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대의 똑소리 나는 유기농 베이커리 운영

유기농 밀가루를 비롯해 설탕, 유정란, 트랜스지방이 없는 기름 사용

2012-08-14     김현기 실장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에서 서른 살을 이립(而立)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자립해 자신의 뜻을 확고히 세운다’, 또는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렇듯 서른이라는 나이는 청춘의 방황을 접고 자립해 자신의 기반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 서른이 되기도 전에 일찌감치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며 단단하게 커리어를 쌓아가는 청춘이 있다.

현재 현대백화점(킨텍스점) 입점 등 베이커리 4개점, 카페 1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다정베이커리’의 김다정 대표는 올해로 스물아홉이다. 대학 4학년이던 2006년 9월 정발산 본점을 시작으로 베이커리의 문을 열었으니 CEO의 명함을 가진지도 어느덧 6년이 흘렀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화장보다 민낯이 잘 어울리는 풋풋한 대학새내기 같은 외모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모습은 빵 이외의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그녀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가 됐다.

빵 만드는 행복한 모습 보며 꿈을 키우다

어릴 적부터 제과·제빵에 관심이 많았던 김다정 대표는 스물한 살까지 서울 신촌 홍대 부근에 살면서 꿈을 키웠다. 유명 빵집에서 빵 만드는 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미래도 그러하기를 꿈꿨다. 이런 딸의 마음을 눈치 챈 그녀의 어머니는 학원을 권했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그녀는 그 시간을 이용해 학원에 다녔다. 일찍부터 제과·제빵에 관심이 많았던 탓인지 그녀는 자격증도 쉽게 땄다. 이렇게 그녀는 한발 한발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경기도 고양시 정발산동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동네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매장 안에서 일을 했지만 정작 그녀의 관심은 빵을 만드는 곳이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리던 그녀는 결국 제과장에게 허락을 받아 빵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빵을 만들게 되면서 주간이던 대학을 야간으로 돌렸다”는 그녀는 낮에는 빵을 만들고 저녁에는 학교에 가는 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3학년이 되던 해, 그녀는 제과·제빵의 고급기술에 대한 열망을 채우기 위해 프랑스행 비행기를 탔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프랑스 ‘르꼬르동블루’ 제과기술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면담을 갔지만 그녀가 해결해야 할 학비와 생활비가 부담스럽기만 했다. 시름에 빠져있던 그녀에게 숙명여대 평생교육원 과정에 같은 교육코스가 있다는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곧바로 귀국한 그녀는 능력 있고 성실한 담당교수를 만나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
고급기술을 배운지 1년 반쯤 지났을 때 그녀는 창업을 마음먹었다. 그리고 2년여 동안 전국의 유명빵집은 물론 일본, 프랑스, 중국 등을 돌아다니면서 시장조사를 했다.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하며 하나하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2006년 김다정베이커리 정발산 본점이 탄생했다.
“처음에는 상호에 내 이름을 내거는 것이 쑥스러웠다. 많은 생각과 자료를 바탕으로 고민을 했지만 결국 이름을 거는 만큼 책임감과 긴장을 늦추지 말자는 뜻으로 ‘김다정베이커리’라는 상호를 결정하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잘한 것 같다.”

마진은 적어도 고객들 건강 생각해 유기농 재료만 고집

처음 베이커리의 문을 연 2006년 9월20일. 이 날은 그녀에게는 잊을 수도, 잊히지도 않는 날이다. “웰빙 바람이 시작되던 때였다”고 회상한 김 대표는 재료비가 조금 비싸더라도 건강을 생각해 베이커리의 방향을 ‘유기농’으로 설정했다. 유기농 밀가루를 비롯해 설탕, 유정란, 내추럴 버터, 우유는 물론 고객의 건강을 생각해 기름도 트랜스지방이 없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유정란은 경기도 연천군의 방사 유정란 농장과의 직거래를 통해 신선한 재료를 공급받고 있으며, 팥도 국산만 사용해 고객들에게 깊은 신뢰를 얻고 있다. 유기농 재료가 일반 재료비보다 3배가량 비싸 마진은 적지만 고객에 대한 신뢰와 책임감을 쌓아간다는 게 김 대표의 신념이다.

창업 후 한 때 근처에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이 생기면서 일부 단골고객들이 빠져나가기도 했다. 당황스럽고 걱정도 됐지만 흔들리지 말자고 생각한 김 대표는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최고의 질을 자랑하는 유기농 재료로 끊임없이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되면 고객들이 직접 비교해보고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알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김 대표는 자신이 만드는 빵에 자신이 있었다.
믿음이 통했던 것일까. 지금은 그 때 떠났던 고객들이 다시 찾아와 김다정베이커리의 빵을 칭찬한다. 대형브랜드들이 골목상권을 점령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녀가 자신의 고집을 꺾을 수 없는 이유다.

고객의 과거, 현재, 미래와 함께 하는 베이커리

김다정베이커리가 유명세를 타면 탈수록 체인점 제의를 해오는 사람들도 그만큼 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김다정베이커리를 크게 키울 생각이 없다. 현재의 매장 수에서 두세 곳 정도만 늘린다는 계획이다. 매장의 크기와 수에 욕심을 내기보다 현재의 위치에서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그녀의 목표이자 그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범위이기 때문이다.
대신 김 대표는 자신의 열정과 그동안 열심히 쌓아온 노하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다. 제과·제빵 관련 아카데미를 설립해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고, 더불어 집에서의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전해주고 싶다는 것. 또한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미흡하나마 봉사를 하고 싶은 것도 그녀의 계획에 포함돼 있다. 물론 지금도 그녀는 꾸준히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저녁때면 남은 빵을 홀트에 기증하고, 매년 어린이날에는 ‘아빠와 함께하는 케이크 만들기’ 행사를 열어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

어느 날 가족과 단골로 김다정베이커리를 찾던 한 초등학생이 김 대표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어른이 돼서 아이를 데리고 올 수 있게 빵집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고. 그 순간 그녀는 코끝이 찡해졌다. 고객들의 추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빵집, 고객의 현재와 함께 하는 빵집, 고객이 그리는 미래에 있는 빵집.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꿈꾸고 있는 김다정베이커리의 모습인데 어느덧 그 모습에 한 발짝 다가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속의 그녀는 여전히 화장을 하지 않아도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