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이 만든 독특한 정형시의 하나인 시조. 시조는 조선조 일대를 이어온 대표적인 노래였으며 작품수가 2천에서 5천에 이를 만큼 거대하다. 시조를 노래 부른 방식은 15~16세기 까지 가곡의 대엽조(大葉調)에 의지하였고 17세기 이후 가곡의 여러 가지 변태가 생기는 것과 함께 ‘시절가조(時節歌調)’라는 새로운 취행의 악곡이 생기면서 거기에 맞추어 즐겼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고유 문화인 시조가 점점 퇴색되어 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고향에서 시조의 활성화를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인 이가 있다. 늘봄예술촌의 김숙선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우리 민족이 만든 독특한 정형시인 시조(時調)

“시조는 원래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준말이에요. ‘때 시’자를 쓰거든요. 때에 맞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옛것만 고집하다 보면 독자가 사라지잖아요. 시대에 맞는 똑같은 이야기를 하되 시는 운율이나 형식이 조금 자유로움에 비해 시조는 율격이 정형화 된 것입니다. 특히 시조는 시와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시에 비해서 어렵습니다. 일단 시조는 언어가 잘립니다. 시는 할 말 다하면 되지만 시조는 정해진 율격과 군더더기를 자르기 때문에 압축의 아름다움을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시조는 형식이나 운율이 매우 안정적이고 단아하여 유학자나 사대부들이 그들의 사상과 감정을 절제하여 표현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서정 갈래였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3음보 중심이었던 고려 속요가 주도권을 상실하고, 4음보 중심의 시조가 새로운 주도적 시가 형식으로 자리 잡아 가는 우리 시가사의 변모과정은 시가의 주된 담당 계층이 서민층에서 사대부층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과 맞물려 있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자들에게서는 발랄하기는 하지만 사물을 깊이 있게 추구하기에 부적당한 3음보의 노래보다는 균형감과 안정감이 있는 4음보의 노래가 그들의 사고방식에 더 적합했던 것이다. 그 후 우리고유의 ‘얼’인 시조는 3장 6구 12음보로 함축하여 가곡으로도 불리고 있다.
“우리와 문화가 비슷한 일본의 경우, 하이쿠라는 것이 있는데 하이쿠는 외국에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비해 시조는 아직 인지도가 낮은 편입니다. 때문에 우리 국민 모두가 시조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고유 문학인 시조를 재평가하다


고향인 고성에 시조의 텃밭을 만들고 싶습니다
고성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결혼생활을 하다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며 시조문화의 저변확대와 활성화를 갈망하고 있는 김숙선 대표는 지난 11월에는 고성군 초등학생들의 문학적 소양함양과 시조능력 배양을 위한 ‘제1회 늘봄예술촌 시조문학상 학생백일장’ 대회를 개최 했다. 이날 백일장에는 고성초등학교, 대성초등학교, 철성초등학교, 사천초등학교 학생 120여명이 참가해 ‘엄마’와 ‘구름’이라는 시제로 실력을 겨뤘다. “우리 고유의 문학인 시조를 알리기 위해 관내 4개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생백일장을 개최 했습니다. 행사를 준

비하면서 학생들이 많이 참가하지 않을까 다소 우려도 했지만 많은 분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해 주어서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날 행사에 이우걸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이 참석해 축사와 심사위원장으로 고성 지역의 시조문화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제1회 늘봄예술촌 시조문학상 학생백일장’ 행사비를 고성문화원에서 모시꽃 강의를 통해 받은 수당 전액을 포함한 개인 사비를 들여 행사를 개최해 재능기부의 모범으로 지역사회에서 극찬을 받기도 했다.
“‘제1회 늘봄예술촌 시조문학상 학생백일장’이 고성군 학생들에게 시조문학을 알리는 도화선을 하는 역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시조문학이 점차 잊혀져가고 있는 가운데 고성에 ”우리의 얼“의 씨앗을 뿌려 ‘예술의 고성’이라는 밭을 일구고 싶습니다”라고 전하는 김숙선 대표. 그의 바람처럼 지금은 비록 걸음마 단계이지만 그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우리 고유의 문학인 시조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김숙선 대표의 행보에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