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공포 세계강타
2005-12-01 글/ 이영빈 기자
아시아 중동 등 잇달아 감염, 국제적 논란 확산
21세기 인류 최대의 재앙으로 불리는 조류독감. 2003년부터 아시아에서 본격적으로 번시기 시작한 조류독감이 지구촌 곳곳에서 숨 가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유엔의 인플루엔자 담당 조정관으로 임명된 세계보건기구(WHO)의 데이비드 나바로 박사는 지난 9월 29일 지구촌을 향해 충격적인 경고를 했다. 그는 “인류가 조류독감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500만 명 내지 1억5천 만 명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2003년부터 아시아 지역에 번지기 시작한 조류독감은 지금까지 모두 4개 나라에서 60여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지난 9월 현재 WHO가 공식 인정한 각국별 사망자수는 베트남 41명, 태국 12명, 캄보디아 4명, 인도네시아 3명이다. 단순 사망치만 보면 조류독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지만 바이러스의 변이에 따른 폭발적인 확산을 예상하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 빌 프리스트 미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바이러스들이 끊임없이 변이되고 있어 이를 일거에 박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 일단 질병이 급속도록 확산되기 시작하면 글로벌체제가 형성된 지구촌 경제부터 먼저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류독감 확산 추세는 이미 세계화 양상을 띠고 있다.
중국에 이어 중동서도 발견
중국에서 조류독감 확산과 함께 발열 및 유사독감 환자들이 잇따라 발생해 인체 감염 여부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중국 농업부는 지난 11월 10일 조류독감이 발생한 랴오닝성에서 병든 가금류와 접촉한 116명의 유사독감 환자들에 대한 정밀 진단을 진행했다. 중국 당국은 진단 결과 일단 조류독감이 인체에 전염된 사례는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조류독감 감염이 의심되는 후난성의 3명(1명은 이미 사망) 이외에 랴오닝성에서도 류아무개라는 여성이 심한 폐렴 증세를 보이고 있어 격리 관찰 중이라고 중국 농업부는 덧붙였다. 이 여성 또한 병든 가금류와 가깝게 접촉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2일 중국 당국의 도움 아래 후난성의 세 환자로부터 바이러스 표본을 채취해 검사에 들어갔다. 세계보건기구는 랴오닝성에서 발생한 환자의 표본도 곧 채취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동북부에서 주로 발견됐던 조류독감이 다시 중부지역에서도 발견됐다. 중국 농업부는 11일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후베이성 징산현의 두 마을에서 닭이 병들어 죽은 사례가 보고됐으며, 후베이성 수의당국의 1차 검사와 중국 국가조류독감참고실험실에 의해 조류독감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번 후베이성 조류독감으로 징산현 두 마을에서 2500마리의 가금류가 병들어 죽었으며, 중국 당국은 반경 3㎞ 이내의 가금류 3만 여 마리를 모두 살 처분했다.
중국 당국의 대응도 분주해지고 있다. 중국 위생부는 조류독감 등 주요전염병 발생 상황을 인터넷을 통해 신속히 보고하라고 각급 관련 기관에 통보했다고 〈신화통신〉이 지난 11월 12일 보도했다. 위생부는 조류독감 의심사례가 발견되면 도시 지역의 경우 2시간 이내에, 농촌지역은 6시간 안에 인터넷으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쿠웨이트와 이탈리아에서도 지난 11월 10일 조류 인플루엔자(AI)에 걸린 조류가 첫 발견되는 등 AI가 다시 확산되고 있다.
셰이크 파드 알 사바 쿠웨이트 농어업부 장관은 이날 AI에 걸린 새 2마리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알 사바 장관은 새들이 감염된 바이러스가 치명적 변형 바이러스인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지만 중동지역에서 AI에 걸린 조류가 발견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두 마리 가운데 한 마리는 수입된 공작새로 공항 검역과정에서 AI에 걸린 사실이 판명됐으며, 해변에서 발견된 다른 한 마리는 철새로 추정되는 물새라고 알 사바 장관은 설명했다.
이탈리아 보건부도 이날 성명을 발표,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북부의 바두아시에서 잡힌 야생오리에서 H5N1 바이러스가 검출됐으나 아시아 바이러스와는 관계없어 인체에는 해롭지 않다고 밝혔다.
아시아도 조류독감 공포 확산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조류독감의 전 세계 확산 가능성을 강력 경고하면서, 아시아 각국에 ‘비상’이 걸렸다. 조류독감 희생자가 아직 없는 말레이시아는 5억 링깃(약 1,400억원)의 정부예산을 투입해 조류독감 치료약과 예방 백신 비축에 긴급 착수했다. 보건부는 조류독감 환자 치료를 위한 전담 병원 21곳도 지정했다. 필리핀은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조류독감 발생국으로부터 들어오는 가금(家禽)류 식품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대만 정부는 조류독감 피해 지역에서 들어오는 입국자들에게 매일 아침저녁 체온 측정 고열(高熱) 등 독감 증세시 마스크 착용 및 위생국 방문 등을 골자로 한 ‘자주 건강관리 지침’을 실시하도록 했다.
아시아 국가들은 그러나 조류독감 치료제이자 예방약인 ‘타미플루’를 구입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리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호주로부터 4만 명분을 지원받기로 한 것이 전부이고, 필리핀은 아예 약 구경도 못하고 있다.
한편 10월 초 처음으로 태국 피칫주에서 조류독감 의심환자 3명이 발생한 데 이어 터키에서도 조류독감 사례가 처음 발견됐다고 CNN이 전했다. 터키 농무부는 8일 “서부 에게해 연안 발리케시르주의 농장에서 2000마리의 칠면조가 조류독감으로 폐사했다”며 “조류독감 확산을 막기 위해 이 농장의 모든 조류를 도살처분하고 마을 입구에 방역선을 설치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역시 조류독감 공포에 떨고 있다. 미국에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최대 190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 미국 정부가 추정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보건후생부가 마련한 ‘조류독감 대응전략’ 보고서 초안을 입수, 미국 정부의 조류독감 준비가 매우 미흡하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보고서는 아시아에서 조류독감의 변형이 발병하면 수개월 혹은 수주일 내에 미국으로 번지면서 최대 850만 명이 입원하고 190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한편 미국에서 열린 국제 조류독감 대책회의에 참석한 세계 70여 개국 정부 대표들은 조류독감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해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중국 가짜 조류독감 백신 활개
중국 전역이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 방지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AI백신 특수를 노린 가짜 약품이 활개를 치고 있다.
관영통신인 신화통신은 지난 11월 7일 "농업부가 최근 전국 2191개 판매소에서 불합격 AI 백신을 적발하고 이를 생산한 57개 기업을 중점 관리대상에 올려놓았다"고 보도했다. 또 60개 제품에 대한 허가번호를 취소하는 한편 9개조의 검사팀을 쓰촨(四川), 광둥(廣東) 등 23개성에 급파해 가짜 또는 불량 백신을 색출토록 했다.
검사팀에 광둥, 장쑤(江蘇), 상하이(上海), 허난(河南), 푸젠(福建) 등 13개 지역 연구소가 포함된 것으로 미루어 가짜 백신이 중국 전역에 광범위하게 퍼 져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화통신은 현재 중국 내 의약품 제조업체 가운데 농업부의 정식 허가를 받아 A I 백신을 생산하는 기업은 9곳뿐이며, 이들 업체가 제조한 백신은 H5N1, H5N2 , H5/H9, H5 등 4종류라고 전했다.
한편 중국 국무원은 11월 6일 오후 후이량위 부총리 주재로 전국 AI 화상 대책회의 를 개최하고 10개항의 방역지침과 함께 "AI 발생상황을 면밀히 분석해 감염과 확산방지에 총력을 기울이라"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 총리의 지시를 시달했다. 이번 방역 지침에는 △질병 감측제도와 경보제도 강화 △발생 정보와 예방 정보 전달 체계 구축 △응급조치 시스템 구축 등이 담겨있다.
각국 방역 비상체제 돌입
대재앙의 그림자가 다가오자 각국은 방역 비상체제에 들어가고 국제사회가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의회에서 이미 조류독감 백신 생산 등을 위해 39억 달러의 예산안을 통과시킨 미국은 비상시 군동원 계획까지 나왔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지난 10월 4일 특정지역에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지방정부가 이를 통제할 수 없다며 자신에게 군소집권을 부여해 줄 것을 의회에 요청했다. 군대를 동원한 강제 검역과 발병지역에 대한 전면 봉쇄를 연상케 하는 초 강경책이다. 국방부 일각과 학계에서 과잉대응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미 정부가 이 사안을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각국은 조류독감 전염 차단에 주력하면서 백신 및 항(抗)바이러스 약품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수도 자카르타와 당게랑주를 조류독감 비상구역으로 선포하고 전문 치료병원을 지정하는 등 초비상이 걸렸다. 말레이시아 또한 국경감시를 강화하고 가금류 밀수업자를 엄벌하는 ‘조류독감 비상대책’을 발표했고, 싱가포르와 태국은 비상대책반을 설치했다. 베트남은 전국적인 백신 투여작업과 가금류 농장 일제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230만 명분의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를 확보하고 있는 미국은 비축량을 장기적으로 1억5,000만 명분까지 늘릴 계획이다. 영국 정부도 제약사에 1460만 명분의 백신을 주문했으며 핀란드는 전 국민에게 공급할 수 있는 백신 확보 계획을 밝혔다. 싱가포르는 전체 인구의 10% 정도인 40만 명분의 백신을 비축해놓았다. 우리나라는 70만 명분의 타미플루를 확보하고 있지만 WHO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150만 명분 이상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현재 백신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정부는 조류독감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 최고 3만 명의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고 예측한다.
국제사회의 공동대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유엔은 9월 29일 인플루엔자 담당 조정관을 임명하고 조류독감의 변이에 의해 인간에게 치명적인 변종 독감이 유행할 가능성에 대한 유엔 차원의 대처 노력에 착수했다.
미국은 리빗 미 보건장관을 조류독감 진원지가 될 가능성이 높은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 파견, 세계적인 조류독감 감시체제 마련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호주는 조류독감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인도네시아에 전문가팀을 파견, 이웃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재원 부족이 또 다른 난제다. 유엔식량농업기구 수석 수의관(獸醫官)인 조지프 도메네흐는 조류독감 퇴치 프로그램을 위해 앞으로 3년간 1억 달러 이상이 필요하다고 추산했지만 지금까지 모금된 기부금 액수는 2,000만 달러에 불과하다. 독일(600만 달러), 스위스(400만 달러), 미국(600만 달러), 일본(50만 달러), 유엔식량농업기구(200만 달러)가 지원을 약속하고 세계은행과 유럽연합(EU)도 지원 계획을 밝혔지만 기부금은 아직 태부족이다.
조류독감으로 아시아경기 침체 우려
한편, 모간 스탠리는 조류독감으로 인해 아시아 지역에 경기 침체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앤디 시에 모간 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조류독감이 미치는 경제적 파장이 사스(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 SARS)보다 강할 것이라며 이같이 예상했다.
시에는 조류독감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인명 피해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심리적인 영향은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류독감으로 인한 영향은 각국의 경제 의존도가 높은 상황이기 때문에 리스크 프리미엄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시에는 조류독감에 따른 여파가 이미 아시아 지역의 금융 자산에 리스크 프리미엄을 높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사람을 통한 감염이 확인될 경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경우 아시아 지역의 경기 침체는 불가피하며, 글로벌 경제의 침체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시에는 내다봤다.
조류독감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구체적으로 집계하기는 힘들지만 여행과 소매, 레저산업 등이 특히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국제 무역이 정체될 수 있고 이 경우 세계 경제의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례로 사스의 경우 2003년 상반기 홍콩의 경제성장을 2.6% 위축시켰고, 싱가포르도 2%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바 있다.
세계은행은 조류독감으로 인한 경제 손실을 8,000억 달러로 예상했고, 이는 세계 GDP의 2%에 달하는 규모다. 시에는 아시아 국가가 이같은 경제적 손실을 감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조류독감이란?
조류독감(Avian influenza 또는 Bird flu)은 닭·오리 및 야생조류 등에 감염되는 급성 바이러스성 질병이다. 조류독감은 100여 년 전부터 나타났으며 이후 전 세계적으로 퍼졌다. 닭, 칠면조 등 가금류뿐 아니라 야생오리와 같은 야생조류에도 감염되며 전파속도도 매우 빠르다. 고병원성은 치사율이 100%에 이를 만큼 전염성과 폐사율이 높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제1종 법정전염병, 국제수역사무국(OIE)은 A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동안 조류독감은 조류와 돼지 사이에서만 전염된다고 생각했으나 1997년 홍콩에서 조류독감에 감염된 조류와 접촉한 사람들 중 18명이 감염되고 그중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사람도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에는 홍콩에서 감염자 2명중 1명이, 네덜란드에서는 83명중 수의사 1명이 숨졌는데, 홍콩은 H5N1, 네덜란드는 H7N7 바이러스가 원인이었다. 지난 1999년 홍콩에서 발생한 조류독감에선 H9N2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
조류독감의 바이러스 중 특히 고병원성인 H5N1형 바이러스는 변이가 매우 빠를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에게 쉽게 전이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감염된 조류가 다른 닭, 사육 오리와 접촉하거나 배설물을 통해 조류독감을 전파하므로 방역이 쉽지 않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감염된 조류를 통해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조류독감에 감염되면 변종 바이러스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돌연변이를 일으킨 변종 바이러스는 인간끼리의 전염을 일으킬 수 있다. 사람 간에 전염되는 변종 바이러스가 나타날 가능성 때문에 전문가들은 조류독감이 잘못하면 세계적인 유행병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사람끼리 전염되는 변종 바이러스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조류독감의 향방에 각별히 주의가 요망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