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동화] 한 번도 못 놀았다고
2017-05-10 편집국
순수성은 아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고되고 바쁜 삶을 살아가면서 그 마음을 잃었을 뿐 내면 깊숙한 곳엔 잃어버린 순수성이 잠들어 있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고 즐겁다. 본지는 어린이 책 작가교실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 한 편씩을 소개해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으로 바라 본 세상을 전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바쁜 일상으로부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삶의 여유를 가지길 바란다. <편집자 주>
한 번도 못 놀았다고
이연숙
소별이와 진구는 시간을 확인했다. 학원 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진구가 주머니에서 작은 휴대 전화를 꺼냈다. 소별이는 같은 이 학년인데도 휴대전화가 있는 진구가 부러웠다.
“배터리가 얼마 없어.”
진구의 말은 휴대전화 게임을 혼자만 하겠다는 것이다. 게임이 시작됐다. 둘은 몬스터가 폭발할 때마다 주먹을 꽉 쥐고 와, 소리를 질렀다.
“하여간 요즘 아이들은 모이기만 하면 핸드폰이야. 성공하려면 공부를 해야지.”
보안관 아저씨가 등나무 의자 옆을 지나가며 말했다. 소별이가 보안관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옛날 아이들은 하나도 안 놀았어요?”
“말 타기, 구슬치기 같은 걸 하기는 했었지.”
“우리도 체험학습 가서 전통놀이 했어요. 비석치기 진짜 재밌었는데.”
소별이가 신나서 떠들었다.
“맞아. 나도 비석치기 했는데. 와, 내가 비석을 날려서 다른 애들 거 다 쓰러뜨렸을 때 기분 완전 좋았어.”
“진구 너만 그랬냐. 나도 그랬어. 여자애들하고 나눠서 시합했을 때 남자팀인 우리가 이겼잖아. 진짜 재밌었는데.”
보안관 아저씨가 혀를 끌끌 차더니 얼른 집에 가라고 말했다.
“학원 차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진구의 말에 보안관 아저씨가 시간 남으면 도서관에서 책이라도 한 권 읽으라고 말했다.
“아직 한 번도 못 놀았어요.”
소별이가 볼멘소리를 했다. 보안관 아저씨가 허허허 웃더니 숙직실로 가버렸다.
“야, 나도 한 번 해보자.”
소별이의 말에 진구가 휴대전화를 건넸다. 휴대전화 화면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배터리 나갔어. 너무한 거 아니냐.”
“보안관 아저씨가 게임 그만하랬잖아. 다른 거 하고 놀자.”
소별이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둘이서 할 만한 놀이를 궁리하는데 자꾸만 비석치기가 떠올랐다.
“진구야. 체험학습 가서 했던 비석치기, 우리 그거 하자.”
“비석치기? 그거 하려면 돌이 있어야 해.”
소별이와 진구는 운동장을 한 바퀴 빙 돌았다. 화단이 있는 곳도 살펴보았지만 어디에도 돌은 보이지 않았다. 매끈한 인공잔디와 푸슬푸슬한 흙이 전부였다.
“이제 뭐하고 놀지?”
소별이는 비석치기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더 하고 싶었다. 비석으로 세울 만 한 것이 뭐가 있을까 궁리했다. 갑자기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야, 교과서 있잖아. 그거 세우고 하자.”
“교과서?”
“수학책 있잖아. 두꺼워서 잘 세워질 거야. 그리고 우리 엄마가 수학책을 가지고 놀 정도는 돼야 좋은 대학도 가고 취직도 잘 된댔어.”
“그래? 그러면 열심히 가지고 놀아야겠네.”
소별이와 진구는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냈다. 둘은 서로 수학책을 쳐다보며 킬킬거리고 웃었다.
“가위바위보로 할까 아니면 묵찌빠로 할까?”
“묵찌빠.”
그럼 시작. 진구가 주먹인 묵을 냈다. 소별이는 가위인 찌를 냈다. 소별이는 진구가 뭘 낼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빠!!!”
진구의 갑작스런 소리에 소별이는 보자기인 빠를 냈다. 진구는 당연히 빠였다. 진구가 먼저 공격을 하기로 했다. 소별이는 출발지점에서 다섯 걸음 걸어간 자리에 수학책을 세웠다.
“그럼 시작한다.”
진구가 출발지점에 서서 소별이의 비석, 아니 수학책을 향해 자신의 수학책을 던졌다. 진구의 수학책이 소별이의 수학책을 쓰러뜨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소별이는 울상을 지으며 다시 수학책을 세웠다. 진구가 한 걸음을 뗀 다음 그 자리에 서서 수학책을 던졌다.
“야호, 쓰러졌다. 다음은 두 발.”
소별이는 진구의 수학책에 맞아 찢어진 자신의 수학책을 집어 들었다.
“원래 비석치기는 작은 걸로 해야 되는데 이건 너무 커서 나빠. 그냥 막 던져도 다 쓰러지잖아.”
“내가 실력이 좋아서 그런 거야.”
진구는 두 발 가서 던진 것도 성공했다. 이제 비석을, 아니 수학책을 발등에 올려놓고 걸어가 비석을 치는 차례였다.
“수학책이 크니까 자꾸 떨어지네.”
진구는 수학책을 발등에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한 발을 뗐다.
“바닥에 닿았어. 나 봤어. 바닥에 닿았다고.”
드디어 소별이 차례였다. 진구의 수학책이 비석처럼 서 있었다. 소별이는 출발점에 서서 진구의 수학책을 향해 자신의 비석, 아니 수학책을 날렸다. 진구의 수학책이 보기 좋게 쓰러졌다.
“우하하하. 이제 한 발이다.”
소별이는 진구가 수학책을 세우는 걸 보면서 한 발을 뗐다. 그리고 방향을 잡아 수학책을 던졌다.
“누가 공부하는 책을 던져.”
난데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소별이와 진구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안관 아저씨였다.
“어디서 책 가지고 장난질이야. 죽어라 공부할 생각은 안하고. 그래가지고 훌륭한 사람 되겠어?”
둘은 보안관 아저씨의 말에 깜짝 놀라 수학책을 들고 냅다 도망쳤다. 교문을 지나고 놀이터를 지나고 아파트 단지를 지났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둘은 연신 헉헉거렸다.
“학원 안 가니?”
소별이가 헉헉거리며 물었다. 진구가 헉헉거리며 시간을 확인했다.
“십 분 있다 차 올 거야.”
“근데 보안관 아저씨 말이야. 우리 얼굴 알까?”
“몰라. 근데 보안관 아저씨 진짜 웃기지. 죽으라고 공부하래. 우리 옆집 형이 공부만 할 게 아니라고 했는데. 뭐라더라 그런 세상이 아니래. 보안관 아저씨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나저나 십 분이나 남았는데. 뭐하지?”
“손바닥 씨름 어때? 진사람 딱밤 맞기.”
소별이의 말에 진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한 팔 정도 간격을 두고 마주보고 섰다. 팔을 접고 손바닥을 쫘악 펼쳤다. 소별이가 순식간에 팔을 뻗어 진구 손바닥을 밀쳤다. 진구가 휘청하더니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끼익.
오 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영어 학원 차가 왔다. 진구는 다음에 놀자며 가버렸다. 소별이는 아쉬운 마음에 학원차를 쳐다보다가 집으로 향했다.
‘진구는 손바닥 씨름 졌다는 거 알고 있겠지.’
소별이는 그동안 갈고 닦은 딱밤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정말이지 하루종일 공부만 하고 한 번도 놀지 못했다.
| 어린이 책 작가교실은 2002년 시작된 어린이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내속의 잠재력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함께 궁리하는 평생배움터이다. 그동안 각종 공모전을 통하여 수많은 동화작가, 그림책작가, 논픽션 작가를 배출하였고 여러 출판사들과 손잡고 좋은 어린이 책을 펴냄으로써 어린이 책 세상에 짙푸른 숲을 이루어 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