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서 에너지 사업 연매출 150억 대 성공신화 쓰다
청주ㆍ청원서 5개 사업체 거느리며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앞장’
명함에는 사업장 이름이 5군데 “직원 150명 봉급줄 때 가장 행복”
인정 많은 노신사 같은 온화한 이미지를 풍기는 양 회장이 내민 명함에는 사업장 이름이 5군데나 적혀 있다. 이 가운데 양 회장의 대표적 사업장은 청주시에 소재한 (주)남청주가스와 청원군에 소재한 (주)동원엘피지충전소다. 여기에 청주시에서 택시 93대를 운영하고 있는 (주)동원택시, 충북 괴산군에 (주)소수주유소 대표이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충주시에 소재한 동원가스충전소는 3년 전에 SK가스(주)로 임대, 운영하고 있다. 또 얼마 전에는 서울 영등포구에 ‘슈어(SURE)’라는 해양심층수를 판매하는 (주)파나블루 대리점도 경영하고 있다. 매출 150억 원대를 올렸지만 이미 사업을 정리한 (주)SK동원을 제외하고도 현재 이들 사업체에서 월급 주는 직원 수만 150명이 넘는다. 이들에 딸린 식솔을 4인 가족으로 치면 600명의 삶을 책임지는 셈이다. 겉만 그럴듯한 부실한 기업들이 많지만 양 회장이 경영하는 사업장은 웬만한 중소기업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속이 탄탄하다.
양 회장에게 먼저 기업가로서 보람은 언제 느끼느냐고 묻자 “직원 봉급줄 때 가장 행복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부실한 기업들은 월급날이 가까워지면 은행에서 돈 빌리기 바쁜데 오히려 기쁘다고 한다. “저는 월급날이 토요일이나 일요일 끼면 미리 땡겨서 주고 명절 때는 직원들에게 선물을 주며 고맙게 생각합니다. 물론 대외적으로 칭찬받을 때도 보람을 느끼죠. 특히 사업이 뻗어나갈 때 신인도가 좋아서 회사 하나하나가 물 흘러가듯 순탄하게 잘 경영하고 사고 한번 안 나서 너무 행복합니다. 그래서 늘 직원들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양 회장은 “LPG가스와 주유소 등 에너지사업은 택시 운수업과 일종의 연관사업이라 상호 시너지효과를 거두고 있다”며 “사업초기에는 남의 사업장을 임대해서 경영해 돈을 벌었으나 지금은 남의 임대는 단 한군데도 없고, 전부 내가 오너”라면서 피땀흘려 일군 자신의 사업장에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는 듯 했다.
“IMF, 내겐 기회였다” 친구 사업장 임대후 신뢰 하나로 성공가도 달려
양 회장은 1972년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우리나라 전축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별표전축’에서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첫 직장에서 경리(재무파트)를 맡아 덕수종합개발(뒤에 두산건설로 흡수)과 천일사(뒤에 태광그룹 흡수) 등 3곳의 재무를 담당했다. 1970년대 당시 신혼부부들의 혼수품 목록 1호로 통할 만큼 음악팬들로부터 고급 전축으로 통했던 별표전축이 대기업들이 첨단 전자 오디오 시장을 열어가면서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양 회장도 1979년 퇴직의 아픔을 겪었다. 이듬해 덕수종합개발(주) 입사해 91년까지 재직, 상무이사로 퇴직했으나 다시 직장을 잃은 양 회장은 당시 커가는 세 딸과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했다고 한다. “퇴직금 3,000만 원을 받고 막상 회사를 그만둘 때 큰딸이 대학 입학을 앞둔 시기인데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생각에 너무 힘들어서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당시 어려웠던 기억때문인지 양 회장은 여러 번 눈시울을 적셨다.) 다행이 큰딸은 서울대 입학해 아버지의 어깨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주었다.
앞날의 불확실성에 잠을 못 이루던 양 회장은 1991년 어느 날 경기공고 동창인 최영규 사장(동원석유 대표)을 만나 주유소 사업을 권유받는다. 재력이 있는 친구로, 가스충전소를 그만 둘려는 시기에 친구를 신뢰해 임대로 운영해보라는 권유를 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것이 당시 44세의 양 회장에게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양 회장은 93년도에 청주에 본격 뿌리를 내렸다. 사업 초기엔 최영규 사장의 사업장을 임차해 경영하다 IMF가 터지면서 금리가 쌀 때 제도금융권 지원을 받는 등 사업가로서 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누구에겐 위기였다는 IMF가 양 회장에겐 기회였던 셈이다. 무일푼으로 사업을 시작해 신뢰 하나로 올해 매출 150억 원대를 바라보는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양 회장은 “당시 두산건설에서 살아남았던 임원들은 하나하나 회사를 떠나고 있었지만 저는 반대로 친구들이 보증서서 하나하나 사업체를 키워나갔다”면서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일찍 그만둔 게 오히려 기회였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근면·성실·신뢰는 인생 소중한 덕목”
매일 서울↔청주 버스로 출퇴근하며 ‘업무’양 회장의 하루 일정은 서울 구의동 자택에서 나와 오전8시 동서울터미널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청주로 내려가면서 시작된다. 1시간 40분 남짓한 거리를 매일 왕복 출퇴근한다. 연매출 150억 원대의 회장님이지만 자가용으로 출퇴근 하지 않는다. “운전하지 않으니 피곤하지 않고 이동시간에 신문이나 잡지 등을 보고, 잠시 수면도 취하기도 합니다. 물론 운전을 않하니까 기름값도 절약되고 사고위험도 없지 않습니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에너지도 절약하고 여러 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양 회장은 그동안 사업가로서 욕심부리지 않고 정도경영을 해왔다고 한다. “LPG나 휘발유 등 인화성물질을 취급하다보니 안전사고를 예방하는데 가장 신경을 썼습니다. 사전에 예방교육을 철저히 해왔지요. 안전관리를 잘한 덕분에 당시 산자부장관과 가스안전공사로부터 상도 여러 번 수상했습니다.” 회사 경영에서 원가절감과 직원 안전관리, 직원대우에 중점을 뒀다는 양 회장은 경영혁신과 관련, “업계에서 가장 먼저 온라인시스템을 구축하고, 고객관리를 전산화했다”면서 “이런 성과로 (주)남청주가스는 중소기업청과 신용보증기금이 추천해서 ‘경영혁신중소기업’으로 선정받았다”고 말했다.
CEO로서 갖춰야 될 덕목을 묻자 양 회장은 ‘신뢰’와 ‘식견’을 꼽았다. “고객과의 신뢰도는 물론 직원들과 지인들과의 신뢰도 중요합니다. 친구들이 빚보증 서줄 때를 생각해보세요? 제가 신뢰가 없었다면 결국 이만큼 성공했을까요? 지금은 빚 보증이 하나도 없지만 기업가로서 ‘신뢰’만큼 소중한 덕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갚아야 할 때라는 양 회장은 남모르게 불우한 지역주민 돕기에도 앞장서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충북LPG산업 협회장을 맡아 6년간(1995~2001년) 봉사하기도 했다.
현재는 청주상공회의소에서 3대째 의원으로 활동하며 지역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중요한 가치나 신념을 묻자 양 회장은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것이 근면과 성실, 신뢰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사람에겐 당장은 힘들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좋은 기회가 온다”고 말했다. 6남매의 장남이라는 양 회장은 현재 구의동 우편취급국 국장으로 근무하는 아내와 슬하에 출가한 딸 셋을 두고 있다. “큰 딸은 서울대를 나와 공인회계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둘째딸은 해양심층수 대리점을 관리하고 있고, 막내딸은 중학교 교사를 하고 있어요. 부모 속 썩이지 않고 잘 자라줘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위암 수술후 건강관리를 위해 골프와 등산을 즐긴다는 양 회장은 요즘 퇴근 후 매일 지인들과 운동을 한뒤 막걸리 한잔을 나누면서 예전의 건강을 되찾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