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유지의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김정일 사망을 통해 확인한 무기력한 대한민국의 단면

2012-01-13     정대근 기자

 

대한민국에서 북한이라는 존재는 금기와 증오의 대상이었다. 국제적으로는 오랫동안 지속됐던 냉전 탓이었고, 내적으로는 6.25전쟁과 군사독재의 영향이 컸다. 적어도 1998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첫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때까지 북한은 타도와 흡수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따라서 북한에는 사람이 아닌 ‘머리에 뿔이 달린 도깨비’가 사는 것으로 묘사됐다. 실제 70~8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던 이들은 그렇게 교육받았다.

 

미국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그곳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 북한은 그리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안으로는 주체사상이라는 그네들의 독특한 이념으로 철저히 단결해 있고, 밖으로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핵탄두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내세워 벼랑끝 전술을 펼치고 있다.
세계 최강대국이자, 경찰국가를 자임하고 있는 미국조차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과거 미국의 말을 순순히 듣지 않아서 정권은 물론 국가 자체가 붕괴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최근에는 반미독재로 미국의 속을 썩였던 이라크의 후세인이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휩쓸려 끝내 사형 당했다.
하지만 북한은 6.25전쟁 종료 이후 단 한 번도 미국의 군사적 침공을 당하지 않았다. 무리하게 핵을 개발하고, 공공연하게 전쟁불사를 외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주변 강대국들은 길고 지루한 협상과 회의를 지속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듯 북한의 위상이 남다른 데에는 물론 지정학적 위치가 큰 작용을 한다. 중국, 러시아, 일본이 맞닿아 있는 동북아시아 지역의 요충지인 데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동맹으로 존재하고 있는 탓에 북한을 친다는 것은 곧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건드리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또한 북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에 의해 일체의 교역을 차단 당한 채 20여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고난의 행군’을 이어온 북한이다. 독이 오를대로 올라 있는 상황에서 북한을 자극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것을 최대한의 협상 요소로 활용할 수 있는 북한의 벼랑끝 외교술도 이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특수성과 대외적 위상은 역설적이게도 휴전선으로 맞닿아 있는 대한민국의 소외를 가져왔다. 같은 민족임과 동시에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가장 큰 이해관계로 얽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북한에게 요구하고 조치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전무하다.
전쟁 이후 지난 60여 년 간 미국에 대한 경제, 군사적 의존도가 너무 높았던 탓이다. 그 여파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군사적인 부분에서 더욱 그러하다. 현실적으로 주한미군과 그들의 무기가 한반도에서 철수하게 된다면, 비록 노후한 장비를 갖춘 배고픔에 시달리는 100만 대군이라 해도 막아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탓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북한과 관련된 대부분의 정보는 미국과 상의해야 하는 형편이다. 그 흔한 정보위성 하나를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지 못해 북한 내부의 동향은 미국의 정보위성이 찍은 사진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핵문제를 비롯해 경제, 통일 등 여타의 문제들도 미국의 의지와 결심 없이는 단독으로 행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는 미국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북한의 의지가 그러하다. 심지어 북한 내부에서는 대한민국을 ‘미국의 꼭두각시’ 정도로 여긴다고 한다. 따라서 대북원조 등 그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협상에 나서지만, 정작 북한 체제를 좌우하는 중요한 사안들은 미국과 직접적으로 논의하길 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을 매개로 한 경제협력도 현 정부 들어서 완전히 끊어진 형국이다. 개성공단의 경우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이를 최초로 기획했던 국민의 정부가 추구했던 방향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음이 자명하다.

“TV보고 알았어요”

이렇듯 북한문제에 대한 대미의존도는 이번에 발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사태를 통해 또 한 번 확인했다. 북한정보 수집망이 거의 와해되다시피 한 정부로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직결되는 사안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소식을 이틀이 넘도록 몰랐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북정보라인인 외교통상부, 통일부, 국정원 당국자들조차 “TV를 보고 알았다”는 발언을 해 소나기 같은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내놓는다는 변명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역시 몰랐다”는 것이었다. 이 또한 비난을 면치 못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몰랐어도, 대한민국만은 알고 있어야 했다.

 

야당 등 일각에서는 현 정부들어서 대북정보라인이 완전히 붕괴하고 말았다는 지적을 쏟아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국정원에 대한 인사조치를 단행할 당시, 유능한 대북정보통들을 친북주의자나 반MB성향의 인사로 분류해 낙마시켰다는 의혹도 듣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대북정보망이 정상 가동되고 있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통상 국가 대 국가가 정보를 취합하는 방식은 세 가지 정도로 나뉜다.
우선 정보위성을 통한 사진자료이다. 인공위성을 통해 촬영한 각 지역의 사진을 비교분석해 정보를 취득하는 방식이다. 북한의 영변핵시설이나, 지하기지 등도 이러한 정보위성을 통해 수집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정보위성은 없다. 모든 위성사진은 미국으로부터 제공받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감청이다. 북한 내부에서 유무선으로 주고 받는 통신내용을 남한에서 감청해 이를 정보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북한중앙조선통신이나 TV를 보고 북한 내부의 상황을 가늠하는 것도 이러한 감청의 일부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최근 들어 북한 내부에 광섬유 통신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는 유용하게 쓰이지 못할 전망이다. 다른 통신수단과는 달리 유선으로 연결된 광섬유 통신은 감청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이자, 가장 유용하게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인적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다. 흔히 스파이라고 부르는 간첩을 내부에 심어 놓거나, 탈북자 혹은 북한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중국상인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이다. 앞서 언급했던 방안보다 가장 저렴하고 안전하며 방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적자원의 활용을 휴민트(Humint)라고 하는데, 가장 왕성하게 활용됐던 시기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하던 기간이었다. 당시에는 활발한 남북교류사업을 통해 정부인사는 물론이고 민간차원에서도 많은 방북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수집된 정보를 통해 북한 내부의 실정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대북기조가 강경화 됨에 따라 이러한 휴민트가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2008년 금강산 관광지구에서 발생한 박왕자 씨 피격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은 현재까지 단절된 상태다. 또한 천안함,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인해 남북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경색되어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북한 내부에 사람을 심고, 그로부터 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나라당과 정부가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집권 기간 동안 적지 않은 대북송금과 지원이 이른바 ‘퍼주기식’으로 이뤄진 것도 사실이지만, 현 정부는 ‘퍼주기’를 중단한 대신 10년치의 대북 정보를 통째로 잃어버린 꼴이 됐다.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나면

대한민국이 북한에 대한 통제권을 거의 상실한 상태에서 대북문제는 국제사회의 다자간 협상을 통해 협의점을 찾고 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러한 6자회담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땅, 우리 민족의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미국과 중국 등 다른 국가들과 함께 협의하고 있는 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집안문제에 이웃집 사람들을 끌어와 함께 협상하고 있는 상황이나 다름이 없다.
문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 내부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했을 경우이다. 평시 상황인 현재에도 별다른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데,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한민국 정부와 군대가 얼마나 참여할 수 있으며, 붕괴된 북한의 미래를 짊어질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북한이 급격하게 붕괴할 경우 중국군이 주둔하거나 영토 일부가 중국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풍문이 떠도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 우리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몇 가지 ‘시나리오’에서도 대한민국 단독 작전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의 지원, 혹은 미국에 의해 북한내부를 수습하고 통일을 모색한다는 것이 준비된 방안의 전부라는 것이다. 이것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적어도 북한문제에 있어서는 무기력하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당장 필요한 것은 우리의 협상력을 높이는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 혹은 러시아를 거쳐서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주요 사안들에 대해 북한과 직접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사태로 뜻하지 않게 생긴 기회를 붙잡지 못했다. 정부가 ‘파격적인 조치’라고 자화자찬했던 것들이 북한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12월19일 김 위원장 사망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정부는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북한주민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정부차원의 조의를 표명했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유족들에 한해 방북조문을 허용했으며, 민간 차원의 조전발송도 허용했다.

이 과정에서 국회 차원의 조문단 구성과 민간 조문단의 확대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대해 정부는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했다며 야당과 민간의 요청을 거부했다. 북한은 크게 반발하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자발적 조문을 방해하는 패륜적인 정부”라는 맹비난을 쏟아냈으며, “조문에 임하는 남한 정부의 태도가 향후 남북관계를 결정짓게 될 것”이라는 협박도 내놨다.
물론 현 정부가 지금까지 보여 왔던 대북기조를 생각해 보면 분명 파격적이고 적절한 조치였음에 틀림없다. 다만, 돌파구를 찾지 못해 경색국면을 면치 못했던 남북관계에 흔치 않았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니 만큼 정부가 좀 더 파격적인 조치로 북한을 설득했으면 좋지 않았겠는가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37년 동안 철권통치를 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며, 구시대적 3대 세습이라 할지언정 김정은 체제라는 새로운 시대가 북한에서 열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유화적 조치는 북한에 굴종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 진행하게 될 남북회담 등 대화채널 재가동의 자양분이 되어 줄 것으로 기대 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욱 크다.

이제 북한은 어떻게 될까

국내는 물론 외신들도 온통 북한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권력승계 기간이 짧았던 김정은 체제가 연착륙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런저런 분석과 논평이 쏟아지고 있다.
대략적인 흐름은 우리가 우려하는 ‘급변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지만,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20대이며, 권력승계 준비기간이 짧았던 탓에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여러 가능성은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국상을 당한 북한이나, 이를 지켜보는 대한민국도 차분하게 기간을 넘겼다는 점이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남북한 사회가 똑같이 겪었던 충격과 공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북한주민들은 공식적인 애도기간이 끝난 후 빠르게 일상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대한민국 국민들 역시 전쟁에 대한 우려나 일상이 흔들릴 만큼의 공포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이는 한반도 평화가 어느 정도 정착했다는 증거이며, 남북한의 시민의식이 성숙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머지 부분은 고스란히 남북한 정치가들의 몫이다.

북한의 김정은 부위원장은 ‘아버지의 유산’으로 불리는 핵무기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 국운이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2012년이 김일성 주석 생존 당시 선포한 ‘강성대국’ 원년의 해라는 점에서 김 부위원장의 행보는 더욱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대한민국 정부의 대북기조 또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비록 임기가 1년여 밖에 남지 않았지만, 김 위원장 사망이라는 돌발적인 변수로 올 한 해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급격하게 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대화와 타협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이다. 이는 이념이나 기조로 풀어갈 문제가 아니다. 남북한 7,000만 겨레의 목숨과 한반도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남북한 당국이 진정성을 가지고 만나야 하며 그 속에서 민족의 운명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땅, 우리의 민족문제를 열강의 테이블 앞에서 논의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