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 vs ‘반 재벌 때리기’ 맞대결
‘순환출자 해소’ 대선 최대 이슈로
2012-07-28 김득훈 기자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의 재벌 때리기가 한창이다. 최근 민주통합당은 재벌의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재도입하며 재벌총수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9개의 ‘경제 민주화 법안’을 당론 발의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공약으로 내건 ‘경제민주화’와 관련, 기업들의 순환출자 문제에 대해 “바로 잡아야한다”고 밝혀, 재벌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재계는 정치권에서 논의 되고 있는 재벌개혁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민주당은 우선 재벌의 경제력 집중 완화를 위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을 고치겠다는 입장이다. 10대 대기업집단에 속한 기업이 다른 계열사 주식을 보유할 수 있는 총액을 순자산의 30% 한도로 제한하는 출자총액제한제가 포함됐다. 또 대기업집단이 계열사 간 꼬리물기식(A계열사→B계열사→C계열사→A계열사)으로 지분을 소유해 지배구조를 강화하는 ‘순환출자’도 3년 내 해소토록 했다. 순환출자를 해소하지 못했을 경우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안 등은 시행규칙 등을 통해 규정키로 했다. 지주회사가 무분별하게 대출을 받아 계열사에 출자하지 못하도록 부채비율 상한선을 낮추고(200%→100%), 자회사·손자회사에 대한 최소(의무) 지분율을 20%에서 30%로 늘리는 내용도 포함됐다.
민주당, ‘재벌특권’에서 ‘민생경제’로 전환
민주당은 여기에 더해 현행 최고세율(38%)을 적용받는 종합소득 과세표준 최상위 구간을 연소득 3억원 초과에서 1억5000만원 초과로 기준을 대폭 낮췄다. 이른바 ‘부자증세’ 법안이다.
이해찬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은 경제 기조를 ‘재벌특권경제’에서 ‘민생중심경제’로 대전환하고, 경제 민주화와 재벌개혁에 당의 명운을 걸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의 모든 대선후보가 경제 민주화를 핵심 공약으로 제시토록 하고, 경제 민주화 법안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19대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등 민주당의 주요 대선 주자들도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재벌개혁”이라고 한목소리로 부르짖고 있다.
문재인 고문은 “재벌은 이미 엄청난 순환출자가 이뤄져 총수가 지극히 미미한 지분을 갖고도 그 방대한 계열사들을 제왕처럼 군림하고 있지 않느냐”며 “재벌개혁을 위해 대기업집단의 순환출자를 전면 해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엄격한 법적용 필요”
또, 복지 수준 확대에 따른 증세에 대해서는 “국민들께서 의견 내고 이를 수렴해서 공감대 이루고 전문가와 공무원이 시안 만들고 대토론회를 열어 국민들이 복지수준과 조세부담에 대한 공감대와 합의하에 이를 추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구체적인 안은 의견을 모아서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벌 총수의 비리에 대한 ‘사면복권’과 관련해서도 엄중한 법집행을 강조했다. 박 전 위원장은 “벌을 받았는데 얼마 안 돼 사면되는 것은 법치를 세우는데 악영향을 끼친다”며 “돈 있으면 금새 나온다는 인식이 생기고, 일반 국민들도 억울한 심정이 든다. 엄격하게 해야 한다. 형 받으면 없던 일이 돼서는 안 되고 법치국가 확립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도 최근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에서 경제민주화와 관련 ‘재벌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재벌 그룹은 사실상 현행 법규상 초법적인 존재”라면서 “지금처럼 어정쩡하게 놔두지 말고 기업집단법을 만들어 재벌 체제의 경쟁력은 살리되 내부거래 및 편법 상속에는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산분리는 “반드시 강화”, 순환출자는 “유예기간을 주되 단호하게 철폐”를 주장했다.
재계, 경제민주화 그게 뭐야?
여야 정치권의 경제민주화를 위한 재벌개혁에 대해 재계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역하다. 최근 허창수 전국경제인 연합회 회장은 “정치권에서 말하는 경제민주화의 뜻이 명확하지 않아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해 제계와 정치권의 갈등이 예상된다.
허 회장은 최근 열린 전경련 주최 ‘2012 제주 하계포럼’ 기자단 만찬 간담회에서 “경제민주화라는 모호한 개념을 들고 나와서 무엇을 얘기하는지 모르겠다”면서 “기존 법률로도 경제민주화는 충분히 성취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대중의 표심을 의식한) 인기 발언에 일일이 대꾸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허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국회 지식경제위원회가 전경련을 향해 대· 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라며 상임위 차원의 결의안을 채택한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전경련이 경제민주화 같은 현안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한다는 재계 일부의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지경위 소속 여야의원들은 “전경련은 경제민주화의 당위성을 깊이 인식하고 경제민주화의 핵심인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데 앞장서라”고 촉구하며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허 회장은 전경련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변화 요구에 대해서는 “전경련이라고 해서 다 잘하는 건 아니다. 시대도 바뀌었고 비판받을 건 받고 바꿔야 할 건 바꿔야 한다고 본다”면서 “국민들에게 대기업들이 존경받아야 하는데 존경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일부 기업들의 잘못으로 전부가 그런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치는 게 안타깝고 그런 부분을 개선할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허 회장은 차기 대통령에 대해서는 아직 후보들이 공식적으로 안나왔다는 말로 언급을 자제하며 다만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밖에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법인세 등의 증세 논의에 대해서 그는 “증세가 과연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느냐”며 “과거 경험을 통해 살펴보면 그렇지 않았다고 본다”고 부정적 자세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