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후보 한계론’ 넘어 새로운 신화 쓴다
‘제3후보 안철수’ 대중의 지지 업고 무소속으로 대선레이스 완주
18대 대선이 4개월이 채 남지 않은 시점까지 안철수 원장의 ‘안개속 행보’ 전략이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만을 고려한 선택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는 구태한 정당들의 행태에 분노하고 있는 민심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아직도 낡은 이념 논쟁에 빠져들고 있는 낡은 정치권에 대한 부정이며, 안철수 원장의 평소 주장처럼 ‘진보와 보수의 시대가 아닌 상식과 비상식의 시대’로 가자는 새로운 가치의 선택이기도 하다.
국민들은 이런 안 원장의 출마에 대해 당락을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낡고 부패한 정치권에 염증이 나 있던 유권자들을 다시 투표장으로 이끌고 동시에 정치개혁을 현실화하는 전환점으로 생각하고 있다. 민심은 정권 교체를 열렬히 바라고 있지만, 정권 교체를 바라는 그 염원만큼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는 모든 정치권력의 무능함에 대해서도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민심을 등에 업은 ‘안철수 대망론’의 실현 여부다.
정치권 일각에선 과거 제3후보들의 실패와 달리 이번 대선에서 안 원장이 새로운 신화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역대 대선을 보면 여야 정치권에 속하지 않는 제3후보가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는 등 대선판의 또 다른 ‘다크호스’로 떠오르곤 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본선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거나 출전을 하더라도 미미한 지지율에 그치는 경우가 상당했다. 이제 대선까지는 불과 3개월 남짓. 과연 안철수 신드롬의 정체는 무엇이고 안 교수가 제3의 후보로서 과거 제3후보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이고, 제3후보서의 한계를 넘기 위해 풀어야할 숙제는 무엇인지 짚어봤다.
안철수 신드롬의 정체는 ‘정치적 환멸’
안철수 원장의 지지율 상승은 여야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혐오감이 그 만큼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아울러 이명박 정권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국민적 환멸감 역시 안 원장 지지율 상승에 한 몫하고 있다. 여야의 잠룡들이 안 원장처럼 국민을 홀리지 못한 것은 더 그럴듯한 구호와 정책을 개발하지 못해서도 아니고, 명망가들을 줄 세우는 세력 과시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또, 상대 후보를 좀 더 신랄하게 때리지 못해서도 아니다.
대중의 실망은 그렇게 먼 곳에 있지 않다. 가령 이종걸 의원이 박근혜 후보를 향해 ‘그년’이라고 했을 때 일제히 침묵했다. 민주당 당직자의 여기자 성희롱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말하지 않았다. 민주당 안에서도 쉬쉬하는데 굳이 자신이 나서 당내 지지표를 잃을 이유가 없다고 계산했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먼저고, 여성 인권이 어떻고, 품격이 어떻다”는 그동안의 좋은 말들은 공허해졌다. ‘쇼’를 잘하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평범한 일상의 생활에서 대중은 그의 정체를 알아채고 만 격이었다.
박지원 원내대표가 검찰 출두를 거부했을 때도 그렇다. 당 안에서도 공개적으로 말은 못해도 ‘민주당은 정략적이고 자기반성 없는 패거리 집단’으로 비치는 걸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야권의 모든 후보들은 아예 침묵하거나 “출두할 필요가 없다”고 동조했다. “우리가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걸 깜박 잊은 게 아니라면, 당내 실력자인 박 원내대표와 불편한 관계를 가질 ‘용기’가 없었던 게 틀림없다. 이런 소소한 현상에서 대중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평론가인 윤모씨는 “상대 후보를 때리는 데는 갈수록 능숙해지는 이들이 자신의 주변 문제 앞에서는 벙어리가 된다. 손익계산을 그렇게 잘 따지면서 입버릇처럼 ‘담대한 희망’이라는 말을 쓰는 그들의 모습이 대중들에게는 표리부동한 작태로 비춰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모든 후보들이 자신의 당내 표(票)만 좇는 동안 정작 바깥에서 자신을 어떻게 지켜보는지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7대 대선 ‘문국현’, 16대 대선 ‘정몽준’
과거에도 안 원장처럼 대선을 앞두고 여당과 제1야당 후보가 아닌 제3의 후보가 이른바 ‘대세론’을 형성하며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곤 했다. 특히 지난 2007년 17대 대선 당시 유한킴벌리 사장을 역임했던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깨끗하고 청렴한 기업인’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국민적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당시 새로운 정치적 대안으로 떠오른 문 후보는 범여권 단일화의 손길을 거부한 채 창조한국당을 창당,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길을 택한 뒤 대선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기존 정치권에 비해 조직과 세에서 열세였던 문 후보는 결국 그해 대선에서 5.8%의 표를 얻는데 그쳤다.
고건 전 총리 역시 대선을 앞두고 대권후보로 급부상했던 인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약점이었던 경륜과 조정능력이 높게 평가받으면서 유권자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고, 한때 3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는 등 강력한 대권후보로 떠올랐다. 범여권으로부터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으며 주가를 올리기도 했지만 북핵 문제 등 당시 현안과 이슈에 침묵하면서 소신과 과단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고, 결국 본인 스스로 대권을 접어야만 했다.
지난 2002년은 월드컵 4강 신화와 함께 우리 정치사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한해였다. 이른바 ‘노풍’이 전국을 강타하면서 당시 대세론을 형성했던 이인제 후보를 제치고 무명에 가까운 노무현 후보가 집권여당 새천년민주당(현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가 된 것이다.
그러나 대선경선이 끝난 뒤 무소속 정몽준 의원이 월드컵의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면 지지율이 급상승했고, 새로운 ‘다크호스’로 떠오르게 됐다. 당시 FIFA 부회장이자 2002월드컵 조직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정몽준 의원은 여당 대선후보였던 노무현 후보보다 높은 지지율을 얻으며, 단숨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견줄만한 대권주자로 떠올랐고, 이후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 논의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정 후보는 당시 국민통합21을 창당해 대선을 위한 조직과 세를 다졌지만 정당중심의 정치기반을 둔 집권여당의 노무현 후보가 결국 승리함으로써 정 후보는 본선 무대를 밟아보지도 못했다. 이 때문에 민주통합당은 안철수 원장과의 단일화가 진행되더라도 자당 후보가 결국 최종 후보가 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안철수, 과거 제3후보와 다른 경쟁력은?
앞서 살펴봤듯 과거 제3의 후보들은 한때 위협적 지지율을 보이며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본선에 들어서면 비교적 낮은 득표율을 보이며 고배를 마셔왔다. 이는 바로 제3후보에 대한 한계론이 존재하는 탓이다.
안 원장은 과거 제3후보의 ‘위협적 지지율’을 뛰어넘어 여야 유력 주자들의 지지율을 월등히 뛰어 넘는 ‘이기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더욱이 대선승리의 핵심 키워드인 중도층과 2040세대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표 확장성 역시 뛰어나다는 점에서 일각에선 안 원장이 이번 대선을 통해 새로운 신화를 만들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는 특히 민간인 출신의 비정치인으로서 정파적 논리가 배제돼 무당파층의 지지도 함께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멘토로 알려진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는 대선을 출마하더라도 결코 정당을 만들지 말 것을 조언하고 있다. 만약 대선에 출마한다면 무소속 후보로서 대선레이스를 완주하라는 것이다. 이는 당을 만듦으로써 정파적 이해관계에 얽힐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안철수 열풍은 현재의 정치권이 과거 ‘3김 시대’와 같은 강한 고정표와 단결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과 다르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원장과의 단일화가 추진되더라도 정당정치의 기반과 조직을 무너뜨리고 안 원장의 승리를 점치는 이들도 상당하다. 이는 곧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후보를 내지 못한 제1야당 초유의 사태가 대선에서 또 다시 되풀이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많은 대중은 변화보다는 안정감을 추구하며, 대선은 더욱 그렇다는 점에서 안 원장은 여전히 불리한 위치에 놓여있다. 더욱이 정치적 경험이 부족하고 검증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지금의 높은 지지율이 대선 당일 투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 때문에 한때 대세론을 형성했던 많은 제3의 후보들은 대선레이스를 완주하기도 전에 중도에 포기하곤 했다. 장고를 거듭하고 있는 안 원장 역시 언제라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대세론 對 제3후보론…승부는 지금부터
18대 대선, 승부는 이제부터다. 12월19일 치러지는 대선이 약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에서 3개월이면 천지개벽이 가능한 시간. 선두 주자의 지지율이 반토막 나기도 하고, 제3의 후보가 출연해 판을 뒤흔들기도 한다. 대선판을 뒤흔들 숱한 변수들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18대 대선의 최대 변수는 역시 ‘경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발생한 것은 대선을 1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국가부도 사태는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의 승리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예상치 못한 경제의 급변이 대선 변수로 작용한 대표적 예이다.
올해 대선에선 하반기 경제가 어느 정도까지 활성화할 것인가가 최대 변수로 꼽힌다. 현재 한국경제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촉발된 경제 불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상황.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하우스 푸어의 양산과 기업 도산으로 인한 실업, 높아져만 가는 취업 장벽, 그리고 생활고로 인한 자살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등장한 지 오래다. 또한 국가 경제의 허리를 책임지는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비율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경제가 가장 중요한 변수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단적인 지표가 주가 지수다. 주가가 급등하고 예상외로 경제가 호전될 경우 범여권엔 호재가 될 것은 분명하다. 반면, 주가가 폭락하면 범여권엔 분명한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부동산 경기도 선거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변수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터져 나올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남북관계의 진전이다. 일각에선 이젠 시대가 바뀌어 남북관계가 선거에서 그리 큰 변수가 되지 못하리란 관측이 있지만, 남북관계의 진전이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여전히 대선 국면에서 주요 이슈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 군소정당 일부 후보에 대한 대망론에도 불구하고 안정감을 추구한 유권자들은 문국현이나 정몽준이 아닌 여당이나 제1야당의 후보를 선택했다. 지난해 10.26재보선 이후 ‘안풍’을 몰고 온 그가 과거 제3의 후보와 마찬가지로 그저 바람에 그칠지 아니면 정치지형을 바꾸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