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통한 에이즈감염
2005-11-09 글/김정숙 기자
에이즈, 잠복기 헌혈땐 발견안돼 수혈공포 확산
발문: 30대 여성 2명이 병원 수혈을 통해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핍증)에 감염되는 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 얼마전 한 여성 환자가 에이즈에 감염된 혈액을 수혈받고, 이 혈액을 원료로 한 혈액제제가 시중에 유통되는 가 하면 말라리아 등 법정 전염병 감염자에게서 채혈된 혈액이 다른 사람에게 수혈되는 등 혈액관리 사고가 연이어 발생한 가운데 이번 사고가 터져 가히 수혈 공포가 확산일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수혈로 인한 에이즈 감염 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병원에서 수혈받은 30대 여성 2명이 또 에이즈에 감염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이번 에이즈 감염처럼 에이즈에 걸려 잠복기(21일) 때 헌혈할 경우, 음성반응이 나오기 때문에 현재의 의학으로 볼 때 이를 감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에이즈 수혈 공포’가 확산될 전망이다.
30대여성 두명 수혈로 감염돼
30대 여성 2명이 헌혈과정에서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에이즈 잠복환자가 헌혈한 피를 수혈받고 에이즈에 감염된 충격적인 사실이 벌어졌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29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헌혈 과정에서 에이즈 감염자로 확진된 ㄱ(남·23)씨의 헌혈 경력을 조회해 역학조사를 벌인 결과, ㄱ씨가 2003년 8월에 헌혈한 혈액을 수혈받은 ㄴ(여·30)씨와 ㄷ(여·35)씨가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ㄴ씨는 수혈 당시 산부인과에서 출산 중이었으며, 이번 역학조사 전까지 에이즈 감염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ㄱ씨의 에이즈 혈액을 수혈받은 사람은 이들말고도 한 명이 더 있었으나 백혈병 환자로 수혈받은 지 10일 안에 숨져 에이즈 감염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로써 수혈로 인한 에이즈 감염자는 모두 16명으로 늘어났다. 적십자사는 또 시(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혈액 4건이 수혈용으로 4명에게 공급되어 1명은 간염에 감염된 사실을 확인했다. 나머지 3명은 수혈한 지 최장 44일 안에 숨져 감염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
ㄱ씨가 2003년 8월에 헌혈한 피는 당시 효소면역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아 수혈용으로 공급될 수 있었다. 이 혈액 중 적혈구는 ㄴ씨에게, 혈장은 ㄷ씨에게 수혈되어 에이즈를 감염시켰다. 또 혈소판은 백혈병 환자에게 수혈됐다. 하지만 이번 역학조사에서 ㄱ씨가 2003년 6월에 헌혈한 혈액을 수혈받은 사람들은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ㄱ씨의 2003년 8월 헌혈 혈액은 효소면역 검사로는 에이즈 감염 여부를 가려낼 수 없는 잠복기(항체 미형성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효소면역 검사는 에이즈 바이러스에 의해 생겨난 항체를 검사하는 방식으로, 항체는 감염된 지 22일이 지나야 형성된다.
효소면역 검사는 에이즈에 감염된 지 22일 이내의 혈액에 대해서는 무용지물이다. 이 때문에 적십자사는 2월부터 핵산증폭 검사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 검사도 에이즈에 감염된 지 11일 이내의 잠복기 혈액에 대해서는 감염 여부를 가려낼 수 없다. 에이즈는 주로 성접촉이나 주사기를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헌혈자가 성접촉 11일 이후에 헌혈을 하는 등 주의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인공혈액이 개발되지 않는 한 수혈에 의한 에이즈 및 간염 바이러스 감염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간염 바이러스는 검사로 가려낼 수 없는 잠복기가 에이즈보다 더 길어 효소면역 검사의 경우 84일, 핵산증폭 검사는 23일이다.
수혈로 인한 에이즈 감염의 경우 적십자사 자체 규정에 의해 우선 5천만원을 보상하도록 되어 있다. 추가 보상 여부는 보건복지부 산하 국가혈액관리위원회에서 논의해 결정한다. ‘시형 간염’은 혈액관리위가 제정한 ‘특정수혈 부작용 간염에 대한 보상지침’에 따라 감염자의 상태에 따라 2천만~4천만원 사이에서 보상한다.
혈액 관리 "안심 못해"
헌혈인구가 급감하면서 혈액제고량이 모자라는 등 혈액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헌혈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단체헌혈시 의사가 직접 현장관리를 하는 경우가 드물어 헌혈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 10월 9일 대한적십자사가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 1월부터 7월까지 각 혈액원별 단체헌혈 현황을 조사한 결과 올들어 제주혈액원이 실시한 단체헌혈은 44번(4,450명)으로 이 중 의사가 직접 현장 관리를 한 경우는 3번에 불과했다. 이는 단체헌혈의 비중이 큰 상태에서 무엇보다 중시돼야 할 문진 및 사후관리를 포함한 헌혈자의 건강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단체헌혈 부작용 사례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으로 2002년 이후 단체헌혈 과정에서의 부작용은 226건에 달하고 있다.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적십자사는 각 혈액원별로 의사를 고용해 헌혈자에 대한 건강관리는 물론 혈액가공과정의 안전성을 책임지도록 하고 있다.
헌혈자의 문진은 물론, 채혈시 부작용에 대한 응급처치나 건강상담 등을 통해 헌혈로 인한 건강손상과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헌혈자의 건강관리를 위해 의사가 헌혈현장에 직접 참여해 헌혈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편 최근 수혈과정에서의 부작용이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가운데 제주에서도 수혈과정에서 부작용이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한적십자사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1987년부터 올해까지 수혈 부작용 환자는 모두 29명으로 에이즈 양성반응 환자가 16명으로 가장 많았고 C형 간염 5명, B형 간염환자 4명, 말라리아 환자가 4명 등이다. 이 때문에 안심하고 수혈을 받을 수 있도록 혈액사고를 줄이기 위한 혈액관리 문제점 개선노력이 뒷받침 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복지부, AIDS 혈액사고개선안 연내 마련
한편,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감염 혈액사고가 이어져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연말까지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지난 10월 11일 밝혔다. 복지부는 적집자사와 질병관리본부, 식품의약품안전청 등과의 보고 및 공표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에 따라 양성혈액의 출고, 수혈감염 등 혈액안전과 관련된 사고 유형별 보고 및 발표, 조치내역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업무지침을 12월까지 제정키로 했다. 또한 결핵과 간염 등 법정전염병 환자의 채혈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질병관리본부가 보유한 모든 전염병 병력자 명부를 적십자사에 제공토록 할 방침이다.
적십자사는 이들을 헌혈일시유보군으로 관리하면서 확인절차를 거쳐 헌혈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채혈토록 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적십자사가 질병관리본부에서 통보받은 질병정보를 헌혈관리 목적에만 사용토록 하는 규정도 마련, 과도한 사생활 침해 논란을 방지갬?했다.
‘에이즈수혈’ 피해보상 도마위에
수혈로 인해 에이즈에 걸린 환자에게 법원이 의학적 한계를 인정, 대한적십자사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피해 환자의 보상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15부(신수길 부장판사)는 지난 10월 12일 수혈로 인해 에이즈에 걸린 홍모씨(19)와 홍씨 부모가 대한적십자사와 홍씨 수술을 담당한 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되더라도 감염 여부를 나타내는 항체형성에 4~12주가 걸릴 수 있어 적십자사가 헌혈 후 실시한 검사에서 음성이 나올 수 있다는 의학적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대한적십자사가 실시하고 있는 효소면역검사법이 바이러스를 발견할 확률이 99.9%이지만 검사 혈액이 미항체 형성기에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검사상 오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한적십자사는 수혈로 에이즈에 걸린 피해자들에게 최고 5천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고 있으나 홍씨측은 보상액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며 소송을 냈다. 그런가 하면 수혈로 에이즈에 걸렸더라도 대한적십자사가 헌혈 과정에서 문진 등 주의의무를 다했다면 배상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 신수길)는 수술 중 수혈로 에이즈에 걸린 홍모(19)양과 가족이 대한적십자사와 수술 집도의를 상대로 낸 1억 9,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에 감염된 뒤 4∼12주 동안은 항체가 형성되지 않아, 에이즈 검사를 해도 음성 반응이 나올 수 있다”면서 “동성애자 등 에이즈 감염 고위험군에 속한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문진 등을 실시한 적십자사가 주의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혈액 수혈을 한 의사의 과실에 대해서는 “HIV는 몸속에 있을 때만 번식하고, 채혈돼 생체 밖에 있을 때는 활동을 중단한다”면서 “수혈 직전에 재검사를 하더라도 HIV 감염여부를 알아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앞서 1998년 대법원은 에이즈 감염자의 혈액을 헌혈받은 적십자사에 환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 당시에는 적십자사가 에이즈 감염 고위험자를 찾아내기 위한 조사와 문진 등을 거치지 않았다.
커지는 에이즈수혈 공포 대책 찾아라
수혈로 인해 30대 여성 2명이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이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최종 확인되면서 ‘에이즈 수혈’ 공포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에이즈 수혈 감염자는 지난 1987년 이후 모두 16명에 이른다. 그런데 문제는 직접 수혈뿐 아니라 오염된 혈액이 혈액제제로 대량생산되어 그대로 유통되는 것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련당국의 ‘방법이 없다’ ‘괜찮다’는 무책임한 말은 국민불안감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적극적으로 대책을 찾아 줄 필요가 있다.
적십자사는 헌혈 당시 에이즈 바이러스 항체가 형성되지 않았을 경우 음성반응이 나오기 때문에 현재 의학으로 감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 올 2월 핵산증폭검사가 도입되며 잠복기가 21일에서 11일로 단축되기는 했다. 그러나 수치에 의한 결정까지 기계가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전문가적 판단과 예방하고자하는 당국의 의지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국감에서 지적된 내용들을 보면 이런 부분들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예산을 이유로 재검사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염혈액을 원료로 한 혈액제제에 대해 안전하다는 식품의약청의 주장도 분명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국과 유럽의 제조업체들은 사전에 두 차례 핵산증폭검사를 하는데 오염혈?검출에 대비해 500명 미만의 혈액으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또 제조공정에 투입하기 전 60일간 보관하면서 오염혈액을 찾아 제거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규정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오염혈액 식별이 어렵다는 점은 인정한다. 때문에 더 많은 노력과 공을 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박스기사
"혈액사업 안전 위해 비정규직, 정규직화하라"
보건의료노조 대한적십자사본부지부가 지난 10월 12일 쟁의조정만료일에도 임단협이 타결되지 못함에 따라 오는 15일부터 전국 19개 적십자사 관련 사업장에서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거부하는 준법투쟁에 일제히 돌입한다고 밝혔다.
적십자 노사는 지난 9월 초부터 모두 7차례 교섭을 진행해 왔으나 임금인상안과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에서 이견이 커 진통을 겪고 있다. 지부는 ▲총액대비 9.89% 임금인상 ▲온전한 주 5일제 즉시 시행 ▲주5일제에 따른 필요인력 10% 정규직으로 즉시 충원 ▲3년 이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핵심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쪽은 19개 사업장 가운데 직권중재 대상인 5개 적십자병원에 대해서는 중재재정안이 이미 발효됐다는 이유로 교섭을 거부하고 있으며, 나머지 사업장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문제와 주5일제 근무와 관련한 인력충원 문제는 교섭대상이 아니므로 임금만 교섭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는 지부는 “무엇보다 현재 적십자사에 일하는 비정규직 비율이 적십자혈액원 30%, 적십자병원 55%로 일반 병원사업장 평균 20%를 훨씬 웃도는 수치”라면서 “더군다나 이들 비정규직은 채혈, 검사, 헌혈의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는 문진, 혈액제조, 분리 등 혈액과 관련한 사업을 직접 담당하고 있는데도 전문교육을 받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 부실한 문진과 검진을 유발하고 에이즈, B형 간염, 말라리아 등 감염된 오염혈액이 수혈되는 엄청난 혈액사고가 나올 수밖에 없게 한다”는 것. 지부는 이미 80.4% 찬성으로 쟁의행위를 가결시켰으며, 10월 15일 준법투쟁에도 사쪽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 경우 11월 초 전면파업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