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스트 일꾼의 진정한 지역사랑 실천
아름다운 양산에서 태어나 일평생 양산에서 살며 양산의 밑거름으로 남을 것
양산, 긴 전통과 뛰어난 경관으로 만들어내는 농촌의 아름다움
경남 양산은 신라문무왕 5년 삽량주라 불렸다. 현 양산의 지명은 태종13년(서기1415년)양산군(梁山郡)으로 바뀌면서 양산의 전통은 시작되었다. 1996년 3월1일 양산시로 승격되었으며 현재는 1읍, 4면, 8동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양산시에 위치한 천성산은 상북면, 하북면, 주진동의 3개 읍면동에 경계를 이루고 있다. 깊은 계곡과 폭포가 많고 경치가 빼어나 소금강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건너온 1,000명의 스님에게 이곳에서 화엄경을 설법해 모두 성인이 되게 했다고 전해져 천성산이라 불린다.
부산, 울산 간 기능 분담으로 연담도시권이 형성된 양산은 현재 물금신도시를 중심으로 교통, 교육, 문화 등 도시기반시설과 편의시설 확충으로 독립된 도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낙동강의 풍부한 수리와 많은 일조량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농업이 발달했으며, 근대에는 철도, 항만, 공항, 고속도로 등 편리한 교통망을 갖추고 공업도시로 급속한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천년고찰 등 풍부한 관광자원을 바탕으로 관광산업도 발전하고 있다. 이처럼 급속한 양산시의 도시화는 여타 지방과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다. 현재 양산시는 농촌과의 공생을 모티프로 해 1차 산업과 2차 산업의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다.
천성산의 정기를 받은 양산시의 봉사(奉仕) 선비
농촌 지도자 경상남도 양산시연합회장인 서방우 회장은 농촌사회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평생을 살아왔다. 현재까지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서 회장은 15년 간의 배 작목반장으로 재임시절 농산물을 재배 생산해내어 유통과정을 겪으면서 많은 애로사항을 경험한 것을 지역에서 나누고 베풀며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서 회장은 좋은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어 놓은 비결은 “농산물은 병이 들면 상품성이 떨어진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을 예방하는 것만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
또한 무엇이든 열매를 따먹는 청과나 야채는 잎이 좋아야 맛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래서 잎에 사용하는 영양제 선택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작목반장 시절 지역적인 열세로 판매장 구조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 피땀으로 생산한 농산물이 제값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의 현실에서 판매경로의 고정이 가장 시급한 상황이라고 판단, 고정판로를 찾는 등 좋은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의 입맛을 맞추고 선호하는 품질의 맛을 찾아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등 지역농산물의 홍보에 앞장서 오면서 이에 양산시의 지원을 이끌어내어 농산물 유통과정에 양산시가 중간 중매 역할을 하여 서원유통에 납품하는 크나큰 성과를 만들어 냈다. 반평생 지역을 위해 헌신하며 봉사활동을 한 서 회장은 “이 모든 봉사활동과 사회활동이 가능한 것은 집사람의 덕분”이라며 “고마운 것은 아내가 믿고 잘 따라주고 도와주었다”라며 가족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지역의 일꾼으로 있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또한 서 회장은 “내가 조금 손해 본다는 생각과 수고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하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잘 따라 주었기에 가능했다”며 긍정적인 사고와 적극적인 생각이 오늘의 주위의 참여를 독려하였다고 하며 주위 분들의 사랑과 관심에 감사하다고 전한다.
서 회장은 농촌지도자 동면 총무에서 시작하여 면 부회장, 면 회장 16년 재임 이후 양산시 부회장 6년 재임 현재 농촌지도자양산시연합회장을 맡아 4년째 활동하고 있다.
“꾸준한 봉사활동의 경험을 토대로 회원들께 인정받아 3년 임기를 마치고 재임할 수 있었다”고 하는 서 회장은 “글자 그대로 농심(農心)이다.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라며 변화하는 양산시의 산 증인으로 지역민들의 아버지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양산의 흙으로 돌아가고 싶다
서 회장은 농사를 지으면서 IMF여파가 큰 시절 농산물 유통이 어려울 때 투잡으로 아카페상조 양산지사에 취업하여 현재는 봉사팀장이라는 직함으로 근무하고 있다. 상조(相助)일도 농악회 활동을 하면서 초상이나 잔치에서 꽹과리를 치는 등 기쁘고 궂은일에 항상 선두가 되어 활동하던 것이 계기가 되어 13여 년 전에 처음 일을 시작하여 이제는 젊은 사람이 하지 못한 경험을 토대로 묘지개장, 이장, 분묘, 등을 전국적으로 도맡아 하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다 보니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다”고 말한다.“많은 정치나 이권적인 세상사보다도 흙과 함께 살아왔다. 지역민들이 나에게 도움을 구하고자 한다면 나는 농촌의 씨앗이니, 씨앗을 뿌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서방우 회장은 요즘 시대 베푸는 것에 대한 행복을 아는 진정한 봉사자이다.
“자녀들도 지역에서 각자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 나에게 큰 힘을 주고 있다”고 하며 “아는 것을 물어보면 가르쳐주고 함께 가자는 생각으로 이때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말하는 서방우 회장. 세기를 걸쳐 선비 전통을 이어온 삽량주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