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부문 최초의 명장/주용부 대표
2005-10-03 취재/김영권 기자
50여년간 칼에 헌신한 열정으로 단조부문 최초의 명장으로 인정 받아
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지난 21일 산업현장에서 20년 이상 장기근속하고 그 분야 최고 그 분야 최고수준의 기능을 보유한 기능인과 기능인력 양성에 헌신해 온 현직교사, 기능장려 풍토 조성에 앞장선 사업체등을 대상으로 2005년도 명장, 우수지도자 및 기능장려 우수사업체를 선정, 발표하였다. 이번 선정에서는 지난 1986년 명장제도가 도입된 후 최초로 단조에서 명장이 나와 화제가 되었다. 그 주인공은 51년간 칼 만들기 외길을 걷고 있는 용호공업사의 주용부 대표로 현재까지 특허관련 의장등록 12개와 실용신안 14개를 따낸 발명가 이다.
생계유지 위해 칼과 최초 인연 맺어
한국경제는 국민 모두의 힘겨운 노력으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 특히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념의 대립이 막을 내리고 각 나라마다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한 노력이 세계 도처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역시 날로 치열해지는 경제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세계화를 향해 힘차게 내닫고 있다.
우리가 이러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술개발과 함께 우수한 기능인력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그 이유는 기술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국제경쟁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유사이래로 훌륭한 장인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이러한 바람직한 전통이 많이 퇴색된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세계화로의 도전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내일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상실되어가고 있는 장인정신을 시급히 되찾아야 한다. 이에 본지는 50여년간 전통적인 복합강 기술을 이용해 질기고 섬세한 칼을 만들어 국내최초 단조 부분 명장으로 선정된 용호공업사의 주용부 대표를 만나 그의 장인정신에 대해 알아보았다.
생계유지 위해 칼과 최초 인연 맺어
청주가 고향인 단조의 명장 주용부 대표가 그의 평생 동반자인 칼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6.25전쟁때. 아버지가 실종되고 난 후 5남매와 어려운 가정을 꾸려 나가기 위해 ‘대장간을 차리면 부자로 산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대장간을 찾아가 일을 시켜달라고 했다. 당시 14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나이로 체구가 작았지만 그는 조부와 아버지가 씨름대회에서 늘 황소를 타 오는 장사 집안의 피를 이어받아 쌀 한가마니를 번쩍 들어올리는 힘을 가지고 있어 그의 바램대로 대장간일을 하게 되었다.
당시 그는 소나 말발굽에 박는 징 만드는 역할부터 시작해 대장간 일을 배우기 시작하여 9.18서울 수복 후 서울에 올라와 서울 서대문 인근의 대장간에 취직하여 그때부터 칼 만드는 일을 시작 하였다. 당시는 전쟁 통이라 칼을 만들어 싣고 나가면 금방 동이 날 정도로 칼의 수요가 급증하던 시대였다. 주 명장은 그때 칼에 대한 매력을 느껴 자신의 모든 정열을 바치기로 다짐했다. 원료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대라 칼을 만드는 철도 아주 부족하였다. 주용부 명장은 칼을 만들기 위해 전쟁 중 폭격을 당한 비행기 파편이나 철조망 등을 이용하여 열처리를 통해 칼을 만들어 판매하였으나 가짜가 판을 치던 시대라 그냥 강철로 만든 칼이 많이 유통하여 주 명장이 만든 칼은 가격 경쟁에서 밀리게 되었다. 잠시 생산을 중단한 주 명장은 정부의 생활개선 사업 정책과 함께 다시 한번 도약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요리를 통해 생활개선을 하려는 정책이었지만 주방기구 모두를 외국에서 수입해오던 터라 가격도 비쌀 뿐 아니라 한국 사람들에게도 맞지 않아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주 명장은 가격도 저렴하고 한국인에게 맞는 주방기구를 직접 만들어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였다.
단조기법을 통해 최고의 칼을 만들어
단조(鍛造)는 고체인 금속재료를 두들기거나 가압하는 기계적 방법으로 일정한 모양으로 만드는 조작으로 자동차 부속이나 공구 등은 단조를 해야만 부러지지 않고 오래간다. 세계적으로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는 독일이나 일본의 제품들 모두 단조를 통한 복합강으로 칼을 만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칼들은 단조를 할 기술자가 없어 대부분 단조를 통한 복합강 으로 만들지 않고 판에 코팅 작업을 해서 연막기계로 만든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칼들이 잘 들지 안고 휘어지고 부러지는 이유가 그렇다.
단조의 효과를 묻는 질문에 주 명장은 “우리가 즐겨 먹는 김치와 같다. 포기김치를 칼로 자르면 진이 빠져 영양가가 다 빠져 버린다. 그것처럼 음식을 자를 때 칼이 들지 않아 톱질을 하게 되면 영양가가 다 빠져버리는 것이다. 회를 먹을 때 칼이 잘 들지 않으면 축 늘어져 버리는데 모두 영양가가 다 빠져 버린 것이다. 손을 베이더라도 칼이 잘 들면 피가 나지 않는데 그것과 같다. 또한 고기는 씹어야 맛이라는 말처럼 고기는 다져서 입에 들어가야 맛이 나고 영양도 풍부한데 고기 덩어리를 입어 넣어줘 봐야 맛이 나지 않는다. 그것이 칼의 원리다. 칼이 잘 들면 영양가가 새지 않고 음식 안에 그대로 남아 영양 만점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로 명장으로
오늘의 주용부 명장을 탄생시킨 근원은 천성적인 부지런함과 실험정신 이었다. 열정과 노력으로 열처리과정에서 도라지꽃 색깔이 나올 때 칼을 식혀 칼날을 벼리면 칼의 이가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주명장이 생산해내는 칼을 보면 기존의 칼들과 비교 했을 때 다른 세 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칼의 끝부분이 붕어 입 모양으로 되어 있고, 두 번째는 칼에 눈금자가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세 번째는 칼에 요철이 있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모두 주 명장의 연구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칼 끝부분이 붕어입 으로 되어 있는 것은 지난 1960년대 식칼로 인한 살인사건이 빈발하여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살인을 예방하기 위한 차원에서 개발, 특허를 낸 것이고 칼에 눈금이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음식을 만들 때 정확한 치수가 아닌 눈치수로 대충 양을 측정해서 음식을 만들어 왔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년 간 버리는 음식물의 양이 북한동포들이 1년간 먹을 수 있는 양이라는 사실을 알고 음식물 쓰레기를 막기 위해 칼에 눈금을 넣게 되었다고 한다. 눈금이 들어간 칼이 출시된 후 대학의 조리과나 요리전문고등학교에서 이 칼을 사용하게 되어 학생들에게 조리시 “몇 센티미터의 무 몇 개를 만들어라”고 지시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세 번째로 요철을 넣은 것은 음식을 썰 때 칼에 달아 붙어 음식물을 떼어내는데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고자 만들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주명장은 12개의 실용신안과 14개를 따내어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을 말해주고 있다. 50여 년간 최고의 칼 생산을 위해 헌신의 노력을 기울인 주명장이 가장 아쉬운 것은 용호공업사의 제품이 독일이나 일본제품들에 비해 전혀 뒤떨어짐이 없으나 국산품 천시 풍조에 밀려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다. 또한 유사품이 너무 난립하여 정품을 만드는 장인들이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점도 토로하였다. “우리 인간은 철과 같아야 한다. 철은 본질이 좋으면 녹이 들 나고 녹이 나더라도 곱게 난다. 하지만 쇠가 나쁘면 두껍고 넓게 녹이난다. 또한 철은 아무리 녹이 나더라도 수박처럼 속이 깨끗하다. 칼을 만드는 것은 자기가 공들인 만큼 나온다. 공을 들이지 않으면 잘 부러지고 잘 휘어진다. 배워야 하고 연마를 통해 쇠같이 정확하게 부모의 혈을 따라 그대로 간직 할 수 있는 게 쇠다. 쇠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게 나의 인생철학이다”고 말하는 주용부 명장의 말을 통해 진정한 장인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