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발목 잡은 문대성·김형태 거취논란
리더십 한계 극복이 대선 레이스 완주의 관건
총선은 새누리당의 과반의석 확보로 막을 내렸다. 이번 선거의 최대 승리자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존립마저 위태로워 보였던 새누리당이 의회 다수당으로 부상한 데에는 전적으로 박 위원장의 리더십이 막대한 기여를 했다. 하지만 그는 총선 승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암초를 만났다.
총선 직후 여당 내부에서는 박근혜 대선후보 추대론이 비등했다. 이상돈 비상대책 위원은 4월17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 위원장이 총선에서 판단을 받은 만큼 대선후보 경선은 사실상 의미 없다”며 ‘박근혜 대세론’을 부각시켰다.
이런 흐름은 문대성·김형태 당선인의 과거 전력이 불거지면서 혼란으로 빠져 들었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 문 후보는 박사논문 표절 의혹을, 김 후보는 제수씨를 성추행하려다 미수에 그쳤다는 의혹을 받았다.
두 당선인의 처리문제는 총선 이후 새누리당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준석 비대위원이 포문을 열었다. 이 위원은 총선 바로 다음 날인 4월12일 한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우리 후보자들 중에도 부적격한 분이 있었던 부분, 그런 측면에서 비상대책위원회가 월요일 예정돼 있는 첫 회의에서 강도 높은 쇄신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출당 권고를 하게 되면 응하지 않을 경우 열흘 뒤 제명이다. 어떤 절차든지 당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엄격한 처벌을 말씀드릴 수 있겠다”고 강조했다. 당이 두 후보를 버릴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사실 두 후보의 자질 논란은 최대 선거쟁점이었다. 먼저 김형태 후보의 성추행 의혹은 선거를 불과 사흘 앞둔 4월8일 불거져 나왔다. 김 후보의 제수라고 밝힌 최모(51) 씨는 이날 아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다. 이어 9일에는 포항시청에서 김 후보와 나눈 대화내용이 수록된 녹취록 등을 공개했다.
문대성 후보의 논문표절 의혹은 선거 운동이 시작되기도 전인 3월 말 경 불거졌다. 민주당이 먼저 표절의혹을 제기했고 인터넷 매체인 미디어스는 이에 대해 집중 취재를 벌였다. 이 매체는 취재결과 문 후보가 2005년 이후 작성했던 논문 대부분이 표절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두 당선인들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했다. 김형태 당선인은 선거 직전 두 차례에 걸쳐 기자회견을 갖고 성추행 의혹이 상대인 무소속 정장식 후보가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벌이는 흑색선전이라고 규정했다. 또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제수 최 모 씨와 조카, 그리고 정 후보를 명예훼손 및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문 후보는 표절의혹을 정치공세로 치부했다. 그는 표절의혹을 처음 제기한 민주당을 향해 “민주당이 내 논문을 표절이라고 주장하는 건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자충수”라면서 “더 이상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저급한 행동을 중단하고 정정당당하게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중동 행보도 막지 못한 당선자 자질논란
하지만 박 위원장은 줄곧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4월13일 “사실을 확인한 후에 거론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어 16일에는 “지난 번 당의 입장을 발표했다. 더 이상 되풀이할 필요가 없는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친박계 의원들은 박 위원장의 입장에 동조하고 나섰다. 박 위원장의 핵심측근으로 알려진 최경환 새누리당 경북도당 위원장(경산·청도)은 17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두 사람에 대해 인격살인을 할 수 없다는 게 당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두 당선인에 대한 자질논란을 인격살인에 빗댄 주장이었다.
박 위원장과 친박계 의원들의 미온적인 대처는 새누리당에게 악재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무엇보다 두 당선인이 박 위원장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돼 있다는 점이 즉각적인 대처를 어렵게 만들었다.
김형태 당선인은 2007년 대선 경선 때 박 위원장의 언론특보단장을 맡은 바 있다. 문대성 당선인은 당의 쇄신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비대위가 꺼내든 카드였다. 준수한 외모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의 인지도는 당 이미지 제고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두 당선인의 존재는 오히려 새누리당과 박 위원장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모양새다. 더구나 이들의 행보는 총선 이후 비등해진 ‘박근혜 대망론’을 훼손하고 있다.
김형태 당선인은 4월18일 자진탈당을 선언했다. 그는 “성추행 파문으로 더 이상 박근혜 위원장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탈당을 결심했다”고 탈당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저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법적인 문제마저 마무리한 뒤 사랑하는 당과 존경하는 박근혜 위원장에게로 반드시 다시 돌아 오겠다”고 선언해 복당 의사를 분명히 했다.
문대성 당선인의 경우도 박 위원장을 방패막이로 내세운 흔적이 엿보인다. 그는 4월18일 오후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 안팎에선 “문 당선인이 탈당하기로 결심한 뒤 당 지도부 및 부산 지역 의원들과 협의를 마쳤고, 오후 2시에 탈당 기자회견을 열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실제 그는 전날인 17일 권영세 사무총장에게 “당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탈당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기자회견 당일인 18일엔 탈당의사를 밝힌 회견문을 준비하기 까지 했다.
그는 예정된 기자회견이 임박하자 입장을 번복했다. 그는 “새누리당과 박 위원장이 이미 ‘국민대의 (심사) 결과를 기다려 보자’는 입장을 발표했다”고 밝힌 뒤 “박 위원장에게 누를 끼칠 수 없다. 국민대의 결과를 기다리겠다”면서 박 위원장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여론은 박 위원장과 새누리당의 태도를 거세게 질타하기 시작했다. 당 안팎에서도 총선 과반 달성에 도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새누리당이 예상을 깨고 총선 과반수를 달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바로 쇄신이었다.
당 쇄신 작업은 공천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부각됐다. 새누리당은 총선이 야권의 공세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현 정권과 관련된 인사들을 공천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했다. 이어 손수조, 문대성 등 정치신인들을 발굴해 지역구에 공천하는 한편, 필리핀 출신 귀화여성인 이자스민 씨를 비례대표에 공천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새누리당은 공천 후에도 쇄신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사에 대해선 즉각 공천취소 조치를 단행했다. 여성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석호익 후보와 제주 4·3항쟁을 ‘공산주의자가 주도한 폭동’으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민중반란’으로 규정해 논란을 일으킨 이영조 후보가 대표적인 사례다.
총선 전 쇄신작업에 속도를 냈었지만 현재의 새누리당은 두 당선인 처리문제와 관련해서는 갈팡질팡 하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 영남권 친박계 핵심의원들의 책임론이 당 안팎에서 힘을 얻고 있다. 이들이 두 사람의 공천은 물론, 출당 논의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 친박 책임론의 주된 논거다.
실제 친박계의 한 실세의원은 총선 직후 김 당선자의 제수씨가 공개한 녹취록에 대해 “목소리가 그의 것인지 어떻게 아느냐”면서 그를 적극 옹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위원장이 사실 확인을 내세워 출당론을 잠재운 이유도 이 실세의원의 입장을 수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새누리당은 급기야 4월18일 문 당선자에 대해 강제출당 조치를 단행했다. 이상일 새누리당 대변인은 이날 “문 당선자의 논문 표절 시비는 대학(국민대)에서 판단할 문제이지만, 당은 문 당선자의 처신과 관련된 문제를 윤리위로 넘겨 조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출당조치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 대변인은 또 “문 당선자는 박근혜 위원장을 팔지 말고 스스로 책임있는 행동을 하기 바란다”며 문 당선자의 표절논란이 박 위원장에게까지 확산되는 데에 쐐기를 박았다.
박근혜, 벌써부터 여론 검증대 오르나?
정치권의 분위기는 총선 이후 즉각 대권 레이스 국면으로 돌입한 양상이다. 이런 흐름에서 박 위원장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총선 이후 그가 여권의 대선주자 0순위라는데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총선거가 단거리 달리기라면 대통령 선거는 장거리 레이스다. 앞으로 총선까지 남은 시간은 약 7개월 남짓. 이 기간 동안 주자들은 온갖 장애물과 부딪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예측불허의 돌발변수는 얼마든지 불거질 수 있다. 먼저 된 자가 나중이 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박 위원장의 조기 부상은 여권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다. 가장 먼저 심판대에 올라 ‘검증’이란 관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권의 우려는 금방 현실로 나타났다. 김형태, 문대성 당선인의 거취 문제가 박 위원장을 여론의 시험대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행보는 다소 엇갈린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박 위원장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나선 점이 눈에 띤다. 김 당선인은 그의 곁으로 돌아갈 것임을 공개 선언하면서 당을 떠났고, 문 당선인은 그의 의중을 빌미로 탈당의사를 번복했다.
두 당선인의 거취가 논란이 될수록 세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박 위원장으로 쏠릴 수밖엔 없는 상황이 조성된 것이다.
논란이 불거지기 무섭게 야당은 박 위원장을 향해 공세를 벌였다.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은 두 사람의 문제를 “박 위원장의 책임”으로 규정했다.
박지원 민주당 최고위원은 대여공세의 선봉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는 김형태 당선인을 겨냥해 “성추행 의원이 탈당했다고 면피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제2의 강용석 사건으로 반드시 국회에서 나가주는 것이 19대 국회 명예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대성 후보를 향해선 “논문표절 문제는 이제 대필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위원장이 스스로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 뒤 “김형태·문대성 당선자의 국회의원직 사퇴가 해법”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사실상 두 당선인의 사퇴와 함께 박근혜 책임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두 당선인에 대한 미온적인 대처는 새누리당의 쇄신 이미지에 흠집을 냈다. 더욱이 ‘선거의 여왕’으로까지 칭송 받았던 박근혜 위원장의 위상에도 손상을 가했다.
사실 박 위원장의 리더십은 일정정도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의 후광은 새누리당의 전통적인 텃밭인 영남권과 강원, 충청권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20~40대 유권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수도권에서는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4.11총선 당시 민주당-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가 수도권에서 확보한 의석은 새누리당에 비해 두 배에 이른다. 두 당선인의 거취논란은 박 위원장이 안고 있는 한계를 더욱 확연히 드러냈다. 대선 레이스 완주까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박 위원장으로서는 리더십의 한계 극복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