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익히는 것”

토익 만점자가 많아도 유창한 영어 구사하는 이들이 드문 세상

2012-07-03     송재호 이사

몇 해 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교육열을 극찬한 일이 있었다. 세계 최강대국이자, 대표적인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이 우리의 교육을 칭찬한 일은 대단히 흐뭇한 일이다. 그러나 내부에서 들여다보는 우리 교육계의 실상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공교육의 붕괴가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반대급부로 팽창한 사교육은 각종 가계부담과 함께 부작용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눈여겨 본 우리의 뜨거운 교육, 그것은 실상 가슴 아픈 질곡의 현대사와 맞닿아 있는 측면이 크다.

교육강국 대한민국이라는데

외세의 침탈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연이어 겪으며 이 땅은 오직 사람밖에 남지 않은 척박한 공간으로 내몰렸다. 비좁은 국토는 남북으로 분단됐고, 그나마도 70%가 산악지대여서 입에 풀칠을 하기도 버거운 지경이었다. 믿을 것이라고는 사람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런 점에서 당시 교육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자아를 실현해 나가는 백년대계가 아닌,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자원빈국의 국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부지런히 배우고 공부하며 스스로를 자원으로 키워가는 것이었다. 주입식 교육방식과 입시 위주의 수업의 근원도 이런 시대적 환경에서 엿볼 수 있다. 우리의 교육풍토가 이토록 척박하게 변한 것을 교육당국이나, 교육자들에게만 돌릴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무엇이든 보다 많이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이 당시의 시대적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가슴 아픈 관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바늘구멍보다도 좁다는 취업관문을 뚫기 위해 예비취업자들은 물론이고 학생들은 이른바 ‘스펙’을 쌓느라 여념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영어’이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있어서 영어의 중요성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세계적으로 공인하는 영어테스트인 토익과 토플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지만, 정작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영어는 관문을 통과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 그 자체를 자연스럽게 습득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는 시험에는 강하지만 실전에는 약할 수밖에 없는 우리 영어교육계의 고질적인 문제라 하겠다.

5세에 들어온 학생이 중학생이 되다

“언어는 외워서 구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해당 국가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생활이 녹아있는 집합체이기 때문에 이를 종합적으로 익히고 공부할 때만이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국내 영어교육의 메카로 꼽히는 관악SLP영어학당(이하 관악SLP) 이진화 원장은 20여 년 동안 공교육계에서 교편을 잡았던 인사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두 시간 내내 영어교육의 문제점을 격정적으로 풀어내는 그녀의 목소리가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도 이러한 이 원장의 이력과 관록 덕분인 듯싶었다.
SLP(Sogang Language Program)영어학당은 서강대학교가 1994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영어전문교육기관이다. 전인교육을 지향하며 세계와 인류에 기여하자는 서강대의 교육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진화 원장이 이끌고 있는 관악SLP는 이러한 SLP영어학당의 설립취지를 그 어느 곳보다 훌륭하게 실천하고 있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5세에 들어와 중학생이 될 때까지 다니고 있는 학생이 있다고 하니, 관악SLP와 이진화 원장의 남다른 교육철학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구현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테스트 성적이 올라간다는 것은 매우 결과적인 지표일 뿐입니다. 영어와 얼마나 친숙해지느냐, 영어권 국가의 문화와 생활을 얼마나 이해하느냐 등이 우리 영어교육의 출발점이지요. 이렇듯 지극히 생활적이고, 기본적인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가운데 테스트 점수는 자연스럽게 올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 원장은 이를 지극히 생활적이고 기본적인 프로그램이라고 표현했지만, 기자가 잠깐 동안 둘러본 관악SLP의 시설과 프로그램은 매우 특별해 보였다. 실제 이진화 원장이 가장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상황에 맞는 유창한 영어실력을 갖추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개인별 성향과 수준에 맞는 적절한 시설과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관악SLP에는 온라인을 활용한 영어리포트와 리딩습관을 길러주는 영어도서관이 있다. 게다가 다양한 수준을 가진 학생들이 스스로의 스피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강당에다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야외정원과 놀이터도 마련해 두고 있었다. 칸막이 책상과 커다란 헤드폰으로 가득 찬 강의실을 상상하고 간 기자로서는 매우 당황스러운 풍경이었다.

“영어와 함께 영어권의 문화를 배우기 위해서는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공간과 시설들입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뭔가 배우고 있다는 강박이 아닌 자연스럽게 경험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각 강의실에는 멀티미디어시대에 걸맞게 각종 최첨단 교육기기들이 단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설들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관악SLP 곳곳에 배어 있는 이진화 원장의 교육철학과 열정의 흔적이었다. 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존재했다. 강사의 이직률을 극소화해 학생과 강사가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지속적인 교육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건물을 넓히고, 시설을 증강하며, 강사를 늘이는 일은 돈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학생과 강사를 오랫동안 머물게 하는 것은 결코 돈으로 만 이뤄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는 이 원장이 수차례에 걸쳐 강조한 ‘정서적 교감과 안정’이 비단 학생들에게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강사와 학부모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사람으로서 공교육이 위기에 내몰린 상황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더욱 사명감을 가지게 되지요. 많은 분들이 사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비싼 지식거래소 정도로 인식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몸담고 있는 관악SLP를 통해 사교육에서도 전인교육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해낼 것입니다.”
사교육계 일부가 교육이 아닌 비즈니스에 매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진화 원장은 영락없는 교육가였다. 다만 그가 일하는 공간이 공교육에서 사교육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이 원장의 불타는 사명감은 관악SLP 출신 원생들을 통해 충분히 발현되고 있다. 이곳에서 교육을 받아 유학을 간 학생들이 학업에 부진한 현지 학생들에게 학습도움을 주는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날 정도다.
도량이 깊은 도인은 깊은 산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이 어디든 깨달음을 얻고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도인이다. 교육가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교육자가 학교 안에만 있을 것이라는 상상은 지독하게 편협한 편견일 뿐이다. 기자는 그날 이 땅의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에게 영어라는 수단으로 삶과 철학을 가르치는 가슴 뜨거운 교육자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