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대선판도 예측

2005-11-17     글/ 김정숙 기자
차기대권주자 판도 변화 조짐, 고건 독주 제동
‘청계천특수’ 이명박 급상승, 박근혜 초강수로 돌파

고건 전 총리가 독주하던 차기대권 판도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고건 전 총리의 지지율이 주춤하는 사이에 '청계천 효과'를 앞세운 이명박 서울 시장이 치고 올라오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유지돼온 고 전 총리의 독주에 일단 제동이 걸리는 양상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다소 처진 3위를 유지하고 있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등 여권 주자들은 여전히 한자릿수 지지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열린우리당은 누가 출마해도 3등
지난 10월 6일자 경향신문 조사(현대리서치)에서 고 전 총리는 28.1%로 1위를 기록했고 이 시장이 21.0%, 박 대표가 12.9%로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통일부 장관(9.7%)과 이해찬 총리(3.3%),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2.2%), 한 나라당 소속 손학규 경기지사(0.9%)가 그 뒤를 이었다.
고 전 총리 27.9%,이 시장 20.3%, 박 대표 15.9%,정 장관 9.2%의 순으로 나타난 지난달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와 비슷한 추세다. 8월 지지율에서 박 대표에 앞서기 시작한 이 시장이 청계천 건설을 호재로 확고하게 2위 자리를 유지하는 흐름이다. 박 대표는 지난 4월 재·보선 압승 이후 지지율이 크게 올랐 던 만큼 10월 선거결과가 변수다.
지난 7월까지만 해도 2위에 두 배 이상 앞섰던 고 전 총리의 지지율이 정체현상 을 보이는 것은 현직 프리미엄을 누리는 다른 주자들에 비해 '장외주자'로서 행보에 한계가 노정되는 불리한 여건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고 전 총리의 대선행보가 당초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여권 주자들의 부진은 여권에 대한 총체적인 민심이반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20% 안팎으로 한나라당에 비해 10~15%포인트 뒤지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6자회담 타결이라는 호재(정 장관)도 떠난 민심 앞에서는 별다른 효과를 발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듯한 김 장관의 튀는 행보도 낮은 지지율에서 탈피하려는 고육책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선거결과 여하에 따라서는 두 사람의 당 조기복귀 문제가 불거질 개연성이 다분하다.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이 큰 정치이벤트의 결과에 따라 부침이 심하다는 점에서 10월 재·보선 결과에 따라 또 한차례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대표가 한나라당 주자로 나설 경우 고 전 총리는 상대적으로 손쉬운 승부를 펼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고 전 총리, 박 대표, 정 장관이 출마할 경우 3자의 지지율은 각각 35.6%, 25.4%, 14.5%였다. 고건-박근혜-김근태의 구도는 36.6%, 28.7%, 8.1%였다.
여당의 대권주자로는 '대통령감이 없다'는 응답(34.2%)이 가장 많은 가운데 정 장관 24.8%, 김 장관(9.9%), 이 총리(9.5%)의 순이었다.
이 시장이 한나라당 대선 주자로 나설 경우 고 전 총리는 이 시장과의 진땀나는 승부를 감수해야 하는 구도이다. 지금으로서는 열린우리당의 누가 출마해도 3등에 머물게 된다. 유세 때마다 연예인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며 당내 기반을 굳히고 있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로서도 청계천 특수를 업은 이 시장의 여론몰이가 결코 반가울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이번 여론조사에서 현재의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51.6%로 '개헌할 필요가 있다'(38.9%)는 응답보다 12.7%포인트 높게 나왔다.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방안에서도 국민들은 여권이 추진하는 선거구제 개편(30.4%)보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행정구역 개편(34.5%)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당 지지도는 열린우리당 20.8%, 한나라당 34.2%, 민주노동당 15.4%, 민주당 4.8%순으로, 지지정당이 없거나 모른다고 응답한 부동층은 24.8%에 이르렀다.


이명박 인기에 박근혜, 초강수로 돌파구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장외투쟁’이라는 초강수를 꺼내들며 사실상 참여정부에 대한 전면전을 선포했다.
“6·25가 통일전쟁”이라는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학문적 주장과 관련, 우리 사회는 내용적 정당성을 떠나 ‘사상의 자유’ 측면에서 보장되어야 한다는 목소리와 강 교수의 주장은 보호해야할 학문적 영역을 넘어섰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강정구 교수의 주장은 죽어가던 국가보안법의 부활 속에 사법처리의 대상이 됐고 천정배 법무장관은 검찰에 불구속 수사를 지휘했다. 김종빈 검찰총장은 이에 ‘총장직 사퇴’로 대응했고 청와대는 김 총장의 이러한 태도에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천정배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과 관련, 검찰 독립 훼손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참여정부를 향한 총공세에 나섰다. 그 정점은 17일 한나라당 상임운영위 회의 석상.
박근혜 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그동안의 단아한 이미지와는 달리 거친 표현을 쏟아내며 사실상의 장외투쟁을 선언하는 등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마디로 현 정권이 이성을 잃었다” “대한민국의 체제를 부정하고 도전하는 이를 보호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이번 사태는 한마디로 천 장관 문제를 넘어선 정권의 문제다” 등등.
박근혜 대표가 장외투쟁이라는 초강수를 꺼내든 배경은 무엇일까? 이와관련, 여권 일각에서는 최근 한나라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 중인 이명박 서울시장에 대한 견제와 함께 10·26 재보선 승리를 통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07년 차기 대선과 관련, 박근혜 대표는 ‘대표 프리미엄’을 활용, 이른바 빅3 후보 중 가장 유리한 고지를 밟아왔다. 여성이라는 핸디캡과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의혹과 과거사 문제, 당내 반박세력의 도전 등 3중고에 시달려왔지만 차기 대선에서 보수세력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탄핵 후폭풍 속에서 치러진 지난해 4·15 총선에서는 난파 직전의 한나라당을 120석에 이르는 거대 야당으로 부활시켰다. 또한 과반의석을 획득한 여권이 총선 민의라며 강력하게 밀어붙인 국보법, 사학법, 과거사법, 신문법 등을 4대 개혁입법 정국을 효과적으로 봉쇄, 노무현 정권에 대항하는 상징으로 떠올랐다. 아울러 여권의 자중지란 속에서 치러진 지난 4·30 재보선에서는 23대 0이라는 화려한 스코어를 기록하며 당내 이른바 박근혜 대세론이 일만큼 입지를 공고히 다졌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한국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박근혜 대표는 4·30 재보선을 정점으로 친박 의원들의 잇단 실책으로 완만한 하향세를 겪었다. 곽성문, 전여옥, 주성영 의원의 구설과 돌출 행동은 박근혜 대표의 이미지를 구긴 대표적인 사례다.
당 홍보위원장이었던 곽성문 의원은 만취한 상태에서 맥주병 투척 사건을 일으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어 핵심 최측근 세력으로 분류되는 전여옥 대변인은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를 통해 이른바 ‘고졸 대통령’ 발언으로 여론의 극심한 반발에 시달렸다.
혁신안을 두고 친박, 반박세력간 논쟁이 치열했을 때 “혁신안은 사기”라고 외치며 흑기사를 자처했던 주성영 의원 역시 국감 당시 술자리 폭언으로 엄청난 사회적 파문을 낳았다.
이에 반해 이명박 서울시장은 항상 박근혜 대표를 추격하던 2인자 자리에서 벗어나 현재 흐름으로만 본다면 한나라당의 강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하는 분위기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청계천 복원사업의 성공은 정치인 이명박에 대한 국민적 이미지를 드높였다. 박근혜 대표가 가벼운 잽으로 점수를 쌓아왔다면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이라는 강력한 훅 한방으로 그동안의 열세를 일거에 뒤집은 것.
컨텐츠 부족이라는 비판에 시달려온 박근혜 대표와 달리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 복원사업을 주도, 눈에 보이는 뚜렷한 성과물을 만들어냈다. 이후 한나라당의 물밑세력 판도가 이명박 시장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특히 청계천 복원공사 준공식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나란히 서있는 이명박 시장의 모습은 한나라당의 차기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이명박 시장은 나아가 차기 대선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경부운하’ 건설을 주장하는 등 대선고지를 향해 성큼성큼 뛰고 있다.
청계천 사업 이후 한나라당내 차기 대권구도는 보다 역동적으로 굴러가고 있다. 이명박 시장이 박근혜 대표를 추월한 것은 물론 차기 대권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고건 전 총리와의 격차도 줄여나가고 있다.
이와함께 최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이명박 시장이 경선승복을 강조한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이 시장의 언급을 뒤집어본다면 한나라당 대권후보 선출에 대한 자신감 속에서 오히려 박근혜 대표에게 경선 승복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노사모에 버금가는 박사모의 열혈 지지와 폭넓은 대중적 이미지로 스타 정치인으로 성장한 박근혜 대표로서는 상황반전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터져나온 강정구 동국대 교수 논란은 박근혜 대표로서는 정치적 입지를 다시 한번 다질 수 있는 호재.
박근혜 대표는 지난 10월 18일 기자회견에서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총출동을 해서 강정구 교수를 비호하는데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체제수호의 최후 보루인 국가보안법 폐지를 온몸으로 막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국 상황이 강정구 파동에 이어 또다시 체제논쟁으로 전환될 경우 지난해 국보법 정국과 유사한 국면으로 흐를 수 있다. 박근혜 대표로서는 체제 수호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보수층의 결집을 유도하는 동시 현 정권에 거세게 도전하는 야당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할 수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표의 승부수는 이명박 서울시장에 대한 견제용이라는 분석 이외에도 10·26 재보선 승리를 통해 정국 주도권 장악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부천 원미갑, 경기 광주, 대구 동을, 울산 북 등 재보선이 열리는 4개의 국회의원 선거구 중 원래 한나라당 의석은 경기 광주와 대구 동을 두 곳이다. 부천 원미갑은 열린우리당 그리고 울산 북은 민주노동당의 의석이었다. 단순한 수치로만 계산할 때 이번 재보선에서 2석을 챙기면 한나라당으로서는 본전.
하지만 ‘재보선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는 박근혜 대표를 향한 당 안팎의 요구는 전승이다. 민주노동당의 지지세가 강한 울산 북구는 물론 부천 원미갑까지 획득, 지도력을 보여달라는 요구다.


재보선 결과따라 흐름 변할 듯
하지만 이번 재보선은 공천 과정에서 각종 잡음이 불거지면서 박근혜 대표는 체면을 구겼다. 공천 논란이 극심했던 곳은 경기 광주지역. 홍사덕 전 의원이 무소속 출마를 강행, 당선될 경우 지도력 훼손이 불가피하다. 또한 정치적 텃밭으로 불리는 대구 동을에서도 이강철 열린우리당 후보의 ‘힘있는 일꾼론’이 먹혀들면서 유승민 한나라당 후보와는 박빙의 승부를 기록 중이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정기국회 집중을 호소하면서 중앙당 올인 자제를 요청하지만 박근혜 대표는 일찌감치 재보선 올인을 선언하고 지원유세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여권에서는 상임위 출석률 꼴지 혹은 치어리더 정치를 그만두라고 비꼬기도 하지만 재보선 승리를 향한 박 대표의 고집은 빡빡한 지원유세 일정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박근혜 대표는 재보선 압승이 가져다주는 결과가 얼마나 달콤한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박 대표는 행정도시법 파동으로 흔들렸던 지도력의 상처를 4·30 재보선의 압승으로 말끔히 회복했다. 당내에는 박근혜 대세론이 광범위하게 유포된 것은 물론 반박세력도 꼬리를 완전히 내려야 할 정도였다.
강정구 교수 논란은 이번 재보선에 또다른 복병이다. 박근혜 대표는 ‘강정구 교수의 주장을 옹호하는 현 정부와 열린우리당’과 ‘대한민국 체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한나라당’으로 재보선 구도를 몰고가면서 현 정권 심판론을 호소할 것으로 보인다.
위기의 여권 ‘다다익선’론 제기도
이런 가운데 여권 내부에서 ‘차기 대선주자 다변화론’이 제기되고 있다. ‘여당 대선주자’라고 하면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만 연상하는 2인 구도를 다자구도로 바꾸자는 것이다.
일각에선 내년 5월 지방선거전 외부인사 영입과 함께 ‘신 40대 기수론’의 후보군 등에 연관된 이름들이 구체적으로 거명된다. 지지율에서 동반 침체 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는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물론 정·김 장관의 분위기 반전을 위해서도 ‘흥행을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그 출발점이다.
수도권의 한 중진의원은 지난 10월 20일 “최근 이명박 서울시장의 급상승과 고건 씨,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주춤거림 등 야권의 역동적인 측면과는 달리 여당도, 두 장관도 국민의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대선주자군을 넓히기 위한 당·정 개편 등 다양한 환경 조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정구 교수 파문’으로 정국의 뉴스메이커로 떠오른 천정배 법무부장관과 이해찬 총리의 실질적인 대선주자군 진입은 물론 추미애 전 민주당 의원과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의 이름을 거론하기도 했다. 또 다른 중진의원은 “10·26 재선거가 끝난 뒤 인재 풀을 다양화시킬 수 있는 여권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분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내 일부 의원들은 ‘조기 전대’ 개최 문제를 후보군 다변화와 당 분위기 혁신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단순히 정·김 장관의 내년 초 복귀를 상정, 두 사람만이 뛰어드는 조기전대를 하느냐 마느냐는 지금까지의 논의 수준이 아니라 현 지도부를 포함해 당 안팎의 차기 희망자들이 모두 출전,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서 주목도를 높이는 공세적 발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대 마당이 제공될 경우 김부겸·김영춘·유시민 의원 등 40대 재선그룹에서 세대교체론과 당 쇄신론을 앞세워 도전장을 내밀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차기 주자군 다변화는 여권의 희망이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당에 대한 민심의 변화 추이와 함께 예고되고 있는 정기국회 이후 정치권 전체를 겨냥한 ‘대통령 정치’의 파괴력에 따라 대선주자군에 편입될 새 얼굴들의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