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家 이맹희 vs 이건희 법정공방, 최종 승자는?

CJ 이재현 회장 뛰어들면서 전면전 양상으로 번져

2012-02-27     지유석 기자

국내 굴지의 재벌기업인 삼성家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삼성家의 장남 이맹희 씨가 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7,200억대의 상속재산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 사태의 발단이었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 쪽은 고소 취하를 요구하며 물밑 접촉을 시도했다. 이때만 해도 양쪽이 어떤 식으로든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삼성 쪽 직원이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미행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사태는 범삼성가의 전면전으로 비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23일 CJ그룹은 삼성물산 직원이 이재현 CJ회장을 미행했다고 발표했다. CJ쪽에 따르면 2월21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의 이 회장 집 앞에서 며칠 동안 이 회장을 미행하던 승용차를 세우려다 사고가 나 신분을 확인한 결과 삼성물산 소속 김 아무개(42) 차장이라는 것이다. CJ는 또 이 회장에 대한 미행이 “지난 15일부터 계속됐다”면서 미행 장면이 담긴 CCTV 영상 일부를 공개하기도 했다.

CJ그룹 쪽은 즉각 법적조치를 취했다. CJ법무팀은 김 아무개 차장을 업무방해와 불법 미행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이에 대해 삼성 쪽은 “사실관계부터 확인해야 한다”며 직접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실제 CJ쪽에 고소 당한 김 차장은 삼성물산 건설부문 감사팀에서 사업성 진단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으로 확인됐다.

삼성물산은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인근 부지 활용방안을 찾으러 다니던 중 21일 사고를 냈고, 경찰에서 사고 조사처리가 완료된 것으로 안다”고만 밝혔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경찰 조사를 마쳤음에도 CJ쪽이 고소를 제기한데 대해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우연한 사고로 보이지만 재계엔 이 사건이 이맹희 씨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낸 상속재산 반환 청구소송과 맞닿아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故이병철 회장의 장남인 이 씨는 한때 6개월 간 삼성그룹의 경영을 맡아 선대 회장의 유력한 후계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그가 그룹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1979년 9월 삼남인 이건희를 후계자로 지목한다.

후계싸움에서 동생에게 밀린 이 씨는 국내는 물론, 몽골, 중국 등에서 유랑생활을 했다. 현재도 그는 중국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외를 전전하는 기간 동안 그가 삼성과 관련해 맡은 직책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 그가 지난 2월14일 그룹회장인 동생에게 소송을 건 것이다.

그룹 후계자에서 초대형 소송 원고로

이 씨는 서울중앙지법에 “아버지가 생전에 제3자 명의로 신탁한 재산을 이건희 회장이 다른 상속인에게 알리지 않고 단독명의로 변경한 만큼 내 상속분에 맞게 주식을 넘겨 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의 소장을 냈다. 이 씨는 소장을 통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주식은 아버지 생전에 제3자 명의로 신탁한 재산이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상속인들에게 법정상속분대로 상속되어야 했다”면서 “아버지가 타계한 이후 이건희 회장은 명의신탁 사실을 다른 상속인에게 알리지 않고 2008년 12월 삼성생명 주식 3,248만주를 단독명의로 변경한 만큼 내 상속분인 189분의 48에 해당하는 824만주와 배당금을 돌려 달라”고 주장했다.

이 씨는 또 “1998년 12월 차명주주로부터 삼성에버랜드가 매입하는 형식으로 명의를 변경한 삼성생명주식 3,447만주도 법정상속분에 따라 반환돼야 한다”면서 “현재로서는 이 부분 주식 명의변경 경위가 불분명해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는 일부인 100주만 청구한다”고 덧붙였다.

이 씨가 이 회장에게 청구한 내역을 보면 소장에서 언급했던 삼성생명 주식 824만주와 삼성전자 주식 20주(보통주 10주, 우선주 10주) 및 1억 원이다. 그는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도 삼성생명 주식 100주와 1억 원을 청구했다.

이 씨의 소송은 전체 소송가액만 7,138억 원에 이른다. 향후 삼성전자 차명주식을 추가로 청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청구액은 수 조 원대에 이를 것이란 예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이에 대해 이 씨는 “삼성전자 차명주식은 일부 실명전환 사실만 확인되고 실체가 불분명해 우선 일부 청구로 보통주 10주, 우선주 10주만 인도할 것을 요구한다”고만 밝혔다. 이 씨의 소송대리인인 법무법인 화인 쪽은 이건희 회장에게 실명 전환된 삼성전자 차명주식이 약250만주이며 이를 상속권자인 형제들(4명) 숫자로 나눠보면 이맹희 씨 몫이 57만주 정도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 쪽의 근소한 우세?

이맹희 씨는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송의 인지대는 22억에 이르지만 이 씨는 이 금액을 모두 납부했다. 소송 대리를 맡고 있는 한 변호사는 “원고측에서 주식을 꼭 돌려받아야겠다는 입장이 완고하다”는 전언을 남겼다.

이 씨측은 승소를 자신하고 있는 눈치다. 자신감의 근거는 공소시효다. 상속권 침해 회복을 요구하는 이번 소송은 상속행위 발생일로부터 10년, 이를 상속권자가 알게 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하도록 돼 있다.

이 씨측은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차명주식을 실명전환한 시점이 2008년 10월이고, 이 씨가 이를 알게 된 시점은 지난 해 6월 삼성이 CJ측에 상속재산 분할관련 소명서를 보냈을 때라면서 공소시효가 만료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실제 이 때 삼성 쪽은 ‘상속재산 분할 관련 소명’이란 제목의 문건을 CJ쪽에 전달했다. 이 문건엔 “선대회장께서 삼성그룹 내 회사들의 주식을 실명주식과 차명주식을 포함해 모두 각 상속인에게 분할해줬다. (중략) 모든 상속인들은 각자가 분할 받는 재산 이외에 다른 상속인의 재산에 대해서는 어떠한 권리나 이의가 있을 수 없으며, 더더욱 특정 상속인이 차명재산을 국세청에 신고한 후 실명 전환하는 시점에서 다른 상속인들이 자신의 상속지분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 씨는 해당 문건을 받고 나서야 차명주식과 관련해 선대회장의 상속재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어 “차명재산에 대해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에 문서에 서명 날인을 해줄 수 없었다”고 강변했다.

반면 삼성 쪽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서도 이건희 회장의 우세를 점치는 분위기다. 사실, 이맹희 씨가 주장하는 상속재산은 2008년 ‘삼성비자금 특검’에서 드러난 것이다. 당시 삼성특검은 “차명주식 900만 주 이상이 있었는데 이는 이병철 회장 소유이며 이건희 회장에게 상속됐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했었다. 법조계는 원고가 그룹 경영에서 멀어져 있었다고 해도 거대 재벌 일가인데다 차명주식이 사회적 관심사였기에 이의 존재를 몰랐을 리 없다고 보고 있다.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

이맹희 씨가 소송을 제기하던 즈음, 두 사람 사이의 분쟁은 화해로 마무리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양쪽이 감당해야 할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씨가 승소할 경우 다른 형제자매들이 추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 이건희 회장의 자금부담이 늘어날 위험이 높다.

사안의 민감성을 의식해 삼성 쪽은 이맹희 씨의 장남 이재현 씨가 회장으로 있는 CJ를 통해 중재를 시도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문제가 불거졌다. 삼성물산 소속 김 아무개 차장이 이재현 CJ회장을 미행했다는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행사건을 두고 삼성과 CJ측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CJ쪽은 이 회장을 미행한 삼성직원의 고소 직전 “국내 최고 기업인 타 기업 회장, 그것도 이병철 선대 회장의 장손에 대한 미행 및 감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번 사건에 대한 삼성측의 해명과 사과, 재발방지 약속 등 책임자에 대한 문책을 요구하며 이에 불응할 시 즉각 소송에 나설 계획”이라고 소송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삼성 쪽은 삼성은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선 소송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CJ쪽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한 마디로, CJ가 삼성의 저의를 의심하고, 삼성은 단순 사고를 CJ가 확대해 악용한다고 받아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삼성과 CJ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양측의 갈등은 CJ가 삼성으로부터 계열 분리되던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주인 故이병철 회장은 이학수 비서실 차장을 제일제당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보냈고, 이 부사장은 이재현 현 회장을 이사회에서 배제하려 시도했다. 또, 1995년에는 삼성 측에서 동태파악을 위해 이재현 회장 집에 CCTV를 설치했다가 철거하기도 했다.

삼성과 CJ간의 불화는 지난 해 이뤄진 대한통운 인수 과정에서 더욱 악화됐다. CJ는 대한통운 인수를 위해 삼성 계열사인 삼성증권과 자문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삼성의 또 다른 계열사인 삼성SDS가 포스코와 손잡고 입찰에 참여했고, 이에 양측은 알력을 빚었다. CJ쪽은 삼성SDS의 입찰참여에 대해 “삼성이 CJ의 사업을 방해하려는 목적”이라면서 거세게 반발했다.

CJ의 삼성직원에 대한 고소는 이맹희 씨와 이건희 회장의 분쟁을 전면전으로 확대시켰다는 분석이다. 경영권 승계에서 밀렸던 이맹희 씨는 장남인 이재현 씨가 이건희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전자 회장 자리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에 하나 이맹희 씨가 승소할 경우 지금까지의 삼성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것은 물론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으로의 승계가 무산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CJ가 이미 수개월 전부터 소송에 깊이 관여했다는 설이 재계 안팎에서 힘을 얻고 있다. 사태 초기만해도 “범삼성가의 갈등으로 비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소송을 취하하도록 설득할 것”이라면서 중재에 나섰던 CJ쪽이 돌연 입장을 바꾼 것도 이런 가설에 무게감을 실어줬다.

하지만 이맹희 씨가 승소할 경우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바뀔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노회찬 통합진보당 공동대변인은 2월24일 MBC 라디오 ‘시선집중’ 프로그램에 출연해 “삼성생명에서 지금 제1대 주주가 이건희 회장이고 제2대 주주가 에버랜드 지주회사다. 만약 이맹희 씨가 소송에서 이겨 상속분을 돌려받게 되면 이 회장의 지분이 약간 줄기 때문에 1위와 2위의 순서는 바뀐다”면서도 “에버랜드의 최대주주는 이재용 씨이기 때문에 삼성생명의 1대 주주가 이건희 체제에서 이재용 체제로 넘어가는 변화는 있을지 몰라도 경영권이 이건희 씨 일가로부터 다른 쪽으로 넘어가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국내 굴지의 재벌기업인 삼성 그룹 총수와 일가가 재산분쟁을 벌인다는 소식은 곧 여론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왔다. 특히 형제간 재산다툼의 결말은 초미의 관심사다. 하지만 여론의 시각은 그다지 곱지 않다. 재산분쟁의 대상이 특검결과 밝혀진 차명재산이기 때문이다. 당시 특검은 이를 상속재산이라고 인정했다. 유감스럽게도 특검 발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특검이 삼성의 입장을 모두 수용해줬다는 비난 여론이 비등했다.

최근 삼성을 비롯한 재벌은 재벌가 2, 3세들에게 일감을 몰아줘 중소상인들의 설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 와중에 불거진 재벌가의 재산분쟁은 가뜩이나 들끓고 있는 비판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재벌개혁 필요성은 그래서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