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의 언론장악 시도에 들불처럼 일어나는 대안언론

‘나는 꼼수다’에서부터 ‘뉴스타파’까지 형식과 내용도 각양각색

2012-03-16     글_정대근 기자/사진_지유석 기자

뉴스 정상화와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MBC의 총파업이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KBS 새 노조가 3월6일 총파업을 예고해 파문이 예상된다. 이로써 양대 지상파 채널의 방송파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KBS 새 노조는 노조 간부 13명에 대한 부당징계철회와 김인규 사장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총파업에 앞서 KBS기자협회는 부당징계 철회와 신임 보도본부장 인사철회를 요구하며 3월2일 0시를 기해 취재 및 제작 거부에 돌입한다고 밝힌 상태다.

최시중, 방송통신 장악 선봉대장

집권에 성공한 정치권력이 언론을 다루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밖에 없다. 싸우거나 장악하는 것. 이런 점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언론, 정확히 말하자면 권력으로 자리 잡은 거대 언론사들과 끊임없이 싸웠다.
그러나 2008년 취임한 이명박 정부는 언론장악을 선택했다. 특히 방송을 장악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 선봉장은 그 해 3월에 취임해 지난해 연임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다. 그는 취임 직후 참여정부 시절에 임명된 정연주 KBS 전 사장을 해임했다. 정 전 사장이 배임행위를 했다는 혐의를 씌웠다. 그러나 지난 1월13일 대법원은 정 전 사장의 무죄를 최종 확정했다. 결과적으로 그를 해임하기 위한 억지 누명이라는 점이 입증된 셈이다.
빈자리에는 이병순, 김인규 사장 등 친정부적인 인사를 임명했다. MBC 구성원들로부터 거센 퇴진압박을 받고 있는 김재철 현 MBC 사장 역시 선임 과정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양대 언론사의 수장을 갈아치운 후 최 위원장은 종합편성 채널 만들기에 힘을 쏟았다. 이 과정에서 방송의 발전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분히 정치적 이해에 따른 행보라는 풀이가 많았다. 이는 의무전송 채널 지정이나 광고몰아주기 등 각종 특혜를 대거 안김으로서 최 위원장 스스로가 입증해낸 바이기도 하다.
결국 조선, 중앙, 동아, 매경 등 보수신문들이 대주주인 종편이 탄생했다. 하지만 당초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개국 후 3개월을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종편 4사의 시청률은 1%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종편사들은 독자적인 광고영업을 강행하면서 국내 언론광고시장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작 방송통신위원회가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지상파와 케이블 사업자 간에 재송신료 분쟁이 발생했을 당시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아 결국 KBS 2TV 재송신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를 초래하기도 했다.

공약사항이었던 통신료 인하도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으며, 미래 성장 동력이라며 적극 추진 의사를 보였던 와이브로사업 역시 본궤도에 올리지 못했다. 제4이동통신사 설립은 연거푸 무산됐고, 주파수 정책은 중장기적 대책 없이 무제한 입찰 방식을 도입해 업계 혼란만 가중됐다. 결국 방송은 물론 통신 분야에 있어서도 정책적인 성공을 거둬내지 못한 셈이다.

언론장악과 대안언론 전성시대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언론장악은 폭력적이고 직접적 형태로 나타났다. 정부가 보도지침을 마련해 각 언론사에 하달했고, 심지어 검열요원이 각 언론사에 상주하며 직접적으로 보도통제에 나섰던 것이다. 이러한 언론장악을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전두환 군부정권은 전대미문의 언론통폐합까지 단행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은 조금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양대 방송사의 수장과 보도본부 실무책임자에 측근을 배치함으로써 자체적인 검열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다분히 경제논리에 기댄 측면이 크다. 언론인 역시 월급을 받고 생계를 꾸려나가는 노동자라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사측 주도의 보도통제에 쉽사리 저항할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었다. 이에 각 방송사와 일부 종이매체 언론사 기자들은 그 부당성을 주장하며 산발적인 저항을 반복해 왔다. 이 결과 군부독재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해직기자들이 다수 양산되기도 했다.

언론장악의 결과는 대단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운동, 4대강 사업의 문제점, 한미FTA 졸속체결,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비리 등 중대한 사안들에 대한 보도가 적극적이지 않았다. 아예 지상파 뉴스를 통해 찾아볼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부상한 ‘나는 꼼수다’는 그렇게 시작됐다. 2011년 4월28일 ‘가카(이명박 대통령) 헌정방송’을 표방한 이 팟캐스트 방송이 처음으로 시작됐고, 곧 돌풍을 일으켰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와 17대 국회의원 정봉주, 시사평론가 김용민이 포문을 열었고, 8회부터는 시사IN 주진우 기자가 합세했다.
이들은 이른바 ‘주류언론’이 이야기해 주지 않는 정치와 권력의 이면에 대해 해박하면서도 세밀한 정보와 분석을 제공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절부터 논란에 휩싸였던 ‘BBK주가조작 연루 의혹’이 주된 소재였다. 회를 거듭할수록 이들이 다루는 소재의 범위와 깊이 점점 확대됐다.

10.26서울시장 재보선 정국에서는 나경원 당시 후보의 ‘1억 원 피부숍 의혹’을 단독 보도해 선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또한 선거 당일 일어났던 선거관리위원회와 박원순 당시 후보의 홈페이지 공격사건을 최초로 제기해 실제 수사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영향력 있는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 뉴스채널이 정부 주도의 인사를 통해 자기 검열을 강화하면서 저널리즘의 실종사태로까지 치달았다. 이에 진실과 정보에 목말라했던 국민들은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기존 방송에 비해 기술적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다소 정제되지 않은 표현들이 섞여 있었지만, 이는 고스란히 신선함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나는 꼼수다’는 팟캐스트 뉴스분야 1위에 올라서는가 싶더니, 전국 순회공연과 미국 특강이라는 형태로 진화해나가기 시작했다. 이 무렵 유사한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꼼수다’의 경제판이라 불리는 ‘나는 꼽사리다’가 나왔고, 민중의 소리가 방송하는 ‘애국전선’이 한미FTA 촛불정국에 맞추어 방송을 시작했다.
이러한 대안언론은 스마트폰 보급확대와 함께 파죽지세로 확산되고 있다. 언론 전문가들조차도 이러한 현상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방송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심은 거대한 강물과 같다. 물길을 잠시 동안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근본적으로 그 흐름을 막아낼 길이 없다. 둑이 가로 막으면 넘쳐서라도 흘러가고, 여의치 않으면 샛길을 찾아가는 게 강물의 속성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대안언론의 전성시대는 주류언론의 무기력함과 언론장악이라는 전근대적인 발상에 대한 반작용에서 비롯하게 된 셈이다. 기존 언론사와 언론인이 제대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까지 이러한 대안언론의 발전과 진화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해직언론인이 만드는 인터넷방송 ‘뉴스타파’

첫 회 방송이 유투브를 통해 공개된 후 단숨에 50만 명의시청자를 끌어들인 ‘뉴스타파’라는 인터넷 방송이 화제몰이 중이다. 이는 웃음기가 가득한 ‘나는 꼼수다’ 계열의 방송과는 확연히 차별화를 이루고 있다.
기존의 뉴스와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포맷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상파 방송에 버금가는 깊이로 각종 이슈들을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이 방송을 만드는 이들이 해직언론인들이기 때문이다. 2008년 YTN 구본홍 사장 출근저지 투쟁을 주도하다 해직된 YTN 전 노조위원장 노종면 앵커와 같은 해 MBC의 39일 총파업을 이끌다 해직된 이근행 PD가 주축이 돼 만들어 가는 프로그램이다. 이와 함께 미디어몽구 등 1인 미디어 및 언론운동가들이 가세하면서 방송은 더욱 밀도가 높아졌다.

본지는 2월16일 ‘뉴스타파’ 녹화현장인 프레스센터 18층의 전국언론노조 사무실을 방문했다. 마침 노종면 앵커를 비롯한 제작진들은 4회차 방송분 앵커멘트를 녹음 중이었다. 방음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회의실 한 구석에 카메라와 조명을 설치되어 있었고, 제작진들은 멘트 한 줄 한 줄을 꼼꼼하게 체크하며 녹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환경은 허술해 보였지만, 녹화는 결코 허술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약 1시간에 걸쳐 앵커멘트를 녹화했지만, 조명의 각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뒤 망설임 없이 재녹화에 들어갔다. 그렇게 꼬박 1시간30분 정도를 기다린 후 노종면 앵커를 만나볼 수 있었다.

Q. 뉴스타파의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다. 취재를 하던 기자입장에서 요즘엔 취재를 당하는 입장으로 바뀐 것 같다. 어색한 점은 없는지.
A. YTN에서 해직된 이후부터 이미 취재를 당하기 시작했다. 2008년도 하반기에 해직되었으니 벌써 4년째다. 뉴스타파 덕분에 인터뷰를 자주하지만 특별히 어색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Q. 나는 꼼수다가 화제를 불러 모으기까지 몇 달의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뉴스타파의 경우 단 1회 방송으로 네티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괴력을 발휘했다. 그 동력은 어디에 있다고 평가는지?
A. 오늘날 우리의 방송언론 환경이 제대로 된 뉴스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첫 번째 동력인 것 같다. 기존 방송사들이 제대로 보도활동을 했더라면 뉴스타파와 같은 대안미디어가 굳이 화제를 모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나는 꼼수다를 비롯한 팟캐스트 언론과 SNS 대안 미디어들이 기반을 잘 다져줬고 가능성을 보여줬기에 보다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Q. 나는 꼼수다의 경우 현 정부의 임기만료와 함께 방송을 종료하겠다고 선언하고 시작했다. 해직언론인들이 만들어 가는 방송인 만큼 방송의 종료시점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 같다. 이에 대한 향후 전망은 어떠한지?
A. 뉴스타파를 기획하고 준비할 당시 시청자들의 반응을 가늠할 수 없었던 탓에 방송의 지속 여부에 대해서는 따로 정하지 않았다. 단, 방송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해직언론인들이라는 제약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뉴스타파의 의미가 커지고, 시청자들의 수요가 있다면 그런 제약을 넘어서 지속해야 한다는 다짐은 하고 있다.

Q. 뉴스타파는 여타의 팟캐스트 방송과는 달리 정통 뉴스포맷을 채택하고 있다. 이에 대한 특별한 이유라도?
A. 누구에게나 친숙할 수 있는 형식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그 결과 기존 뉴스형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형식이 불편하면 이를 멀리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기존 뉴스 시청자일수록 거부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형식적인 거부감을 최소화시키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집중력을 높일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뉴스타파는 다른 팟캐스트 언론들이 달성하지 못한 영역까지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50대 이상의 어르신들에게도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편안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Q. 짧은 기간에 많은 대안미디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2000년대 초반의 인터넷매체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것 같다. 현재의 대안미디어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나?
A. 바야흐로 미디어의 확장이 이루어지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각 대안언론들이 새로운 형식의 미디어를 생산해내고 있지만 결국 내용적 완성도에 따라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인위적인 정리나 조율작업 없이도 자율적으로 정리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기존의 미디어의 경우에는 대안미디어가 시도하고 있는 각종 형식의 실험을 따라오게 될 것이고, 대안미디어는 기존 미디어가 생산해내는 내용의 깊이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으로 본다. 이는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잠식하는 형태가 아니라 결국 상생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