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 잠적사건으로 본 드라마제작 현장실태
제작 시스템에 대한 구조적인 해법 논의 절실
KBS 2TV 월화드라마 <스파이 명월>의 여주인공 한예슬이 촬영에 불참하며 15일 방송이 결방되는 일이 발생했다. 사고나 천재지변의 이유가 아닌 배우의 일방적인 촬영 거부로 드라마가 결방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지난 14일 오전 7시 30분부터 예정된 <스파이 명월> 녹화 현장에 오후 9시가 넘어도 배우 한예슬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것이 발단이었다. KBS 관계자와 드라마 제작사인 이김프로덕션 임원진, 그리고 한예슬 측이 긴급하게 소집됐다. 에릭, 조형기, 유지인 등 주요 출연진과 스태프들은 오전까지 대기하다가 한예슬 없이 촬영에 들어갔다.
<스파이 명월> 여주인공 한예슬 촬영거부 파문
8월15일 오후 2시께 한예슬이 한 남자와 함께 인천공항 출국장을 빠져 나가는 모습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목격되었다. 한국시간 16일 오전 3시, 미국 LA 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한예슬. “정말 모든 것을 다 내려놨고 다 포기했다”며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제 희생으로 앞으로 후배들이나 여러 연기자들이 저와 같은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는 입장을 밝히며 공항을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져 한예슬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예슬의 소속사 싸이더스HQ는 16일 “불미스러운 일로 인사를 드리게 돼 고개 숙여 깊은 사과를 드린다”며 공식입장을 밝혔다. 또한 “한예슬이 바쁜 촬영 스케줄로 인해 심신이 상당히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촬영을 강행하다 보니 판단이 흐려져 많은 분들께 피해를 끼치게 됐다.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최대한 신속히 귀국해 현장에 복귀, 최선을 다해 끝까지 촬영에 임하도록 하겠다”고 드라마 복귀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KBS는 16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사태를 야기한 한예슬씨의 행동은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행위이며,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판단, 여주인공을 새로 교체 캐스팅해, 대체 배역이라는 비상수단을 강구해서라도 시청자와의 엄중한 약속을 준수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17일 오후 한예슬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많은 취재진들이 몰린 공항 기자회견에서 한예슬은 “엄청난 두려움과 스트레스 속에 이런 선택을 했으며 자신의 이번 행동이 아니었으면 절대로 개선되지 않을 상황이었다”고 지적해 많은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이어 “상황이 얼마나 어렵고 열악한지를 국민들이 알아줬으면 했다. 저같은 희생자가 다시는 생기면 안된다고 굳게 믿는다”는 발언으로 다시한번 한예슬 사건은 혼란에 휩싸였다.
서로 다른 입장의 대립으로 한예슬 사건은 겉잡을 수 없을 만큼 크게 번져나갔다. 같은 날(17일) 저녁 8시 한예슬은 KBS 드라마국에서 고영탁 드라마국장과 황인혁 <스파이 명월> PD외 관계자를 만나 “드라마를 파행으로 몰고 간 것에 대해 우선 사과하고 KBS와 동료 연기자, 스탭, 제작진 그리고 방송사상 초유의 결방사태를 경험한 시청자 여러분들에게 머리숙여 사죄한다”고 밝히며 드라마 복귀의사를 밝혔다. 공항에선 그렇게 강한 문제제기를 해놓고 다시 복귀의사를 밝힌 한예슬의 발언은 더욱 혼란을 증폭시켰다. KBS는 17일 저녁 “한예슬의 복귀의사를 받아들여 드라마 제작을 정상화하기로 하고, 18일부터 다음주 월화에 방영될 12, 13회분 촬영에 들어간다”고 전하기도 했다.
지난 18일 오후 <스파이 명월> 촬영이 재기됐으며, 여의도 인근의 식당에서 점심 겸 회식자리를 갖고 서로에 대한 오해를 푸는 모습을 보였다. 제작진의 한 관계자는 “한예슬과 제작진의 갈등이 한차례 폭풍처럼 불거졌다가 4일 만에 봉합된 터라 양측 모두 촬영에 매진하고 있다”고 전하며 한예슬 사태가 일단락 됐음을 알렸다.
한예슬, 용감한 행동 vs 철없는 행동
여배우의 돌연 잠적에 방송사와 제작사 측이 법적 대응도 불사할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보인 상황, 자신이 희생자임을 강조하던 한예슬이 같은 날 저녁 급하게 자신의 입장을 번복하고 사과를 건넨 상황 등은 지나치게 상반된 것으로 많은 대중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특히 사건의 핵심인물인 한예슬의 행동에 대한 평가가 분분했다. 열악한 제작현실을 알리기 위해 비난을 무릅쓰고 칼자루를 쥔 용감한 행동이라는 평가와 시청자와 제작진을 저버리고 상황을 피하려고만 했던 철없는 행동이라는 질책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항에서 분명 자신이 ‘희생자’라고 발언하지 않았던가. 그녀의 이러한 발언은 드라마 제작환경이 어떠하기에 그녀가 ‘도망’이라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가의 의문을 제시했다. 물론 한예슬의 이러한 발언은 현재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문제점을 수면위로 띄우며 현실을 시청자들에게 알리는 매개체가 되었음은 분명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자신만을 생각한 철없는 행동이라는 의견도 많다. 이번에 이러한 논난을 일으킨 한예슬은 유명인으로 시청자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제작환경을 운운하며 돌연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극단적인 상황을 택한 한예슬에 대해 무책임하다고 여기는 국민들도 많았다.
한예슬은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그녀의 발언은 배우로서의 자질을 의심하기 충분했다. 한예슬은 드라마를 처음 찍는 신인도 아니지 않은가. 배우로서 큰 과오를 범한 그녀의 행동에 시청자들은 분노의 감정을 감추지 못했으며 이러한 일에 대한 그녀의 사과발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스타의존시스템’ 스태프만 희생자
미니시리즈의 편당 제작비는 2억~2억 5,0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외주사들이 방송사에서 받는 제작비는 40~60%에 불과하다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외주사들은 제작비 절감에 매달릴 수밖에 없으며, 제작 현장에선 ‘시간은 곧 돈’이라고 통용되어 불릴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촬영기간을 최대한 단축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지사. 드라마 한편을 제작하는 데는 100명 이상의 스태프가 함께 한다. 주인공인 스타들이 2시간 자면 현장 감독과 많은 스태프들은 1시간을 겨우 자거나 아예 못자는 경우도 많다. 8시에 촬영이 시작 된다고 해도 스태프들은 촬영 두세 시간 전에는 나와서 대기를 해야 하며, 촬영이 끝나도 스태프들은 바로 촬영현장을 떠나지 못한다. 매니저도 없이 움직이는 조연들이나 보조 출연자들은 현장에서 많은 시간 대기하기도 하고 잠깐 눈을 붙이고 자는 경우도 태반이다.
드라마 현장에서 가장 약자는 당연히 현장 스태프일 것이다. 회당 출연료를 받는 배우들과 달리, 스태프 임금이나 촬영장비 대여는 일비로 계산된다. 똑같이 아니 어쩌면 더 많은 시간을 고된 노동에 시달리지만 배우들에 비해 손에 쥐는 것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예슬로 인해 배우들의 고달픈 현실과 드라마 제작 환경이 주목 받았지만 더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 스태프들을 챙겨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예슬의 촬영거부로 많은 스태프들은 현장에서 벌을 서야했다. 혹시 모를 한예슬의 등장을 대비 해야했기 때문이다. KBS의 한 PD는 “드라마가 잘되면 결국 배우가 가장 덕 보는 거다. 명성 얻고 CF 찍고 과실은 다 가져가는 거다. 작가도 몸값 올려서 다음 작품 기대할 수 있는 거고, PD들은 막말로 폼이라도 잡는다. 그런데 스태프들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PD의 말에 따르면 스태프들의 월급은 100만 원 안팎에 불과하다. 스타들이 한 회당 적게는 몇 백만 원에서 몇 천만 원까지 가져가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처사이다. 이러한 과도한 스타 의존 시스템은 가뜩이나 열악한 스태프들의 처우를 악화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드라마제작 ‘상업화’ 여파
이번에 여배우의 불참에 촬영이 결방된 월화드라마 <스파이 명월>은 분명한 문제점을 시사했다. 여배우가 드라마 촬영에 불참한건 지난 14~15일, 그러나 그녀의 불참으로 다음날인 15~16일의 방송이 결방됐다는 것은 분명 한국드라마의 촉박한 촬영스케줄과 제작여건을 드러냈다. 여론과 광고주 등의 압박도 함께 이뤄졌다. 한예슬의 촬영 복귀로 현재는 사태가 접점을 찾았지만 드라마 제작 관행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한국방송연기자조합(이하 한연조)에서는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드라마 제작 환경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한 방송사의 미니시리즈 촬영 중 도미를 한 주인공 여배우를 두고 방송사와 제작사는 한결같이 ‘시청자들과의 신의를 저버린 행동’으로 일축하며 이러한 사태의 발단이 마치 전적으로 한 여배우만의 잘못인 것처럼 마녀사냥식으로 몰아세웠다”며 한예슬 사태에 대해 운을 뗀 것이다. 이어 “그동안 방송드라마의 제작 환경을 들여다보면 이는 당연한 결과물이며 앞으로도 언제든 이러한 드라마 불방과 촬영 중단 사태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며 “방송이 공영의 틀을 벗어나 시청률 지상주의의 병폐에서 출발한 것이고 방송사는 당연히 책임을 지고 문제해결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제 방송사는 제작시스템에 대해 말로만 해결할 의지가 있는 것처럼 포장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으로 재발방지를 위한 제작여건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는 따끔한 충고를 건넨 한연조 측은 앞으로 방송사의 해결 노력을 지켜볼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또한 개선의 의지가 제대로 보이지 않고 땜질식 관행을 유지한다면 특단의 조치로 대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5년 드라마 <파리의 연인>의 주연배우였던 박신양은 “4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촬영하며 연기자와 스태프를 혹사하는 드라마 제작 환경은 개선돼야 한다”는 발언을 한 적이있다.
또한 드라마 출연중인 배우들의 교통사고들도 많았다. 수목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여배우 홍수현은 지난 4일 새벽 촬영 뒤 귀가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으며, SBS 월화극 <무사 백동수>의 유승호는 7월29일, MBC 수목드라마 <넌 내게 반했어>의 박신혜는 같은달 18일 교통사고를 당했다. 드라마 촬영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사고는 아니지만 빡빡한 일정에 따른 야간 운전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흘러 나온다.
상업화의 심화로 인해 드라마 제작환경이 더욱 열악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특히 월화드라마나 수목드라마 같은 미니시리즈는 빡빡한 제작 일정과 여건이 심하다. 대부분 미니시리즈는 매주 70분짜리를 2회 방영한다. 이에 비해 일일극은 매일 30~40분을 방영하지만 스튜디오 세트촬영이 많아 미니시리즈보다는 촬영부담이 적은 편이다. 제작관행의 해결책으로 방영 횟수를 줄여야한다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들려오기도 한다. 다른나라에 비해 우리나라 제작환경이 훨씬 힘들다는 것인데 미국의 경우는 일일극이 없으며 미니시리즈도 1주일에 1회 방영한다. 일본 같은 경우도 50분 분량의 미니시리즈를 일주일에 1회 반영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미니시리즈는 당연 촉박하게 제작되어야 함은 분명한 현실인 것이다.
1990년대부터 1주일에 2회씩 방영하는 방식의 16~24부작 미니시리즈가 생겨났다. 일일극을 빼면 90년대 이전에는 주 1회 방영하는 ‘주간드라마’가 일반적이었으나 지상파 3사의 시청률 경쟁이 주 2회 방영 드라마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주 1회 방영으론 시청자 집중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시청률도 잘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드라마 제작 시스템이 ‘상업화’되고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결과적으로 제작 환경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외주제작이 늘어나고 광고와 협찬 등을 통한 수익 경쟁이 심해지면서 제작현장 또한 빡빡하게 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사전제작제 도입해야
다른 나라의 드라마는 사전제작제를 도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사전에 드라마를 완성시킨 후 방송하는 미국, 일본과 달리 한국은 광고, 편성, 시청률 등의 이유로 제작과 방송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 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확실히 사전제작제를 도입한 드라마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미국이 사전제작제를 중심으로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미국의 드라마는 장르 드라마라고 이야기 하는데 대부분 시추에이션 형식을 취한다. 한 회가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며, 그 한 회로 특정 소재를 지닌 에피소드가 끝나는 형식이다. 이런 드라마들은 시청자반응을 따로 살필 필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제작 방식을 도입하는데에 가장 알맞은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드라마 전체의 사전제작보다 대부분 반 사전제작이 이루어 지고 있다. 총 9~13화 분량 중 4~6화 정도를 먼저 촬영해둔 뒤 시청자반응이나 시청률을 봐가며 그 이후를 제작한다고 한다.
위에 제시한 두 나라의 경우에도 연속극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계속해서 인간관계와 사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진행되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반응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현재 일본도 반 사전제작제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고 미국의 경우 연속극은 사전제작 형태를 취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 드라마는 어떨까? 한국 드라마는 사전 제작제를 표방하고 있지 않다. 대부분 드라마가 ‘생방송’을 방불케하는 제작이 이뤄지고 있으며 한국 드라마 대부분은 연속극이 주류를 이룬다.
이번에 다시 한 번 드라마 제작 환경에 문제를 수면위로 떠올린 <스파이 명월> 역시 연속극 형태로 생방송처럼 진행되는 촬영 스케줄을 감당하지 못했던 문제로 시작되었다. 한 언론매체는 요번 한예슬 문제에 대해 “한예슬은 미국에서 자랐다. 이런 까닭에 미국 드라마 제작시스템을 전해 듣고 누구보다 완벽한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는 것을 통감했을 수 있다”라는 언급을 했다. 드라마 사전제작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덧붙였다.
생방송드라마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당연히 사전제작제의 도입은 필요하지만 여기에는 많은 문제가 야기된다. 시청자 반응을 봐가면서 드라마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현재 많은 드라마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도 상업적인 상품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맞추어 제작을 해야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아 본다는 견해에서 비롯되었다.
분명한 것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전제작제가 꼭 필요하다. 또한 위에서 제시한 대로 전체의 사전제작에 무리가 많다면 적어도 반 이상은 미리 제작을 끝내놓는 절충안, 이것도 안된다면 적어도 대본만이라도 완성된 상태에서 드라마를 찍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국 드라마 제작방식을 두고 계속해서 들리고 있다.
한국드라마의 경쟁력은 동시제작 시스템에 있다는 이야기가 많다. 일본과 중국에 이어 다른 나라로 많은 수출을 한 <겨울연가>의 경우에도 동시제작 시스템의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라고 해석한다. 시청자와의 쌍방향 소통이 드라마가 탄력을 받는데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 때문이다. 드라마 방영과 함께 제시되는 시청자, 네티즌, 모티즌 등의 반응을 고려해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시청률과 광고 등에 즉각적인 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아사히 신문은 “한국 드라마는 시청자반응에 절대적으로 부응해 드라마를 고쳐나가므로 박력과 생동감이 있다”는 의견들을 제시한 바 있다. 일본이 사전제작구조를 고집하는 이유는 드라마 제작인력의 인권을 중시하고 쪽대본 등 즉흥적 제작형태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또한 시청자들과의 피드백 관계형성이 어렵다는 것도 한 이유다.
한국 드라마 한류열풍이 불고 있는 지금 한국드라마의 성공비결은 동시 제작시스템과 시청자들과 피드백 구조형성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끈질기게 집요하고 시청자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점이 한국드라마의 해외경쟁력을 상승시킨 요인이다.
이러한 점에서보면 사전제작제나 반 사전제작 또한 드라마 경쟁력을 떨어뜨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대안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드라마 제작자에 대한 처우 개선이라고 입을 모은다. 드라마 제작을 도맡고 있는 외주제작사에 충분한 제작비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방송처럼 쪽대본을 가지고 촬영을 한다는 각박한 촬영 현장도 방송사 측에서 나오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제작비와 이후에 PPL을 통해 겨우 제작비를 마련하는 열악한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외주제작사의 제작비가 넉넉해지면 현재 발생하고 있는 현장문제들이 상당수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충분한 양질의 인력배치, 기술적 여건등이 향상되므로 스탭들의 노동량에 대한 급여도 적정선 제공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배우들 역시 촬영시간이나 진행시간에 큰 압박을 받게 되진 않을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스파이 명월>을 방영 중인 KBS 측에서 제작 시스템에 대해 사전제작론의 손을 들었다. 지난 19일 KBS드라마국은 KBS시청자게시판에 “항상 사전 제작의 중요성을 절감하면서도 드라마 경쟁에 매여 이를 소홀히 한 면이 없지 않았다”라며 “이번 기회에 완성도와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사전제작 시스템을 새로이 점검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4개에 이르는 신생 종합편성채널의 등장은 이같은 문제들을 호전시킬지 악화시킬지 이목이 집중된다. 드라마 제작 건수가 늘어나고 드라마끼리 더욱 치열한 경쟁체제가 이루어지면 상대적으로 외주제작사들의 위상이 올라갈 것이라는 조명아래 그에 따른 처우도 개선될 것이라 보이는 입장이 있다. 반면 총 제작비의 절반 이상이 출연료로 들어가는 현실에서 몸값 경쟁이 더욱 과열될 것이며, 게다가 제작사들이 부족한 제작 비용을 충당하려 간접광고(PPL)에 더욱 매달리게 될 것이라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한류열풍이 일본을 넘어 유럽과 미주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현 시점에서 대중예술 제작 시스템의 정비는 우리나라 신성장 동력의 확충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사전 제작 등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 대한 구조적인 해법 논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귀추가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