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관리·영업실무 모두 1등급, 발로 뛰는 리더가 대세

고객만족 실천과 정도영업으로 선진금융을 선도해 나갈 것

2012-09-06     박상목 부장

“아이를 키울 때 부모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이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며 살만한 가치가 있는 어른으로서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레빈의 말처럼 자식을 키움에 있어서 부모로서 바람직한 모습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이는 비단 부모의 역할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터, 우리 시대도 실천하는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에이플러스에셋 김진석 상무는 실천하는 리더십의 전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사 4년 차를 맞이하지만 마치 10년을 보낸 것처럼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왔다”는 김 상무는 본이 되는 리더를 지향하며 오늘도 자신의 일에 열정을 다하고 있다.
서울에 살던 그는 부산본부장을 맡으며 삶의 터전을 부산으로 옮길 만큼 인정받는 인재이자, 열정적인 리더이다. 
미래에셋에서 사업부장으로 일하던 그는 스카우트 제안을 해오는 에이플러스에셋을 여러번 거절했다. 하지만 소개자의 영향력으로 마지못해 서울 강남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에서 열린 에이플러스에셋의 투자설명회에 참가했다가 마치 해머로 머리를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회사가 있다니…. 그간 GA(General Agent: 독립채널) 대표직을 권유받고도 많은 거절을 하던 제가 가지고 있었던 독립채널(GA)에 대한 한계와 부정적인 인식을 모두 불식시킨 자리였습니다. 선진국 금융상픔 판매 형태인 미래 종합금융투자자산관리의 트렌드를 보았습니다.”

결국 독립채널(GA) 발전 가능성과 매력에 푹 빠진 김 상무는 2009년 에이플러스에셋에 입사했다. 2000년 한국MDRT 창립멤버로서 초대 한국MDRT지역회장직을 수행하며 각사 MDRT를 모으고 몇 명이 모여 창립한 한국MDRT협회를 미국에 공식인가(Charter)를 받기 위해 분주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그는 “2009년 당시 에이플러스에셋에서 가장 MS(Share of Market)가 작은 척박한 부산 독립채널(GA) 시장에 투입됐다. 한국MDRT를 창립하던 마음으로 미래의 낯선 땅에 먼저 온 선배로서 풀도 뽑고, 돌도 치우며 후배들을 길러내겠다는 것이 당시 그의 목표였다. 초기 전산시스템이나 인프라가 갖춰지지도 않았던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보니 어떻게 일했었는지 모르겠다”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부산에 내려와 스카우트 머니가 난무한 지역에서 본부를 만든다는 것이 많이 난감했다”고 말한다. 허나 회사의 정책은 부산지역의 리쿠르팅 문화를 정상화 시키는 것이었고 그러한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내려왔기에 지속성과 진정성으로 후보자를 대하겠다는 각오로 차별화되는 에이플러스에셋의 오더메이드 상품과 스페셜한 영업시스템(CFP본부지원, 골프마케팅, 투자세미나 등)을 끊임없이 알려왔다. 그의 노력이 빛을 본 것은 그로부터 13개월과 21개월에 이르러서다. 역대 최고의 외국사 챔피언과 국내사 슈퍼 챔피언을 입사시킨 것이다.

전문적 금융지식은 기본, 열정을 더해 고객 곁으로

그는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경제학 박사과정을 준비중인 경제, 경영의 전문가다. 일반대학원 졸업 후 현대그룹 현대정유에 입사했지만 주체의식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스스로 창조해가는 역동적인 삶을 꿈꿔왔던 그는 자주적인 동시에 고객의 마음에 평화와 안식 그리고 재정적 안정을 줄 수 있는 금융컨설턴트의 길을 선택했다.
처음 들어간 곳은 푸르덴셜생명이었다. 1999년부터 라이프플래너로 일하며 3W 250주(일주일에 3건 이상의 계약을 한주도 쉬지 않고 달리는 자신과 싸움 릴레이, 연속 5년)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고, Excutive(최정상) 라이프플래너를 달성하며 그린재킷을 수여 받았다. 또한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 COT(Court of the Table), TOT(Top of the Table)를 매년 달성하며 한국MDRT 창립멤버이자 한국MDRT 초대지역회장을 역임하며 이 업계에서 타고난 듯 빛나는 업적을 쌓아왔다.
이후 지점장, 기업컨설팅(SP프로그램에 의한 선진프로세스영업문화 창출), 미래에셋 사업부장으로 연이은 스카우트를 거쳐 오늘 에이플러스에셋 부산본부 본부장에 이어 상무의 자리에 이르렀다.

끈기와 성실, 진정성이 있다면 고객은 인연이 된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김 상무는 “아이들을 키울 때 아이들의 실패와 불행을 참지 못하는 부모들이 아이를 망치게 되는 것처럼 자신의 방식대로 키우고 싶은 욕심에서 벗어나는 것은 마치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어렵다”고 말한다. 아이를 키우는 마음과 조직을 관리하는 관리자의 마음은 어느 정도 교집합을 이룬다. 자신의 욕심대로 조직을 이끌어 가기 보다는 스스로 보여줌으로써 이끌어 가는 리더십을 선택한 그는 ‘관리자가 대 고객접점을 떠나 고객을 발굴해 상담 테이블에 앉히지 못한다면, 리더로서 조직원들을 이끌기 어렵다’는 생각에 대 고객접점영업도 조직 관리와 병행해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발로 뛰고 포기 하지 않았던 날들, 정신을 잃지 않고 주말에는 VVIP고객발굴 세미나를 지속적으로 추진한 끝에 2년 만에 업계 기네스 계약을 이뤄냈습니다.”

이렇게 조직 관리뿐만 아니라 영업실무를 병행하는 그의 모습은 조직원들에게 관리자가 아닌 대 선배 영업인의 모습으로 비춰지며 롤 모델이 되고 있다.
하지만 매일같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지치기는 그도 마찬가지, 늘 시간에 쫓기고 힘에 부치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내뱉은 말에 책임을 지는 영업인이 되고자 항상 다짐하고 기도한다고 한다.
그가 에이플러스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마인드는 바로 끈기와 성실, 진정성이라고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마음과 ‘성공한 자의 과거는 비참할수록 아름답다’는 신념으로 달려온 김 상무가 2009년 처음 부산에 내려왔을 때만해도 조금은 참담했다. 부담되는 조직충원 목표에 회사정책 상 스카우트 머니가 없는 상태에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에 물러날 곳은 없었다. 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그의 원동력이 되었고 그 힘으로 척박한 황무지 부산을 에이플레스에셋의 메카로 만들었다.

그는 “에이플러스에셋은 부산지역을 지방공략의 거점으로 삼고 있다”면서 “에이플러스에셋이 보험을 중심으로 해 전 금융권을 아우르는 다양한 종합금융판매회사로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김 상무의 다음 비전은 지금의 독립채널(GA)이 선진국처럼 투자상품 판매에 있어서 IFA(Independent Financial Advisiors)로 갈 수 있는 날까지 정도영업과 오더메이드 상품을 통한 고객 만족으로 한국의 금융문화를 발전시키고, 부산지역이 독립채널(GA)의 장점과 원수사 장점을 고루 갖춘 에이플러스에셋의 진정한 모습을 고객들에게 알리는 선봉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김 상무는 “철저한 고객 중심의 영업으로 고객만족을 극대화 시키고 100% 유지율을 이어가는 철저한 프로로서 이러한 활동을 바탕으로 회사의 경영전략에 부응하고 글로벌화되는데 기여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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