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동화] 질문하는 일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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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동화] 질문하는 일개미
  • 편집국
  • 승인 2017.05.1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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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성은 아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고되고 바쁜 삶을 살아가면서 그 마음을 잃었을 뿐 내면 깊숙한 곳엔 잃어버린 순수성이 잠들어 있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고 즐겁다. 본지는 어린이 책 작가교실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 한 편씩을 소개해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으로 바라 본 세상을 전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바쁜 일상으로부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삶의 여유를 가지길 바란다. <편집자 주>

 
질문하는 일개미
                                                                                                                                                      김양경
“하나 둘, 하나 둘”
수천만 마리의 개미들이 구령 소리에 맞춰 일을 했어요. 나란히 줄을 서서 집을 지었어요. 개미들은 쉬지 않고 흙을 파고, 날랐어요. 하루 온종일 일을 하고, 다음 날에도 또 일을 했어요. 방 하나를 만들고 나면, 방 하나를 또 만들었어요.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갔어요.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구해 왔어요. 나뭇잎, 열매, 곤충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물어왔어요. 진딧물 목장에 가서 진딧물을 돌보고 단물을 짜 오는 일도 했어요. 그런 일개미들 중 한 마리, 큰머리개미는 문득 이런 질문을 했어요.
‘나는 왜 늘 일만 하는가?’
일개미들은 하루에 딱 20분만 잠을 자고 종일토록 일만 했으니까요. 큰머리개미는 같이 일하러 가는 동료 붉은 턱 개미에게 물어보고 싶었어요. 개미들은 이름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불렀어요.
“얘, 얘, 턱이 붉은 개미야?”
붉은 턱 개미 말고도 다른 개미들까지 수천 마리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어요. 그리고 동시에 물었어요.
“나? 나 말이야?”
큰머리개미가 자기 옆에 있는 붉은 턱 개미를 향해 더듬이를 가리키며 대답했어요.
“응, 너, 붉은 턱 말이야.”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을 안 다른 일개미들은 하던 일을 계속했어요. 붉은 턱 일개미가 물었어요.
“왜?”
“나는 왜 일만 하며 살아야 하는 거야? 그게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불렀어.”
“응? 왜 일만 하며 살아야 하는 거냐고? 그게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불렀다고?”
붉은 턱 일개미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는 않고 큰머리개미가 묻는 말을 똑같이 되묻기만 했어요.
“응, 그래. 왜 나는 일만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야?”
아는 게 없었던 붉은 턱 개미는 고개를 갸우뚱 대었어요.
“왜 그럴까?”
그러다 문득 더듬이를 치켜세우며 되물었어요.
“그런데, 너는 그게 왜 궁금한데? 배고프니?”
“아니, 그건 아니야.”
붉은 턱 일개미는 머리를 몇 번 더 갸우뚱 대더니 물었어요.
“배가 고프지 않은데 왜 질문을 하지? 난 잘 모르겠어. 대장 개미에게 물어 보자. 우리는 뭐든지 대장 개미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붉은 턱 일개미는 이렇게 말하면서 대장 개미 쪽으로 더듬이를 쭉 뻗었어요. 큰머리개미와 붉은 턱 일개미는 대장개미에게 갔어요. 대장개미는 무척이나 바빴어요.
“대장님, 질문 있어요.”
대장 개미는 너무 바빠서 큰머리개미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대답했어요.
“응, 질문이 있다고? 배가 고픈가 보구나. 우선 좀 먹어라. 저 쪽에 지렁이 고기가 있단다.”
붉은 턱 일개미는 지렁이 고기를 보자 콧구멍을 벌렁대었어요. 그러나 큰머리개미는 지렁이는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 질문을 했어요.
“대장님, 질문을 하려고 하는데 왜 지렁이 고기를 먹으라고 하나요?”
대장 개미는 하던 일을 놓지 않은 채로 대답했어요.
“먹을 것이 풍부하면 됐지, 뭐가 문제란 말이냐? 배가 고프지 않다면 아무 문제도 없는 거잖아. 중요한 건, 먹을 것이란다. 먹을 것만 풍부하면 문제가 없단다.”
대장 개미는 하던 일을 매우 능숙하게 잘 해 내면서도 노래하듯이 말을 했어요.
“개미들은 항상, 일을 하지.
쉬지 않고 일을 하지.
일을 하면 먹을 것을 구하지.
일을 하면 배고프지 않지.”
이 다음 부분부터는 붉은 턱 개미도 같이 합창을 했어요.
“우리는 위대한 일개미라네.
우리는 먹을 것을 구하는 일개미라네.”
듣다보니 이 노래는 큰머리개미도 잘 아는 노래였어요. 아침마다 대장 개미가 앞부분을 부르면 수천만 마리의 일개미가 뒷부분을 따라 불렀던 노래였어요. 붉은 턱 일개미는 맛있게 지렁이 고기를 뜯어 먹으면서 대장 개미가 부르던 노래를 이어 불렀어요.
“위대한 개미 제국엔 먹을 것이 넘쳐나지.
겨울에도 우린 배고프지 않다네.
우리들은 게으름뱅이가 아니라네.
일을 하라, 일하라.”
큰머리개미는 잠깐 동안 생각을 하느라 움직임을 멈추더니 말했어요.
“일이 중요한 거니까 일을 하면서 사는 거로군요.”
“그렇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일이란다. 질문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단다. 배고프지 않다면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큰머리개미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러고 보니 배가 고파서 그런 것 같기도 했어요. 큰머리개미는 지렁이 고기를 배불리 먹었어요. 그리고 다시 일하던 곳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일을 했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큰머리개미도 늙었어요. 매일매일 똑같은 일만 하고 살았지만 후회는 없었어요. 일하고, 또 일하고, 일만 했지요. 하루에 딱 20분씩 잠을 잤을 뿐, 종일 일만 했어요. 그러다 일이 너무 힘이 들 때면 가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일을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지만, 오래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 답을 딱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일은 중요한 거니까,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아주 가끔 큰머리개미의 머릿속에서 질문이 생길 때가 몇 번 있었어요. 여느 때처럼 온종일 일을 하고 지쳐 집으로 돌아갈 때였어요. 여느 때처럼 궁전에서는 요란한 음악소리와 웃음소리가 났답니다. 왕자와 공주 개미들이 아늑하고 따뜻한 방에서 종일 먹고 춤추며 노는 소리였어요. 늘 듣는 소리였고, 늘 보는 광경이었는데 큰머리개미는 그날따라 질문을 했던 거지요.
‘저들만 사랑놀이를 하는 거지? 나는 사랑하면 안 되나?’
하지만 질문일 뿐이었어요. 큰머리개미는 오랫동안 고민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너무 피곤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여름 오후였어요. 그 날도 큰머리개미는 일을 했어요. 등에 제 몸집보다 훨씬 커다란 딱정벌레 껍데기를 지고 길을 가다가 풀잎 아래에서 잠깐 쉬었어요. 나이가 들어서 예전처럼 빨리 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때 낯선 소리가 들렸어요. 이곳은 큰머리개미가 하루에도 수백 번도 넘게 지나다니던 길이었어요. 그 동안 단 한 번도 이런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지요. 그런데 오늘은 낯선 소리가 들렸어요. 큰머리개미는 처음엔 움찔 놀라서 더듬이가 쭈뼛 섰어요. 가만히 냄새를 맡아 보니 익숙한 냄새였어요.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래서 잠시 더 귀를 기울였어요. 가만 들으니 가슴이 울렁대는 것 같았어요.
‘쓰르르스, 쓰~, 쓰르르쓰, 쓰~’
큰머리개미는 소리 나는 쪽으로 갔어요. 일개미들과 먹잇감으로 모으러 다녔던 초록색 베짱이였어요. 그러나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베짱이를 본 일은 거의 없었어요. 베짱이의 몸은 푸른빛으로 반짝였어요. 베짱이가 내는 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울렁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베짱이는 하늘을 노래하고 있었어요. 큰머리개미는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파란색 하늘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어요.
‘아~.’
하늘을 보니 베짱이의 노래가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큰머리개미의 마음은 더욱 부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베짱이의 노래를 더 듣고 싶었지요. 그러나 큰머리개미는 다시 일감을 쥐었어요. 해야 할 일을 앞에 두고 머뭇거릴 수는 없었으니까요. 큰머리개미는 딱정벌레 껍데기를 푹 덮어 쓰고 가면서 생각했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는 처음이야. 나도 이 일을 끝내면 노래를 더 들으면서 쉴 수 있을까?’
베짱이는 노래를 불렀어요. 해가 질 때까지요. 그러나 큰머리개미는 돌아오지 못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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