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수도권 의석 수 추가로 만족하는 데 그쳐
실체 없는 적을 향해 돌진한데 따른 패착
선거 당일까지도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은 승리를 자신하는 분위기였다. 이에 비해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안팎에서는 당의 존립마저 우려하는 기류가 흘렀다. 총 의석 300석 가운데 100석만 차지해도 성공이라는 자괴감이 팽배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새누리당은 과반의석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다. 반면 민주당은 수도권과 호남에서 선전했을 뿐 나머지 지역에서는 열세를 면치 못했다. 총선 전 충만했던 민주당의 자신감은 허세에 불과했던 것일까?
민주당의 자신감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권력 약화에서 비롯됐다. 이 대통령은 올해로 임기 마지막 해를 맞는다. 임기 말이 다가올수록 대통령 권력누수 현상은 심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자연스러운 정치현상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해 말부터 권력형 비리들이 잇달아 터져 나왔고, 일련의 비리들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0.26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부정, 내곡동 사저 불법매입,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등이었다. 잇따라 불거진 권력형 비리 의혹은 이 대통령의 권력약화에 가속도를 불어 넣었다.
민주당이 자신감을 가진 또 다른 근거는 집권여당에 대한 민심 이반이었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12월부터 하락세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에 편승해 민주당의 지지율은 1월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을 추월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1월 첫주 주간 정례조사 결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33.0%를 기록, 30.6%를 기록한 한나라당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면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상승세를 보였다.
민주당의 상승세는 지난 해 11월 당시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한미FTA 비준을 강행처리한 데 힘입은 결과였다. 무엇보다 여론은 한나라당의 일방처리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한미FTA 국회비준 당일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거리에 운집한 시민들은 의회 다수당의 지위를 이용해 한미FTA를 강행처리했다면서 한나라당을 성토했다.
정치판의 모든 흐름이 민주당에겐 호재였다. 이를 의식한 듯 민주당은 연초부터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우선 민주당은 지난 1월 전당대회를 열고 한명숙 대표 체제를 출범시켰다. 새 지도부는 의회과반 의석 확보를 목표로 내걸었다. 지도부의 자신감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충만했다.
하지만 선거결과는 사실상 민주당의 패배로 평가할 만하다. 총 300석 가운데 민주당이 차지한 의석수는 127석에 그쳤다. 야권연대 파트너인 통합진보당의 경우 13석을 차지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152석으로 과반의석 확보에 성공했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을 합쳐 범야권 의석수를 140석으로 계산해 보아도 집권여당에 비해 12석이 모자란다.
野 수도권·호남 압승, 與 영남·강원 석권
최대 승부처로 꼽혔던 수도권에서는 민주당과 야권연대 파트너인 통합진보당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민주당은 총 48개 선거구 가운데 30곳을 차지했다. 통합진보당이 확보한 2곳(관악을 이상규, 노원병 노회찬)을 합치면 야권연대는 32곳에서 승리해 16곳에 그친 새누리당을 두 배 차이로 따돌렸다.
지난 18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차지한 의석은 불과 7석.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 의석을 23개 늘리는데 성공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강남·서초·송파 등 이른바 ‘강남 3구’와 용산 등 전통적인 여당 강세지역에서 승리를 거둔데 만족해야 했다.
민주당은 광주·전남, 전주·전북 등 전통적인 텃밭인 호남지역에서도 강세를 이어나갔다. 광주서을(오병윤), 순천곡성(김선동), 남원순창(강동원) 등 3개 지역구만 통합진보당에 내줬을 뿐 호남지역을 석권했다.
하지만 수도권·호남을 제외한 전지역에서는 새누리당이 승리를 거뒀다. 특히 새누리당의 전통적인 텃밭인 대구·경북지역에서 민주당은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부산·경남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부산은 지역구도 타파와 전통적인 야도(野都) 부활의 기치를 내걸고 문재인, 조경태, 문성근, 김정길, 전재수, 최인호 등 야권 대표주자들이 대거 출사표를 내 선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새누리당의 압승이었다.
부산에 걸린 총 18개 지역구 가운데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인 문재인과 조경태 후보만 국회입성에 성공했을 뿐, 나머지 16개 지역구는 새누리당이 휩쓸었다.
문재인 후보의 승리에 대해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문 후보가 확보한 지지율은 55.0%. 이에 비해 상대인 새누리당 손수조 후보는 43.8%의 지지율을 얻었다. 문 후보가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데 비해 손 후보는 20대의 정치신인이다. 두 후보의 지지율 차이는 불과 12%. 두 후보의 무게감을 비교해 볼 때 문 후보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강원지역의 경우 민주당은 궤멸이라고 할 만한 패배를 당했다. 4.11총선 직전까지 강원지역은 야권이 다소 우세를 보였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강원지역 유권자들은 한나라당 현역의원인 이계진 후보 대신 이광재 민주당 후보를 도지사로 선택했다.
이광재 지사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지사직을 상실해 보궐선거를 치렀을 때도 강원도민들은 민주당 소속인 현 최문순 지사를 지지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은 달랐다. 강원도민들은 야권 후보를 철저히 외면했다. 새누리당은 강원지역에 걸린 총 9개 지역구를 독식했다.
충청권은 양상이 다소 복잡하다. 원래 이 지역은 자유선진당의 아성이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결과 자유선진당이 몰락하고 새누리당이 새로운 맹주로 등장했다. 새누리당은 충북 8개 지역구 가운데 5곳을, 충남 10개 지역구 가운데 4곳을 확보해 총 9개 의석을 차지했다. 18대 국회에서 3석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해 볼 때 새누리당은 충청권에서 약진에 가까운 승리를 거뒀다. 새누리당은 대전에서도 절반인 3개 의석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반면 자유선진당은 텃밭이던 대전에서 한 개 지역구도 차지하지 못한데 이어 이번에 처음 국회의원을 뽑는 세종특별자치시(이하 세종시)에서도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충청권 맹주’임을 자처하던 자유선진당의 심대평 후보가 33.8%의 지지율에 그쳐 47.9%의 지지율을 얻은 민주당의 이해찬 후보에게 패한 것이다. 충청권의 경우 민주당은 대전 지역 3곳, 그리고 세종시에서 이해찬이 당선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승리 아닌 승리
민주당이 받아든 성적표는 나쁘지 않다. 현 민주당의 전신인 통합민주당 의석은 81석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민주당의 의석수는 127석으로 2008년 대비 46석 늘어났다. 이는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열린우리당이 과반인 152석을 차지한 이후 야권진영이 거둔 최고 성적이다.
야권연대의 한 축인 통합진보당의 의석도 13석이나 된다. 향후 정국운영에서 두 당이 긴밀히 협력해 나간다면 집권여당을 견제할 정도의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의석이다.
하지만 총선결과가 민주당의 패배로 해석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사실 그 어느 때보다 선거판세는 야권에 유리했다. 문제는 민주당이 호재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패배로 비춰지는 것이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내세운 의제는 ‘이명박 정권 심판’이었다. 특히 한미FTA, 강정 해군기지 건설,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사찰 개입의혹 등을 이 정권의 실정(失政)사례로 집중 부각시켰다. 그러나 이 같은 쟁점들은 거꾸로 민주당의 발목을 잡았다.
무엇보다 한미FTA와 강정 해군기지 건설 사업은 故 노무현 前 대통령 정부에서 추진한 국정과제들이었다. 한명숙 대표는 노무현 정부의 국무총리를 지내면서 한미FTA를 홍보한 전력이 있었다. 야권의 유력인사인 문재인 후보도 전 정권의 이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었다.
만약 민주당이 한미FTA와 강정 해군기지 건설 문제를 쟁점화 시키려 했다면, 이 사안들에 대해서 먼저 명쾌하게 입장정리를 하고 사과할 부분이 발견되면 사과해야 했다. 이런 과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역공에 쉽게 노출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명쾌한 입장정리 없이 공세의 수위만 높였다. 새누리당은 즉각 역공에 나섰다. 역공의 중심에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있었다. 박 위원장은 선거 운동 기간 줄곧 “여당일 때는 국익을 위해 한미 FTA를 추진하겠다고 해놓고 야당이 되자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이제는 선거에서 이기면 FTA를 폐기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며 민주당에 직격탄을 날렸다.
강정 해군기지 건설 문제도 여당에 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이 문제는 오히려 여당에게 호재로 작용했다. 새누리당의 지지기반은 전통적으로 보수층이다. 박 위원장은 보수층 지지자들을 향해 “해군기지는 국가안보 역량 강화를 위해 국민적 여망에 맞도록 잘 추진할 것이다”라고 호소했다. 보수층 지지자들은 박 위원장의 호소에 표로 화답했다.
한편 선거 직전 여론은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으로 들끓었다. KBS새노조가 2,619건에 이르는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문건을 입수해 자체 운영하는 인터넷 프로그램인 ‘리셋(Reset) KBS 뉴스9’를 통해 폭로한 것이 발단이 됐다. KBS새노조의 폭로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최근 3년간 공직자와 언론인,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로 사찰해 온 내용이 드러났다. 더욱이 무차별 사찰의 배후에 청와대가 개입한 정황마저 포착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새누리당 입장에선 초대형 악재일 수 있었다.
하지만 박 위원장은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마저 피해갔다. 청와대와 국무총리실도 박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우선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은 “공개된 사찰 문건의 80%는 전 정권에서 있었던 것이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박 위원장은 “전 정권과 현 정권 모두에게 사찰을 받았다”며 자신 역시 사찰의 피해자임을 부각시켰다.
한미FTA, 강정 해군기지 건설,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등 민주당이 집어든 무기들은 여당의 역공에 막혀 무기력해졌다.
보다 근본적인 시각에서 볼 때, 민주당의 패착은 근본적으로 의제설정의 구체적인 목표가 모호한데서 비롯됐다. 이는 새누리당의 변신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데서 온 결과다.
박 위원장이 전면에 나선 시점은 지난 해 10월 당시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했을 때부터였다. 당시 한나라당엔 위기감이 엄습했다. 박 위원장은 당 분위기를 추스르는데 전력투구했다.
박 위원장은 우선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의 간판을 바꿔달았다. 이후 박 위원장은 특유의 정중동 행보를 이어가며 현 정권과의 선긋기에 나섰다. 그의 선긋기는 공천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부각됐다.
지난 1월과 2월 사이 김석기 전 일본 오사카 총영사,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잇달아 출마를 선언하고 나섰다. 친이계 인사들이 대거 전면에 나서면 자칫 선거 구도가 현 정권에 대한 심판성격을 띠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당 안팎에서 높아갔다.
이에 박 위원장은 이재오, 홍준표를 제외한 친이계 인사들을 대거 공천에서 배제했다. 이러자 이재오 의원이 기자회견까지 자청해 공천결과에 거세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박 위원장의 선긋기는 성공을 거뒀다. 민주당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현정권 심판에 모든 것을 거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박 위원장을 축으로 하는 새누리당은 민주당의 목표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렸다. 결국 민주당의 정권 심판론은 실체도 없는 적을 향해 돌진하는 형국이 됐다.
민주당의 패착 요인은 또 있다. 민주당은 유권자들에게 참신한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실패했다. 이 점은 새누리당과 비교했을 때 보다 선명히 드러난다. 새누리당은 노쇠한 당의 이미지를 일신하기 위해 20대의 벤처사업가 이준석을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했다. 20대의 정치신인 손수조 후보를 발굴해 문재인의 대항마로 내세우는 전략도 구사했다.
이에 비해 민주당은 구태로 일관했다. 이런 구태는 공천과정에서 불거졌다. 민주당은 지난 2월 2차 공천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가운데에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임종석(서울 성동을) 사무총장이 포함돼 있었다. 반면, 김진애 의원은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고 유종일 민주당 경제민주화특별위원장은 공천에서 배제됐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서는 원칙 없는 공천, 당선 가능성만 염두에 둔 무리한 공천이라는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김진애 의원의 경우 민주당 산하 4대강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앞장서왔다. 한편 유종일 위원장은 당내에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의 선봉장임을 자처해온 인사다.
두 인사의 공천 배제는 민주당이 내세우는 정권 심판론과는 사뭇 거리가 있는 조치였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정책 과제가 바로 4대강 살리기 사업과 친기업 정책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인사의 공천 배제 소식이 알려지자 민주당 지지자들조차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민주당, 수권정당으로서 면모를 갖춰야
민주당의 의회과반 달성 실패는 비단 민주당의 전략부재로 돌릴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 한국 정치의 오랜 병폐인 지역주의가 민주당의 전진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에서는 변화의 움직임이 조심스럽게 감지됐다. 부산이 지역주의 타파의 진원지다. 민주당은 당초 부산 지역에서 3~4석 확보를 목표로 했지만 지역주의의 벽에 막혀 목표 달성엔 실패했다. 하지만 지지율로 볼 때 부산진 갑, 사하 갑, 북강서 갑·을, 남구 을 등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들은 새누리당 후보들을 3~8% 포인트 차이로 맹추격했다. 정당 득표율은 더욱 고무적이다. 민주당이 부산지역에서 기록한 정당득표율은 31.8%. 지난 18대 총선에서 거둔 12.7%에 비해 세 배 가까이 늘어났다. 현 정부와 집권여당을 강력히 견제한 것은 물론 지역주의 극복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집권여당의 실책이 야당의 반사이익으로 직결되지 않는다. 이번 총선은 야당이 반사이익에만 기대 수권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실패했을 경우, 야당은 여당보다 더욱 준엄한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향후 민주당은 의제설정 및 정책 수립 역량을 키워 나가야 한다. 적어도 수권정당으로서의 역량 면에서는 새누리당이 민주당 보다 한 수 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