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으로 일관하는 민주통합당
여당 실책에 따른 반사 이익 한계 있어
민주당이 임종석 사무총장과 이화영 전 의원을 공천한 명분은 바로 ‘현격한 경쟁력 차이’였다. 한편 공천심사 결과, 심사 대상인 현역 의원 31명 중 27명이 공천을 다시 받았고, 4명은 경선을 치르게 됐다. 현역 탈락자가 한 명도 없는 것이다. 이번 심사결과는 인적쇄신 없는 나눠먹기식 공천이라는 비난에 부딪혔다.
공교롭게도 민주당이 2차 공천심사 결과를 발표한 그날, 통진당과의 야권연대 협상 결렬 소식이 전해졌다. 협상이 결렬된 가장 큰 요인은 양당의 입장차였다. 통진당은 이른바 10+10안, 즉 수도권 10곳, 호남, 충청, 강원, 대전 지역에서 10곳에 대해 민주당이 야권연대 전략지역으로 선정할 것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4+1안으로 맞섰다. 수도권 4곳과 호남, 충청, 강원, 대전 지역에 각각 1곳만 양보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통진당은 즉각 반발했다. 우위영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지난 17일부터 진행된 야권연대 협상이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우 대변인은 이어 “민주당이 야권연대에 대한 의지와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으며, 민주당의 전향적 변화 없이는 야권연대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한다”며 민주당을 거세게 비판했다.
조용환 헌재 후보자 선출 부결이 신호탄
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2월초부터 제기되기 시작했다.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국회표결이 신호탄이었다. 2월9일 국회본회의는 조용환 후보자 선출안을 부결시켰다. 재석의원 252명 가운데 찬성이 115명이었던데 비해, 129명이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8명의 의원은 기권했다.
헌법재판관 선출안의 국회부결은 1988년 헌법재판소 창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조용환 후보자의 부결 소식이 전해지자 비난여론이 빗발쳤다. 그런데 비난의 화살이 새누리당은 물론 민주당에게도 향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띠었다. 비난의 포문은 강금실 전 법무장관과 노회찬 통진당 공동대변인이 열었다.
강 전 장관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조용환 변호사가 헌법재판관이 될 수 없는 세상인가? 어이없다”고 탄식을 쏟아냈다. 이어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을 겨냥해 “민주당 첫 작품이 겨우 이거냐? 전략전술도 없는 나이브함, 새누리 완전 극우, 어디 두고 보자”고 직격탄을 날렸다. 노회찬 공동대변인도 거들고 나섰다. 역시 트위터를 통해서다.
노 공동대변인은 “조용환 헌재재판관 동의안을 끝내 부결시켰군요. 참 포악한 당입니다. 새누리당 심볼로 엎어진 요강 채택하더니 이 나라 들어 엎을 건가요”라면서 새누리당을 정조준했다. 동시에 그는 “스스로 추천해놓고 관철 못시킨 쪽의 정치력도 참 한심합니다”고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의 무능도 질타했다.
민주당에 쏠리는 비난
강 전 장관과 노 공동대변인이 여야를 싸잡아 비난하는 듯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새누리당 보다는 민주당에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조용환 후보자 선출안 부결 소식에 대한 여론의 반응 역시 민주당에게 더욱 엄격하게 책임을 묻고 있었다.
현재 새누리당이 차지하고 있는 의석수는 비례대표까지 합쳐 174석. 지난 1월까지 166석이었으나 2월1일 미래희망연대와 합당하면서 8석을 더 확보했다. 새누리당은 이미 의회 과반의석이어서 구태여 야당과 협의하지 않고도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지위다. 실제 새누리당은 종종 우월한 지위를 앞세워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관철시켜왔다. 이번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 선출안 부결도 새누리당의 정략에 따른 결과였다.
전략, 전술 모두 상실한 민주당
새누리당은 줄곧 지난 해 6월2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나온 조 후보자의 발언을 문제 삼았아 왔다. 당시 조 후보자는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해 “정부 발표를 받아들이지만 직접 보지 않아 확신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었고,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이 발언을 빌미로 재판관 선출안을 본회의에 상정되지 조차 되지 못하게 저지했다.
조용환 후보자 선출안 부결의 1차적인 책임은 물론 여당에게 있다. 그럼에도 불똥은 민주통합당에까지 튀었다. 그런데 민주당에 대한 비난여론은 당의 무능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의 무능은 이미 지난 해 인사청문회 시점부터 드러났다.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있고 난 바로 다음 날인 6월30일, 국회에서는 인사청문특위 회의가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등 보수정당은 불참했고 결국 심사보고서 채택 및 임명안 처리는 무산됐다. 그해 9월 한나라당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명동의안 처리에 나섰다. 민주당은 조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먼저라고 주장했지만 한나라당은 이를 묵살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나서서 여당의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 우선 처리 요구를 수용했다. 조 후보자 선출안을 염두에 둔 양보였다. 그렇지만 한나라당은 요지부동이었다. 계속해서 조 후보자의 천안함 발언을 문제 삼았고, 이에 대해 민주당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새누리당이 무려 7개월 동안 줄곧 조 후보자에 대한 반대입장을 고수해 왔음을 감안해 볼 때, 2월9일 국회본회의의 선출안 부결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납득할만한 명분 없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이유만 내세워 국회에 등원했다. 결국 민주당은 자신이 추천한 인사가 낙마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석패율제로 반발 자초
민주당의 행보를 지켜보는 여론은 실망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비단 조용환 헌법재판관 선출안 뿐만 아니다. 석패율제 역시 민주당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현안이다. 전당대회의 여운이 채 가시지기도 전인 1월17일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석패율제를 도입하기로 잠정합의했다.
이어 1월30일 최고위원회에선 한 정당이 차지한 의석수가 전체의 10분의 1에 못 미친 광역 단위 지역에서 이 제도를 실시한다고 방침을 정했다. 지역에 따라 후보자 수가 달라 득표력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 경우를 고려, 후보자의 득표수를 해당 지역구의 ‘평균 유효득표수’로 나눈 수가 큰 후보자를 당선인으로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석패율제를 추진하는 명분은 특정 정당의 일당 독과점 저지 및 지역주의 완화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특히 야권세력의 한 축인 통진당의 반발이 거셌다.
통진당의 노회찬 공동대변인은 1월18일 브리핑을 통해 “석패율제를 통해 영남과 호남에서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 유력인사들을 한두 명씩 당선시킴으로써 승자독식 지역구도가 없어지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노 공동대변인은 “승자독식으로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의 지역패권 구도를 보장하고 유지하기 위한 위장전술에 다름 아니다”고 비판했다.
창조한국당, 자유선진당 등 다른 야당들 역시 석패율제가 군소야당의 존립을 위협할 것이라며 민주당을 압박하고 나섰다. 네티즌들도 민주당이 야권연대보다는 석패율제를 통한 기득권 유지에 급급하고 있다는 비난을 쏟아 냈다.
내부반발 초래한 공심위 구성
석패율제로 한 바탕 홍역을 치른 민주당은 이번엔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 구성 과정에서 내부갈등에 휘말리고 만다. 민주당은 지난 2월3일 최고위원회 의결을 거쳐 강철규 우석대 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공심위를 구성한다고 발표했다.
공심위엔 최영의 의원을 비롯해 노영민, 박기춘, 백원우, 우윤근, 전병헌, 조정식 의원 등 당내 인사 7명, 그리고 도종환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김호기 연세대 교수, 문미란 변호사,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조선희 전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조은 동국대 교수, 최영애 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등 외부인사 7명이 위촉됐다.
하지만 공심위 인선은 즉각 반발에 부딪혔다. 문성근 최고위원이 “민주통합당 공심위 구성에서 통합의 정신을 찾을 수 없다. 공정한 공천심사가 이루질수 있도록 공심위의 전면재구성을 요구한다”며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문 최고위원이 전면 재검토를 주장하는 근거는 시민통합당 출신 인사가 한 명도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 그는 공심위 구성에 대한 항의표시로 최고위원회 출석마저 거부했다.
문성근 최고위원은 다음 날인 2월4일 공심위 인선에 대해 일단 수용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강 위원장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차원이란 설명이다. 그렇지만 문 최고위원은 “앞으로의 변화를 보겠다. 통합정신이 실현되면 그때 (최고위원회에) 출석하겠다”면서 반발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갈수록 싸늘해지는 여론
전당대회 이후 현재까지 보여준 민주당의 행보는 당 안팎으로 반발에 부딪혔다. 한명숙 당대표와 김진표 원내대표를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트위터 상에서는 ‘한명숙 언팔운동’까지 벌어졌었다. ‘언팔’이란 트위터 상에서 팔로잉을 해제하는 것을 말한다. 동시에 김진표 원내대표에 대한 퇴진운동도 본격화됐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이미 지난 해 11월 한미FTA가 국회에서 통과되던 시점부터 민주당에서 퇴출되어야 할 정치인 1순위로 꼽혔다. 그러던 것이 한명숙 대표가 전당대회 직후 김 원내대표를 계속 신임할 뜻을 비치자 그에 대한 퇴출운동이 한층 탄력을 받은 것이다.
민주당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잇단 실책에 힘입어 반사이익을 누려왔다. 출범 2주만인 지난 해 12월 마지막주 실시한 정례 여론조사에서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을 오차범위에서 제치고 정당지지율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당의 핵심기능인 의제 설정과 정책대안 수립 면에서 집권 여당에게 밀리는 모습이 역력하다. 더구나 공천결과 발표와 야권연대 협상결렬은 가뜩이나 악화되고 있는 여론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대안정당으로서의 역량이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집권세력의 실책이 야당에 대한 지지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대안정당으로서의 역량이 유권자들에게 검증이 되어야 표를 확보할 수 있다는 건 정치의 오랜 진리다. 민주당이 수권정당의 면모를 과시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