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D-1] 선거는 최선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수단이다

표로 국민정서 드러낸 프랑스 사례에서 배워야

2012-04-09     지유석 기자

4.11총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중추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그래서 선거는 늘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번 4.11총선은 투표율이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투표율이 60%를 넘어가면 야권에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는 역대 선거결과에서 확인된 사실이기도 하다. 2004년 17대 총선거에서 총투표율은 62.9%를 기록했고, 그해 총선거에서는 진보세력이었던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을 차지했다. 4년 뒤 상황은 역전됐다.

2008년 18대 총선거에서 투표율은 46.1%에 그쳤다. 바로 전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여당이 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총선에서도 승리를 거둬 행정부에 이어 입법부마저 장악했다. 한나라당의 잇따른 승리는 전임 故 노무현 前 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심판론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낮은 투표율 역시 한나라당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역대 선거결과를 의식한 듯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면서도 투표를 적극 권장하지는 않는 모양새다. 반면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야권연대는 특히 이른바 '2040세대'의 투표율에 사활을 거는 양상이다.

야권연대의 전략은 타당한 근거를 지니고 있다. 2011년 12월 기준으로 투표권을 갖고 있는 유권자 가운데 19~49세가 전체의 62%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비해 50세 이상 유권자는 38%에 그쳤다. 결국 2040세대의 표심을 잡는데 성공하면 승리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에 야권연대는 젊은 층 유권자들의 발걸음을 투표장으로 옮기기 위해 갖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투표율이 높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SBS와 중앙일보, 동아시아연구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이번 총선에 꼭 투표하겠다는 답변이 75.5%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후보 선택 기준에 대해선 후보의 능력이 36%, 공약 20.4%, 도덕성 19.7% 순으로 드러난 반면 정당을 기준으로 선택하겠다는 답변은 18.5%에 그쳤다. 후보자 개인의 자질이 정당 선호도를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한 표는 정치적 의사표현의 강력한 도구임을 인식해야

이 같은 흐름은 무척 고무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투표용지 한 장의 위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유권자들이 많은 실정이다. 표 하나는 큰 위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표가 모이면 표의 위력은 세상을 바꾼다. 또 투표용지 한 장은 강렬한 정치적 의사표시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때의 일이다. 당시 프랑스는 외교·국방은 보수 우파인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담당하고, 내정은 좌파인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관리하는 이른바 '동거정부(코하비타시옹)'를 이루고 있었다. 이에 대통령 선거에서는 시라크 대통령과 조스팽 총리가 대권을 다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프랑스의 대통령 선거방식은 특정 후보자가 과반수 득표에 실패했을 경우 1차 투표에서 1, 2위를 차지한 후보가 결선투표를 벌여 최종 당선자를 결정한다. 1차 투표에서 시라크 대통령은 1위를 차지했다. 여기까지는 대체적인 예상이 맞아 들어갔다.

문제는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펜이 리오넬 조스팽 총리를 밀어내고 2위를 차지한 데 있었다. 국민전선은 외국인, 특히 이슬람계 외국인의 이민제한과 유럽연합(EU)에 반대해 프랑스의 국가주권 강화 등을 강령으로 내세운 극우정당이다. 대통령 선거전까지 극우정당의 약진을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런 이유로 르펜이 결선투표에 진출하자 프랑스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르펜의 약진은 또 좌파 진영에 위기감을 던졌다. 리오넬 조스팽은 패배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앞으로 치러질 2차 결선투표에서 좌파 지지층이 대거 이탈할 위험이 높았다. 하지만 프랑스 유권자들은 투표장으로 향했다.

프랑스 유권자들은 좌우 할 것 없이 시라크를 선택했다. 특히 좌파성향의 유권자들은 투표장에서 머리에 붉은 고무장갑을 끼고 시라크를 조롱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 같은 움직임은 진영논리를 떠나 극우파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정치적 의사표현이었다.

프랑스 유권자들은 표를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확실하게 표시했다. 투표용지 한 장의 위력은 그만큼 큰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표 한 장은 종이조각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모인 표 한 장은 강력한 정치적 의사표현의 유효한 도구이다. 투표가 대의제 민주주의의 꽃으로 늘 주목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