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외길 배첩장인 안병목 “전통 배첩 비법으로 문화재를 살려야”
배첩은 글씨나 그림에 종이 비단 등을 붙여 액자, 병풍, 족자, 장정, 고서화 등으로 처리하는 우리나라의 전통 공예기술이다. 40년 외길 인생을 걸어온 배첩장 안병목 씨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입찰제도가 아닌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전통 비법의 전문가에게 맡겨 보수와 복원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내 나라 귀중한 문화재 보수를 입찰을 한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우리 문화재 관리의 심각한 현실을 밝히며 속히 개선되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 ▲ 배첩장 안병목 씨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입찰제도가 아닌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전통 비법의 전문가에게 맡겨 보수와 복원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 ||
배첩 기술은 중국 한(漢)나라 때 장황(裝潢) 또는 장배(裝背)라는 이름으로 개발되어 당(唐)나라 때 크게 발전했는데 국내에는 고구려 벽화의 병풍그림에서 보듯이 이미 삼국시대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선시대 초기에는 나라에서 지정한 배첩장이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되어 궁중의 서화처리를 전담했을 정도로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전통 배첩에 힘쓰고 있는 배첩장 안병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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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년 외길 인생을 걸어온 배첩장인 안병목 씨는 우리의 전통공예인 배첩 비법만을 고수하며 계승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힘쓰고 있다. | ||
우리 전통공예인 배첩장으로 40년 외길 인생을 걸어온 안병목 씨는 배첩 비법만을 고수하며 계승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힘쓰고 있는 배첩장인이다.
안 씨는 배첩 분야 무형문화재인 1996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02호로 지정된 고 김표영옹(84·서울)과 충청북도무형문화제 제7호 기능보유자인 배첩장 홍종진 씨의 이수자로 틈나는 대로 관련 서적을 읽으며 우리나라 배첩기술을 익히기 위해 노력해왔다. 특히 그림을 그리는 부인의 내조로 배첩기술의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는 안 씨는 2016년 문화재기능인대회 입상, 문화재수리자격증(문화재청장), 제12회 한국문화재기능인작품전(대한불교조계종) 입상 등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의 이러한 배첩기술력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6일부터 13일까지 개최된 루브르박물관 르살롱전에서 전통 병풍(가리개) 배첩시연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당시 많은 외국인들 앞에서 직접 배첩시연을 선보인 안 배첩장은 관람객들의 극찬을 받았다.
“루브르박물관 르살롱전에 초청을 받아 우리 전통 공예기술을 선보이며 위상을 높여 주었다는 사명에 매우 뿌듯했습니다.”
배첩은 세심함, 기다림, 정성으로
배첩실에 들어서면 문중, 사찰 등지에서 보수·복원을 의뢰한 고서화들이 있다. 빛이 바래서 누렇게 변색된 글씨와 너덜너덜한 그림이 생명 연장을 위해 안 씨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안씨는 “이런 고서화들을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면 생명이 연장되듯이 고서화 역시 훼손 정도가 심하지 않을 때 외발뜨기와 도침으로 만든 우리의 한지와 고풀로 보수해야 본래 상태로 200년~400년까지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습니다”고 말한다.
지난해 청난공신 임득의 장군 영정도 배첩장 안 씨가 보수했다. 만약 떨어져 나가거나 훼손된 그림이나 글씨 등의 일부분에 대해 의뢰자가 새로 그려서 보완해 달라는 요청이 있을 경우에는 전문가에게 의뢰해 보완해 주지만 그런 요청이 없을 때는 원본은 절대 손을 대지 않는 게 안 씨의 작업 원칙이다. 훼손된 부분을 보완할 때도 원본 제작 당시의 연대와 비슷한 종이를 구해 이어붙임으로써 육안으로도 표시나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서로 보관상태가 차이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함은 물론이다.
중요한 문화재나 고서화를 다루는 배첩과정은 세심함, 기다림, 정성이 듬뿍 담길 수밖에 없다. 제작연도가 오래된 병풍 그림은 40℃ 온도의 물에 15시간 정도 불리고 대나무칼로 세심하게 떼어내야 작품에 손상이 가지 않는다.
“오래된 때와 말라붙어 있는 풀을 제거하기 위해선 그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다림이 필요한 순간이죠.”
이 때는 물에 불은 작품을 건드리지 않아야 글씨나 그림이 번지지 않는다. 만약 풀이 녹아내리지 않을 경우에는 물에 소화제를 섞어 풀을 분해시켜야 한다. 이렇게 불린 작품은 조심스레 건져낸 뒤 한지나 신문지로 덮고 솔로 문질러 물기를 빼낸다. 그런 다음에는 그림 뒷면의 풀이나 배접지 등을 모두 떼어내야 하는데 이때 쇠칼을 대면 작품이 손상되기 때문에 대나무칼만을 사용한다. 이어 작품이 그늘에서 마르면 그림 뒷면에 국산 닥나무로 만든 한지를 보통은 4~5회 겹쳐 바르는데 대형 괘불 등은 10회 정도 겹쳐 바르고 속에 삼베까지 넣어야 한다. 이때 한지를 바르는 풀은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배첩은 세심함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숙련의 과정이 이어진다.
10년 숙성된 고품비법 한지를 바르는 풀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안 씨는 10년 숙성된 밀가루 풀을 배첩작업에 사용한다.
“밀가루 풀을 그냥 바를 경우 밀가루에 있는 영양소를 먹는 곰팡이 등이 생겨나고 누렇게 변색돼 작품이 훼손됩니다. 그래서 저는 스승 이전부터 사용돼 오던 전통 방식의 풀을 직접 만들어 사용합니다.”
전통 배접 풀은 밀가루에 물을 붓고 항아리에 담아 두어 곰팡이 등이 서식해 썩게 한다. 이렇게 곰팡이 등이 영양소를 먹으며 썩힌 밀가루 풀의 윗부분 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부어놓는 식으로 1년에 두 세 차례 물을 갈아주며 10년씩 밀가루 풀을 숙성시킨다. 그러면 항아리 아래에는 영양소가 전혀 없는 순수 녹말가루만이 가라앉는 데 이것을 고운체에 걸러 말려놓고 두고두고 사용하는 것이다. 안 씨의 앞마당에는 수십 개의 항아리가 놓여 있다. 지금까지 매년 500㎏씩 숙성시켜 사용하고 있다.
오랜 역사와 전문적인 기술까지 갖춘 우리 배첩 기술로 우리나라 문화재를 보수하고 복원해야 한다고 말하는 안병목 배첩장. 그는 선조들의 중요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일이기에 전통기능을 전수하는 배첩전수교육관을 개관하여 전통의 맥을 계승 발전시키는 사명을 이룩하고자 한다. 그의 이러한 노력이 우리 전통공예의 명맥을 이어오는 데 큰 일조를 하고 있다.
| ▲ 안병목 장인의 배첩기술력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6일부터 13일까지 개최된 루브르박물관 르살롱전에서 전통 병풍(가리개) 배첩시연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당시 많은 외국인들 앞에서 직접 배첩시연을 선보인 안 배첩장은 관람객들의 극찬을 받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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