은 고체 연료 기반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북극성-2’형 최종시험 발사에 성공했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현장에서 발사결과를 분석한 후 실전배치를 승인하고 대량생산을 지시했다고 5월 22일 밝혔다.
한반도 평화 정착 최우선 과제 ‘주도권’
문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또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북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 대화를 통한 협력관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단절된 북한과의 대화 재개는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보란 듯이 미사일을 쏘아 올렸고, 문 대통령의 포용정책에 찬물을 끼얹었다. 일부에서는 협상테이블로 들어오기 전에 몸값을 올리기 위한 제스처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조만간 있을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건 사실이다.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정확한 로드맵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트럼프가 얘기한 ‘최대의 압박’에 대한 국제적인 공조를 어떻게 실현할지, 또 북한이 근본적인 태도변화를 보이면 어떠한 인센티브를 제공할지, 트럼프 정부의 관여정책에 대한 부분도 세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는 것이라고 주문한다. 지난 대선 기간 한·미동맹의 키워드로 부상했던 ‘코리아패싱(Korea Passing)’도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지 못한 데서 오는 문제다.
지난 1994년 북한 핵사찰 실무책임자였던 캐롤 스코니크 IAEA 고문도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코리아패싱’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서 협상 주체는 한국이 되어야 한다. 한국을 제쳐두고 다른 나라들이 논하는 ‘코리아패싱’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스코니크 고문은 “남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의 예측불가능성을 줄여나가야 한다. 남북이 공유하는 경제특구 등을 늘려 북한이 외부에 의존토록 하는 게 해결방안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균형외교에서 출발해야 한다. 균형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율이고, 조율이란 양자택일을 요구받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일례로 사드배치의 경우를 보면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중국과 미국을 설득하거나 견제하기보다는 두 강대국의 눈치만 보다 결국 ‘중국 편이냐, 미국 편이냐’하는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처지에까지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국민이 지고 있으니,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에 임하는 새 정부의 외교노선은 이런 과오를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보다 주체적으로 우리의 안보권을 개진하며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조율점을 찾아 국제사회에 제시할 수 있는 외교 역량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9일 오전 러시아, EU, 아세안 특사단과의 간담회가 열린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러시아 특사인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과 정재호 의원, EU 및 독일 특사인 조윤제 서강대 교수와 김종민 의원, 아세안특사 박원순 서울시장과 신경민 의원이 참석했다.
정권교체기 앞둔 시진핑, 사드보복 지속할 듯
중국은 올 하반기 제 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자회의를 개최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제2기 5년을 위한 새로운 판짜기가 이뤄질 중대한 대회다. 이때까지 지도자로서 강한 리더십을 입증해야 하는 시진핑으로서는,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섰다고 당장에 사드보복의 고삐를 늦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이번 19기 당 대회는 중국공산당 임기 관련 규정과 연령 등에 따라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고위공직자가 교체될 예정이기 때문에 더욱 그 중요성이 크다. 벌써부터 시진핑 주석 라인인 ‘시자쥔(習家軍)’과 장쩌민 전 주석 라인인 ‘상하이방(上海幫)’ 간 알력이 불거지고 있을 정도다.
이와 관련해 시 주석의 심복인 시자쥔 인맥들이 속속 중앙과 지방정부 핵심요직에 진입하고 있고, 이를 견제하기 위해 장쩌민 전 주석이 21개월 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때문에 중국의 사드보복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더욱이 문 대통령도 후보자 시절부터 사드배치와 관련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당선된 이후에도 아직 이렇다할 노선 표명을 하지 않고 있어 사드를 둘러싼 한·중 외교는 당 대회가 끝나는 올 연말까지 큰 진전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관영매체 환추스바오는 지난 달 24일 “문 대통령 취임 후 한국 새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 보이지만 사드 문제와 관련해서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이 사드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계속해서 이 매체는 “사드와 관련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은 ‘국가이익의 수요에 따라 사드의 군사적 효과성을 평가하고 한·미, 한·중 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분명 애매한 태도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이런 행보에 중국은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사드가 미·중 간 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사드와 관련한 중국의 기존 태도를 고수하고 국가의 확고한 의지와 결의를 보여줘야 하며, 둘째 중국의 반대의사가 약화되었다는 잘못된 신호를 한국 측에 전달하지 말아야 하며, 셋째 ‘서로 공 넘기기’식의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공 넘기기’란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 중단이 미국의 동의와 협조가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을 하면서 사드문제를 미·중 간 문제로 밀어갈 수 있는데, 중국은 이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4강(强) 벗어나 외교풀(pool) 저변확대 모색
문 대통령은 4강을 상대로 한 1차 특사 파견에 이어 EU·독일과 아세안을 상대로 하는 2차 특사단을 파견한 바 있다. 이들 특사단의 보고를 듣는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우리 외교의 다변화·저변확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했다. 또 주요 국가의 모든 정상을 직접 면담한 것은 새 정부 출범에 기대가 높다는 방증이라고도 부연했다.
문 대통령은 먼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고 온 송영길 특사를 칭찬하며 “러시아는 시베리아 천연가스 자원, 북극항로의 개발, 남북 철도의 유럽 연결 등 미래를 위해 특별히 중요할 뿐 아니라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강력한 수단으로써 중요성을 갖는다”며 “이번에 그런 문제까지 논의하는 성과를 거두었는데 향후 정상회담 시 이런 성과가 토대가 되어 러시아와의 관계가 한 단계 도약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특사를 파견한 EU와 아세안에 대해서도 4대국 특사 중심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평을 넓혔다는 의의를 설명하며 “아세안은 우리 입장에서 보면 투자규모가 두 번째일 뿐만 아니라 교민 방문도 최다인 국가들로, 실제로 미국과 중국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외교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생각한 측면이 있다. 향후 동북아시아를 넘어 아시아 경제공동체를 만들어 가는데 있어서도 아세안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역할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문 대통령이 다각적인 외교노선을 지향하는 데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경험을 벤치마킹해 한국이 처한 현실에 접목한다는 발상이다. EU는 이란 핵문제 해결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유럽의 양극화와 불평등, 복지확대, 사회적 대타협 등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EU통합의 경험은 동북아 다자경제공동체 등 미래에 있을 통합에 이바지할 것이고, 독일의 통일경험은 분단된 한반도에 좋은 견본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문 대통령의 저서 ‘사람이 먼저다’에는 균형 있는 외교를 강조하는 대목이 나온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과도 호혜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해 나가면서 균형 있는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아무리 중요한 관계의 나라라도 그 어느 한쪽으로만 올인해서는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허비할 시간이 없다. 인수위 기간도 없이 출범하느라 집권 초기 내각 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당쟁이나 정쟁에 휘둘려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될 것이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한국의 국익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실용적이고 유연한 외교 역량이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