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한민국을 사는 당신은 주권시민이십니까
한반도 평화 수호와 번영은 결국 국민의 손에서 시작된다
4.11총선을 끝내고 대선을 향해 달려가는 요즘, 정가는 온통 안개정국이다. 통합진보당의 비례경선 부정파문으로 진보진영은 물론 그들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민심이 요동치고, 각 정당들은 연말에 있을 대선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편 지난해 연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한반도 정세는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 유럽발 경제위기로 2008년도 금융위기가 재현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렇듯 우리는 혼란스러운 시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이 격랑을 어떻게 헤쳐 나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총선을 거쳐 대선으로 향하는 이 길목에 서 있다. 이곳에는 수많은 ‘정치인’들로 북적대나 정작 그들이 해야 하는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이를 어찌해야 할까.
우리 모두의 착각
올해로 해방 67년, 건국 64년을 맞이했다. 우리의 근현대사는 암울하고 신산스러웠다. 500여 년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던 조선왕조는 외세의 모략과 침탈에 멸족 당했고, 이후 36년 동안 치욕의 일제강점기를 겪어야 했다. 수많은 이들이 독립을 위해 피와 땀을 흘렸고 목숨을 초개처럼 던졌다.
그들의 시신 위에 대한민국이 세워진 것이다. 그것은 다행히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공화제, 민주주의 국가였다. 이는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를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다. 또한 앞서 언급한 햇수를 단순한 숫자로 봐서는 곤란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어느덧 환갑을 넘겨 고희를 바라보고 있다. 사람의 나이로 환산하면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을 만큼 겪은 세월의 황혼이라 할 만하다. 실제 자유당 독재를 시작으로 5.16쿠데타, 12.12사태 등 각종 반란과 군사독재에 시달렸다.
물론 이에 항거한 혁명이 줄을 이었다. 자유당과 이승만 前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4.19혁명, 박정희 前 대통령의 서거의 촉매제가 된 부마항쟁, 전두환 前 대통령을 비롯한 신군부에게 역사적 멍에를 짊어지게 한 5.18광주항쟁 그리고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은 6.10항쟁 등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왔다.
그 싸움은 참으로 모질고 힘들었다. 흘린 피와 땀만큼의 결실도 있었다. 세계사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민주주의를 정착시켰고, 이를 기반으로 극동의 최빈국에서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서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는가. 70여 년에 가까운 세월과 그간 국민들 스스로가 기울였던 노력을 떠올린다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자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첫 번째 착각이 드러난다. 사람의 나이로 환산하면 성숙을 넘어 노화를 걱정해야 하는 세월이지만, 장구한 역사의 강 속에 놓고 보면 한 줌의 물이요,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다. 민주주의 성숙을 거론하기는커녕 아직 걸음마도 채 떼지 못한 수준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민주주의의 제도와 체계는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인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제도를 통해 대표자들을 선출하고 있고, 헌법상에 보장된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대부분 누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민주주의 곳곳에는 빈틈과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공직자의 비리와 부패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들을 걸러낼 수 있는 시민의식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완벽한 복지사회를 구현하기까지 아직 먼 길을 걸어가야 한다. 한편으로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완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평화적 촛불시위임에도 불구하고 광장이 원천봉쇄 당하거나 물대포로 상징되는 공권력의 폭력이 자행되기도 한다.
물론 공공연한 금권, 관권 선거가 판치고, 극빈층에서 아사자가 속출하며, 고문과 투옥 그리고 계엄이 횡행했던 군사독재시절에 비해 많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진정한 권리들을 따지고 보면 우리의 그것은 아직도 한걸음씩 천천히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는 착각에 빠져 있지 않은지 심각하게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정치는 우리의 생활과 생존과 직결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대담론’으로 묶어 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제기되는 저조한 투표율이 대표적인 사례다. 때때로 정치현안은 프로야구의 팀별 순위보다 홀대 받는 경우가 많다. 사석이나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금기사항으로 여기고, 정치는 소수의 특권층만이 직접 참여하고 누리는 ‘그들만의 리그’로 인식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이러한 정치무관심은 단지 민주주의 발전의 정체(停滯)가 아니라 퇴보(退步)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소수가 뽑은 대표자는 소수를 위해 일할 뿐이며, 정치적 무관심이 횡행하는 가운데 국민이 아닌 특정 개인과 세력을 위한 정책과 제도가 펼쳐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신이 민주국가의 주권시민이라 생각한다면 그 소중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가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할 시점이다. 일제강점기를 관통했던 독립투사들처럼 총칼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가 목숨을 던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시대는 단지 선거와 투표에 성실하게 참여하는 정도의 의무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불편한 진실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국호를 바꾼 뒤 극적 회생을 노리던 조선왕조는 일본의 집요한 침략정책에 의해 결국 패망했다. 이후 치욕의 역사로 일컫는 36년 동안의 일제강점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1945년 8월15일,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함과 동시에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다.
여기에 누구나 알고 있지만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 한 가지 있다.
그 해방은 우리의 힘으로 이뤄낸 것이 아니었다. 연합군이 투하한 원자폭탄 두 방에 일본은 항복을 선언했고, 그들의 식민지였던 이 땅은 일종의 전리품처럼 연합군 측에 인계됐다. 한반도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효율적으로 시행한다는 명분으로 국토는 두 동강났다. 북위 38도를 기준으로 분계선이 그어졌으며, 남과 북에는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두 축인 소련군과 미군이 각각 진주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한 1948년까지 미군에 의한 군정이 이어졌다.
이는 1980년대 후반까지 국제사회를 양분했던 냉전의 시발점이라 봐도 무방하다. 또한 민족 최대의 비극으로 일컫는 동족상잔의 비극 6.25의 불씨이기도 했다. 만약 연합군이 아닌 우리의 힘으로 해방을 이뤄내고, 열강에 의해 국토가 분단되지 않았다면 국토가 초토화 되고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거나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그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6.25전쟁 이후 냉전체제는 강화되었으며 북한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진영으로, 남한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진영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됐다. 그리고 각각의 우방이 지원한 자본과 물자로 전후 폐허가 된 국토와 민생을 해결해나갔다.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대미의존도가 높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지만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토양 속의 대미의존도는 아직 높은 편이다.
특히 군사적 의존도는 국가안보와 직결될 정도로 높은 편이다. 휴전 이후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은 여전히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다. 북한 100만 대군을 보유하고 있고, 노후한 재래식이긴 하나 대량 살상무기를 휴전선에 배치해 놓은 상태다. 또한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한 핵무장이 완성됐으며 대륙 간 탄도미사일 기술도 가지고 있다.
이렇듯 한반도에는 전쟁의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지만, 우리가 안심하고 생업에 전념할 수 있는 데에는 미국이 지원하고 있는 군사력이 큰 힘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북한이 막대한 군사비를 지출하는 동안 민생경제가 파탄 났다면, 우리는 미국이라는 최강대국의 안정적인 군사지원 속에서 경제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유독 주한미군 철수문제나 군사작전권환수 문제에 있어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명심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우방을 넘어 맹방(盟邦)으로서의 미국의 가치는 두 말할 나위 없이 높지만, 우리는 정치외교적 측면에 있어서 그 만큼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미국산 무기의 최대 수입국이며, 미국과의 교역에 있어서도 상당한 소비처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대한민국과 북한 사이에 일어나는 거의 대부분의 일은 우리 정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 북한 역시 식량지원 등 기본적인 의제를 제외하고는 대한민국 정부를 협상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직결된 문제라는 명분이 있긴 하지만,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주위의 열강들과 함께 논의하고 있는 모습, 더군다나 그 주도권을 대한민국 정부가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은 매우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왕조체제로 돌변해 버린 북한 정부가 각종 도발행위를 저지를 때마다 이에 대한 제재조치 등을 유엔에 상정해 결정해야 하는 현실도 서글프다. 그 만큼 우리의 군사, 외교적 힘이 부족하다는 반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어떻게 독립했으며, 이 땅이 분단된 과정을 찬찬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 시작은 우방들의 지원이었을지 몰라도 그 끝이라 할 수 있는 통일은 우리의 힘으로 이뤄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방의 힘, 우리의 힘
정쟁(政爭)이 격화되고 국민이 정치에 대해 고개를 돌렸을 때 역사적 비극은 반복됐다. 이는 곧 권력층의 비리와 부패로 이어졌으며, 국가의 기강이 흔들렸고 외세의 개입을 불러왔다. 최악의 경우에는 국가 자체가 사라지거나 주권을 빼앗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단군조선부터 대한제국에 이르기까지 그 멸망사가 이를 대변해 준다. 동북아시아의 맹주로 아시아 북방까지 영토를 넓힌 바 있는 고구려가 하루아침에 망한 이유도 그랬고, 뒤이어 들어선 발해가 몇 백 년을 버티지 못하고 멸망한 것도 분열과 부패 그리고 정치에 대한 백성들의 무관심 때문이었다.
권력은 무쇠로 만든 칼과 같아서 끊임없이 살피고 갈아주지 않으면 녹슬기 마련이다. 녹슨 칼날은 아무런 위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적군의 목을 베기는커녕 자신의 손을 베어 쇠독으로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권력이 이 땅의 국민들을 지켜주는 든든한 무기가 되기 위해서는 민심이라는 까칠한 숫돌이 끊임없이 갈아줘야 하는 것이다. 칼날을 날카롭게 유지해 줄 수 있는 숫돌의 조건은 간단하다. 녹이 잘 갈릴 수 있도록 까칠까칠해야 하며, 최대한 넓고 길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30년 가까이 북한을 통치해 왔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상을 떠났고, 30살이 채 되지 않은 그의 아들 김정은이 3대 세습이라는 전근대적 방식으로 집권했다. 북한의 경제는 파탄 났으며 생존을 위한 탈북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 정부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핵과 군사력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볼모로 각종 벼랑 끝 전술을 전개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만 년 한반도 역사에서 반복됐던 역사적 비극의 조건이 조금씩 충족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그 결과는 뻔하다. 내부에서 공멸하거나 외부로부터 침탈당하거나 두 가지의 경우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들어 중국이 동북공정을 강화하고, 일본이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는 것도 예사롭게 보아 넘길 일은 아니다.
물론 미국이라는 든든한 우방이 있기에 극단적인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은 편이지만 긴장을 늦추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동서가 명확하게 나눠져 있던 냉전시대에는 이른바 ‘진영논리’에 따라 우방이 다소 간의 희생과 출혈이 감수하더라도 끝까지 운명을 같이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시대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반도의 가치가 열강들에게 어떠한 이익도 주지 못하는 조건에 빠진다면 우리가 기대하는 지원이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든든한 우방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를 믿고 대한민국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일에 소홀히 한다면 지난 역사적 비극을 다시 한 번 반복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12년 대한민국, 우리는 주권시민으로서 권력의 칼날을 얼마나 잘 감시하고 있는지 반추해 볼 시점이다. 칼날에 녹이 슬지 않았는지, 그 칼끝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살펴봐야 할 때라는 이야기다.
역사와 시대에 대한 주인의식
2010년에 있었던 6.2지방 선거 이후 한 해에 2차례 가량의 선거가 계속되고 있다. 선거는 일상적인 정치활동이 아니다. 그것을 하기 위한 특수정치행위이며 그 자체가 독립적인 정치공간이다. 선거기간에는 공약이 있을 뿐 해당 정책이 시행되지 않는다. 출마한 정치인은 권력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다소 간의 정책적 거품이 포함될 수 있고, 비리와 부정이 포함될 수도 있다.
선거기간과 투표가 중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일단 종료된 선거는 번복될 수 없다. 한 번 선출된 정치 대표자는 여간해서 퇴출하기가 쉽지 않다. 국회의원이거나 대통령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탄핵소추 등 법률적인 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제도를 결정하고 시행하는 주체가 바로 정치인들이기 때문이다.
선거와 투표는 민주국가의 주권시민이 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언제나 신중해야 하며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지방선거의 경우 투표율을 40%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과정에서 보면 국민들의 정치 무관심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 수 있다. 지난 대선의 표면적인 결과를 통해 현 정부는 ‘사상 최대 표차로 당선된 대통령’을 자임했다. 그러나 그 실상은 유권자 중 63.1%가 투표에 참여해 그 중 48.7%가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했다. 전체 유권자 수로 환산해 보면 절반이 약간 넘는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해 그 중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이들이 대통령을 뽑은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약 25%~30% 정도의 지지를 받은 셈이다.
이 선거 결과에서 우리는 위험한 자만 혹은 착각을 발견하게 된다. 유권자들의 정치 무관심 혹은 투표기피 현상의 저변에 깔린 의미와 그 파급효과에 관한 이야기다. 앞서 서두에서 밝혔다시피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채 70년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대부분의 기간은 군사독재로 점철됐다. 17대 대통령을 넘어 18대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는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 털어 김대중-노무현 정부만을 묶어 ‘민주정부 10년’이라고 일컫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태우 군사정부를 끝으로 군사독재가 끝나고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섰지만 이를 민주정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김 前 대통령이 군사독재 정당과 야합해 이뤄낸 정부였기 때문이다.
물론 김대중 前 대통령이 선거과정에서 김종필 당시 자민련 총재와의 연대를 통해 집권했고, 노무현 前 대통령 역시 정몽준 당시 후보와의 연대를 모색하기도 했다. 이 또한 넓은 의미에서 집권을 위한 야합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정권을 묶어 민주정부 10년이라 통칭하는 이유는 ‘그나마 가장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그나마’라는 단서를 붙여야 할 정도로 우리는 진정한 민주정부를 탄생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더 발전해야 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저 투표에만 꼬박꼬박 참여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평소 정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는 상황에서 참여하는 투표는 더욱 위험한 결과만 낳을 뿐이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선거정치는 특수하고 개별적인 정치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기간에는 온갖 감언이설이 나돌고, 거짓과 진실이 뒤범벅 된 채 무책임한 공약들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기간 배포되는 공약집이나, 유세만 꼼꼼히 챙겨본다고 해서 유능하고 성실한 정치인을 가려내는 혜안을 가질 수 없다. 우리 정치판에 유독 포퓰리즘이 난무하고 이미지 정치가 위력을 보이는 이유도 이런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랜 세월 동안 성실한 정치활동을 통해 충분한 역량을 검증받은 정치인이라 할지라도 선거기간 단 며칠 만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요, 온갖 비리와 부정에 개입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정치스타로 주목받을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나라를 지키는 이들은 군인이다. 그 군인을 양성하고 운영하는 이들은 군수뇌부이며, 이를 관리감독하는 이들은 정치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정치인을 뽑는 것은 유권자, 바로 당신이라는 점이다.
대통령선거가 6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달력의 장수와 날짜로 따지자면 한참이나 남은 것처럼 보이지만, 앞서 이야기했던 주권시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헛되이 쓰지 않기 위해서는 어쩌면 모자라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티셔츠 하나를 고르는 데 있어서도 상당한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 하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평화와 번영이 달린 국가원수를 뽑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앞으로의 5년, 대한민국의 미래와 운영 전반을 위임하게 될 국가원수는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지, 얼마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그의 지난 삶이 어떠했는지 꼼꼼하게 챙겨보기 시작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