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만드는 ‘권력 밖의 권력자들’
대선캠프 ‘얼굴 없는’ 참모들의 ‘전문성’이 ‘승패 좌우’
모든 선거에는 치밀한 선거 전략과 전술을 세우는 ‘얼굴 없는’ 비선조직이 있다. 그들은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막후 어디에나 존재하며 정치권력을 움켜쥐고 있는 권력 밖의 권력자들이다.
서울 동작구 대방역 인근의 한 빌딩에 사무실(30평 규모)을 차려놓은 A씨. 그는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자신을 소개하면서 “특별하게 하는 일 없이 지낸다”며 늘 자신을 낮춰 소개한다. 특별할 것도 없는 그의 명함에는 단지 이름과 전화번호만 기재돼 있다. 그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그가 뭘 하는 사람인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를 몇 번 만나본 사람들은 그의 동선(動線)이 생각보다 길다는 데 놀란다.
그는 수시로 기자나 경찰, 국정원 등의 정보기관 관계자들과 만나 주 1~2회 식사를 같이 한다. 직급을 가리지 않는다. 어느 날에는 현장근무자를 만나는가 하면, 또 어느 날엔 고위직 인사와도 만나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식사만이 아니다. 때로 술자리를 갖기도 한다. 마포나 신촌 등 여의도와 가까운 인근 호텔에서 교육계 원로나 학자들과 차를 마시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보통사람들이 만나기 힘든 중진 정치인들을 만날 때는 호텔 커피숍을 이용한다.
무엇보다 그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은 기자들을 만나도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의 이야는 전혀 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이야기만 들을 뿐, 특정 이슈나 문제에 대한 질문이나 정보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아무런 요구 없이 밥과 술자리를 마련하는 그에게 여의도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거나 짐작하고 있는 바를 서슴없이 모두 털어놓는다. 이들이 바로 모 대선후보 캠프의 비선(秘線) 조직에서 일하는 ‘얼굴 없는 참모’들이다.
얼굴 없는 실체 ‘비선 조직’
A씨처럼 대선후보의 숨겨진 캠프(비선)에서 일하는 참모가 많다. 올 대선을 4개월여 앞둔 요즘 A씨 같은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이들은 여의도에서 가까운 대방이나 마포대교 인근의 빌딩숲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있는 듯 없는 듯’ 비밀리에 움직인다. 이들이 여의도를 외면하고 여의도 인근에 사무실을 연 이유는 간단하다. 여의도보다 임대료가 싸다는 이유도 있지만, 권력 현장인 여의도에 사무실을 차리면 불필요한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 최측근들이 주도한 참여정부 평가포럼과 국민의 정부 시절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같은 이유로 마포에 사무실을 연 적이 있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여권 정치기상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이런 그들의 ‘막강파워를 견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민주당 지도부에 쇄도했다. 노무현·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분신이던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여권 정치기상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이런 그들의 ‘여의도 입성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민주당 지도부에 쇄도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그들은 모두 여의도가 아닌 마포에 사무실을 차렸다.
반대로 정치 1번지, 여의도와 멀리 떨어지는 것이 부담스러운 참모들도 있다. 이들 역시 여의도에 가까운 대방이나 마포에 둥지를 튼다. 불가근불가원이라는 권력의 원칙을 적용할 경우, 이들 지역은 지리적으로 최적의 위치에 있는 셈이다.
이렇게 사무실을 차리는 참모들은 대부분 ‘얼굴’이 없다. 비선으로 움직일 때가 허다하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의 핵심 측근으로 활동하다 이명박 전 시장의 주민등록초본 문제로 논란을 빚은 H씨도 일부 정치인과 기자들만 그의 존재를 알고 있을 정도였다. H씨는 평소 자신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앞서 언급한 A씨도 비슷한 처지였다. 지난 7월 초, A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었다. 그러자 그는 “다시는 만나지 말자”면서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언론의 관심을 좋아하지 않는다. 보통 정치인들은 얼굴을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비선조직의 참모들은 음지를 지향한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얼굴이 언론에 알려지는 순간 그동안 해 왔던 일을 중단해야 한다. 얼굴이 알려지면 주변 시선 때문에 일을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있어야 할 위치는 수면 위가 아니라 막후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든 가고 싶은 곳에 다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모두 만난다. 때문에 얼굴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행동반경이 줄어드는 동시에 수많은 태클이 들어온다.”
A는 그 대신 자신이 선택하고 지지하는 대선후보와의 깊은 신뢰관계를 무기로 삼는다고 말했다. 자신이 지지하는 보스와의 인간관계는 헌신과 의리를 가진 신뢰의 관계로 이런 신뢰관계가 없이는 ‘대선 승리’라는 원대한 목표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맺어진 신뢰관계야 말로 어떤 조건이나 관계보다도 강하며, 무궁무진한 힘을 발휘해 결국 원대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물론 선거철에 더 많이 생기는 비선조직은 여의도에서 가까운 지역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서울 시내 곳곳에 그들만의 ‘캠프’가 차려진다. 특히 2012년 대선을 앞둔 지금도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광화문팀, 서대문팀, 강남팀, 논현동팀 등 서울의 웬만한 지역에 캠프가 차려져 이미 공개된 곳도 있고, 또 차려질 예정이다.
그들의 숨겨진 무기는 ‘전문성’
보통 비선조직의 멤버들은 일반적으로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대학교수 같은 학자, 현장 판단이 빠른 언론인, 정보 취급에 능한 국정원, 경찰 출신 등이 고정 멤버다.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고 이를 캠프의 전략으로 연결하는 활동을 하는데, 이들의 전문성은 매우 효율적으로 작용한다. 새누리당 모 대선후보의 마포팀에서 활동 중인 한 인사의 설명이다.
“어떤 조직이든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참모가 있어야 한다. 특히 친인척, 동창, 친구 등 혈연과 학연, 지연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 인관관계가 무엇보다 중시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런 관계에서 동떨어져 있다고 볼 수 없다.”
지연, 학연 등을 기반으로 하는 학자, 언론인 등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한 인물 중심으로 활동이 이뤄지고 있음을 설명하는 말이다. 그는 “주 1~2회 정도 대선후보에게 직접 보고서를 올린다”고 말한다. 물론 대선후보와의 독대는 유동적이다.
후보의 약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확대하는 전략전술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이런 비선조직에서 만들어져 유통된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경우 동숭동팀의 책사 전병민 씨가 만든 보고서를 통해 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도 부국팀의 직간접적 지원이 큰 힘이 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비선참모들의 역할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역기능도 만만치 않다. 우선 비선조직에서 일하는 참모들은 많게는 수백명이 넘는다. 이들의 역할에 대한 교통정리가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어떤 특정 이슈가 생기고 급박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여기저기서 똑같거나 유사한 내용을 담은 보고서가 캠프 핵심부로 몰린다. 이런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물밑 경쟁을 치열할 수밖에 없다. 통제도 쉽지 않다. 물론 캠프 내부의 조직력이 살아 있으면 이런 혼란은 쉽게 통제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대선후보가 모든 사안을 직접 컨트롤하려 할 경우 혼란은 증폭된다.
비근한 예로 17대 대선당시 상황. 추락하는 지지율을 놓고 분석작업을 하던 이명박 전 시장 캠프는 전국에서 쇄도하는 대응방안 문건 때문에 심한 내홍을 겪었다. 박 전 대표 캠프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외곽그룹에서 하루에도 수십 건이 넘는 보고서를 만들어 오는데, 그걸 모두 다 검토할 수는 없다. 결국 그 많은 보고서 중에서 상황 변화에 가장 적합한 대책과 방도를 제시하는 보고서만을 선별적으로 검토해 본다”고 말했다. 비선조직 참모들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지만, 대선후보 주변을 파고드는 각종 보고서와 이를 둘러싼 파워게임의 실상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숨어있는 실세, 그들의 지향점은
참모들의 비선조직은 친목모임 형식으로 운영되는 사조직과는 성격이 다르다. 정치적 성향이 강한 이들은 상대 후보의 비리를 뒤지는 등 네거티브 선거를 주도하는 경우도 있다. 상대 후보의 사생활에서부터 재산관계, 부동산과 군복무 기록, 이력 등을 뒤지는 것은 기본이다. 은밀한 부문을 파고드는 경우도 있다. 비선조직원들이 늘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에 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전 대표의 마포팀이 네거티브 의혹에 휩싸인 이유도 이와 유사한 활동을 한 것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이 전 시장 캠프의 진수희 대변인은 박 전 대표의 비선조직인 마포팀을 ‘박 전 캠프의 국정원’이라고 부를 정도로 피해의식이 컸다.
현재 대선후보 캠프의 외곽에서 얼굴 없이 뛰는 참모들이 수십명에서 많게는 100명을 훨씬 넘으리라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활동하지만 정치적 지향점은 유사하다. 권력 창출을 통한 정치적 신분상승이 그들이 노리는 최종 목표다. 역대 많은 비선조직에서 활동했던 참모들은 청와대로, 총선으로, 정부투자기관으로 진출했다. MB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정권창출의 일등공신이었던 ‘선진국민연대’ 실무자급들도 청와대 행정관 등 청와대나, 중앙위원이나 의장, 지역 대표는 관변단체나, 공공기관 이사장급으로 대거 진출했다. 박영준 전 국무차장, 정인철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이 바로 그들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노력에 대해서 곧바로 보상이 이어지진 않을 지라도 자신이 노력한 만큼의 결과는 나온다는 게 비선조직 인사들의 전언이다.
모든 선거가 그렇지만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는 데는 후보자의 역량과 능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결정적으로는 유능한 참모들의 역할이 승패를 좌우한다. 광고 한 편으로 혹은 패배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군대 기피 문제와 스캔들을 극복하고 대통령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참모들이다. 후보자 개인의 이미지 메이킹부터 대통령 선거, 그리고 당선 이후 정책 방향까지 대통령의 오른팔이 되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는 대통령 뒤의 숨은 실세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꿈을 좇고 있다. 얼굴 없는 비선조직의 참모들은 지금도 꿈을 품고 여의도, 마포로, 강남으로, 광화문으로 몰려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