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우리당

2005-12-09     글/ 김영권 기자
우리당의 끝없는 추락, 바로잡기 가능할까
정세균 군기잡기 나서, 당 내부 쇄신위한 쓴 소리
발 문: 창당 2년이 갓 넘은 집권여당이 흔들리고 있다. 재보선 참패와 온갖 악재 속에서 위기에 처한 모습이다. 최근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40%에 육박하는 한편 우리당의 지지율은 바닥을 치고 있다. 당 내부에서도 균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에게 2006년은 찾아올까.

“창당정신으로 돌아가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떳떳하게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하자”
열린우리당 부산시당 당직자 60여명은 지난 11월 18일 오후 부산상공회의소 상의홀에서 열린우리당 정세균 당의장 등 지도부 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당 쇄신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여당의 위기 극복을 위한 쓴 소리를 쏟아냈다. 이원정 사상구당원협의회장은 “중앙당 차원에서 나오는 민주당과 통합논의는 영남을 포기하는 처사”라며 “통합논의는 국회의원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방편일 뿐 전국정당이라는 창당정신과 어긋나는 처사”라고 질타했다.
박상도 부산시당 부위원장도 “당이 위기를 벗어나려면 지역정치 극복 등 창당 당시의 정신으로 되돌아가 뚜렷한 정체성으로 국민에게 호소해야 한다”며 “창당할 때 내놓은 개혁과제들도 논의만 무성했지 성과가 없는 만큼 과감한 추진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희겸 영도구당원협의회장은 “중앙당에서는 호남 껴안기만 할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영남에 대한 지원책을 내놔야 내년 선거를 치를 수 있다”며 “지역 민생현안을 중앙당 차원에서 담당을 정해서라도 직접 챙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남중 수영구상무위원은 “현재 기간당원이 한 주소지에 20명에서 30명 심지어는 80명까지 있다”며 “허수에 불과한 기간당원 등록제를 현실에 맞게 1가구 1당원 방식으로 바꾸자”고 역설했다.
박언호 사상구당원협의회장도 “직접 지역구민을 상대로 기간당원 모집에 나섰지만 10%는 커녕 전혀 호응이 없었다”며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내년 지방선거를 치를 것이냐”고 따졌다.
배다지 부산시당 고문도 “열린우리당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주와 통일이라는 우리 나라 역사의 기본방향대로 전체 민주, 민족세력과 통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세균 당의장은 “민주당과 통합문제는 민주당측에서 호응이 없어 더는 추진하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밝힌 후 “개혁과제에 대해서도 과거사법은 이미 통과시켰고 사립학교법도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통과 시키겠다”고 말했다.

김두관·이기명·유시민의 '네 탓'하기
그런 가운데 김두관 대통령 정무특보, 이기명 국민참여연대 상임고문,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 등 노무현 직계 3인방이 여권의 위기 상황을 ‘남의 탓’으로 돌리며 일제히 입을 열었다. 김 특보는 지난 11월 19일 충남 금산 인삼엑스포에 참석, 여당의 낮은 지지도에 대해 “과거 패러다임을 바꾸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비주류가 정권을 잡다 보니 과거 주류들과 보수 언론이 집중 공격해 어려움이 많다”고 강변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회장을 지낸 이 고문은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최근 DJ를 병문안한 인사들을 ‘추악한 정치인’이라고 매도했다. 그는 고건 전 총리에 대해 “어디 기대볼까 하고 주판알을 튕기나”, 민주당 한화갑 대표에 대해선 “도청사건 처리가 DJ 죽이기라니, 그렇게 머리가 안 도나”라는 등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노 대통령의 탈당을 주장한 우리당 안영근 의원에겐 “쥐나 개나 한마디씩 지껄여대 통에…”라고 했다.
유 의원은 18일 참여정치실천연대 행사에서 “민주당과의 합당은 최선이 아닌 최후의 수단으로, 그렇게 하는 순간 개혁도 놓치고 재집권도 못 한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의 미숙한 국정운영을 지적한 당내 보고서에 대해선 진단 방법 자체가 잘못됐다고 일축했다. 이들 3인의 논리에 대해 “진지한 자성 없이 남의 탓만 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정세균 “해당적 행태 엄중 문책 하겠다”
한편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11월 20일 최근 당 소속 의원들의 잇따르는 돌출발언과 자료 유출 행위 등에 강력한 군기잡기에 나설 뜻임을 내비쳤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이 이날 국회의원, 중앙위원, 당직자 일동에게 보낸 공개서신을 통해 “기강과 규율이 바로서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당내 분란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소속 의원들의 발언 등에 대해 보다 강력한 경고성 메시지를 띄웠다.
열린우리당은 10.26 국회의원 재선거 참패 직후 선거책임론과 향후 당 수습방안 등을 두고 소속 의원들 사이에서 난상토론에 가까운 치열한 논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안영근 의원은 ‘대통령 탈당론’을 거론, 당 안팎에서 극심한 반발을 불러왔다. 이에 당 지도부는 11월 18일 비상집행위원회 회의를 통해 안영근 의원에게 공개적인 경고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정세균 의장은 “우리는 뼈를 깎는 환골탈태의 각오와 반성으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면서 “비상지도부는 비상한 각오와 결의를 다지며 밤낮으로 머리를 맞대고 위기극복을 위한 지혜를 모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과 당원동지들의 격려와 비판에 귀 기울이며 몸과 마음을 낮춰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면서도 “최근 외부에 알려질 필요가 없는 당내 일들이 언론에 잘못 공개되어 우리의 이러한 노력을 훼손하는 일들이 잦아지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특히 “대통령과의 일부 대화 내용이 왜곡되어 알려지거나, 당내의 비공개 조사결과가 일부 언론에 잘못 공개되는 일들이 발생되고 있다”면서 “대통령과 관련된 중대한 정치적 문제를 포함해 정제되지 않은 개인적 견해를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당에 해를 끼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정 의장의 지적은 11월 14일 청와대 만찬에서 노 대통령이 당정분리 원칙 고수 입장을 밝힌 것과 관련 일부 의원들이 언론을 통해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대목. 또한 안영근 의원의 잇따른 대통령 탈당 발언과 당 싱크탱크인 열린정책연구원의 우리당 지지율 하락 원인에 대한 보고서 유출파문 등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정세균 의장은 “이런 행위들은 결과적으로 당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당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해당적 행태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당의 기강과 규율을 바로 세워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당에 부담을 주는 정제되지 못한 발언과 기밀누설 행위 등에 대해 단호히 경고하고 엄정 하게 바로 잡아가야 할 것”이라면서 “국민의 신뢰를 저하시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당원의 이름으로 엄중 문책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아울러 “규율과 질서는 공동체를 이루는 근간으로 내부 기강과 규율을 바로 세워야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개인플레이의 원심력이 아니라 우리 모두 공동운명체임을 깨닫고 함께하는 튼튼한 구심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엉뚱한 당명 개정 논의
열린우리당의 분열은 당명 개정 논의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우리당 핵심 관계자는 “당의 전반적인 쇄신 차원에서 당 이미지 제고와 새 출발을 위해 당명을 바꿔보자는 안이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창당 때부터 지금까지 당명에 대한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면서 “당 쇄신작업이 이뤄지는 현 시점에 논의 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우리당은 현재 구성된 비상집행위원회에서 세부 논의와 여론수렴을 거쳐 추진할 방침이다. 상당수 비상집행위원들도 이 같은 방안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헌 개정을 위해서는 중앙위원회 의결을 거친 뒤 차기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
우리당은 2003년 11월 창당한 이래 당명 때문에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지난해 4·15총선 직전에는 정동영 당시 의장이 ‘열우당’이라고 자꾸 부르는 한 기자에게 화를 내며 “우리당이라고 부르든지, 차라리 열린우리당이라 써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우리당 홈페이지에는 “당명의 약칭을 외부에 혼란만 주는 ‘우리당’에서 차라리 ‘열린당’으로 바꾸는 게 낫지 않느냐”는 등의 당명에 대한 당원들의 불만도 오르내리고 있다. 급기야 지난달 말에는 우리당 홈페이지에 ‘당명 바로잡기 신고센터’가 설치됐다. 야당과 일부 언론매체에서는 여전히 공식 약칭인 ‘우리당’이 아닌, ‘열우당’ ‘열린당’ 등으로 바꿔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당이 “인터넷 매체를 포함한 언론보도 가운데 우리당의 명칭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경우, 그 현장을 알려달라”는 취지로 캠페인에 나선 것이다. 이를 담당할 ‘당명수호천사’도 모집 중이다. 우리당은 “열우당이라는 표현에는 우리당을 폄하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면서 “정식약칭이 아닌 다른 당명을 계속 고집하면 법적인 조치도 취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盧, “당질서 바꿔가는 과정의 진통”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1월 14일 최근 여권의 난맥상과 관련,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일들이 질서를 하나씩 새롭게 바꿔가는 과정의 진통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 등 비상집행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청와대 만찬 회동은 창당 2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은 우리당의 요청에 따라 마련됐다.
10·26 재선거 직후 ‘책임론’ 공방으로 홍역을 앓은 데다, 최근 ‘거리두기’ 등 심상찮은 시나리오들도 나오는 상황을 감안, 여권 안팎을 어수선하게 만드는 각종 난제들이 테이블에 올랐다. “당의 어려운 고비에는 견해를 밝히겠다”고 한 약속대로 ‘수석당원’의 복심(腹心)을 물은 것이지만, 정작 노대통령은 ‘성장통’ 논리로 ‘창당 정신’의 ‘원칙론’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최근 여당에서 제기된 민주당과의 ‘통합론’과 당헌·당규 개정 문제 등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은 “지금은 혼란스럽고 불안하지만 옛날에 많이 겪어봤고 훌륭하게 극복해온 일들”이라며 “위기는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 낙관적 전망을 가지고 열심히 해나가자”고 당부했다.
노대통령은 특히 2001년 11월 비상대책위를 예로 들며 “당의 조직과 운영에 새로운 논리를 만들고 기초를 마련해 경선을 치르고, 그 후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지적했다. 이어 “덜렁덜렁하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가 ‘동서화합 합시다’라며 손 내밀었다가 지지율을 한꺼번에 3분의 1이나 잃어버리고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고 아픈 기억도 떠올렸다. 노 대통령은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느냐 생각해보면, 개인이나 나라나 조직이나 시대 흐름에 따르는 각기 운명이 있다”고도 했다. 내년 지방선거와 지지기반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려에서 출발한 ‘통합론’에 대해 노 대통령이 ‘지역구도 해소’라는 창당의 대의를 강조하면서 선을 그은 것이다.
이 같은 엇갈림은 위기에 대한 시각차에서 비롯된다. 노 대통령은 지난 7월 ‘당원동지들께 보낸 편지’에서 “지역으로 편을 가르고 대결이 심화될수록 정책정당도 대화정치도 설 땅이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여당 위기의 원인은 지역에 기반 한 대결의 정치문화라는 것이고, 따라서 해법도 단순한 정체성 문제나 합당 등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