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성은 아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고되고 바쁜 삶을 살아가면서 그 마음을 잃었을 뿐 내면 깊숙한 곳엔 잃어버린 순수성이 잠들어 있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고 즐겁다. 본지는 어린이 책 작가교실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 한 편씩을 소개해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으로 바라 본 세상을 전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바쁜 일상으로부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삶의 여유를 가지길 바란다. <편집자 주>
청개구리 인형
이연숙
‘뽑기 기계다.’
기계 안에는 볼이 빵빵한 아기 인형과 곰 인형, 토끼 인형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집게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집게가 흔들릴 때마다 마음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순간 한 번만 더 뽑기 게임하면 혼낼 거라던 엄마 잔소리가 떠올랐다. 덩달아 딱 한 번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너 아주 재미 들렸냐?”
언제 왔는지 민석이가 학원 가방을 휘두르며 말했다. 민석이는 일 학년 때부터 오 학년인 지금까지 계속 같은 반이었다. 나는 민석이가 다가오는 것을 경계했다.
“안 해. 우리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어.”
“너 엄마 말 안 듣는 청개구리잖아. 저기 저 인형이랑 똑같은.”
나는 민석이가 가리키고 있는 인형을 쳐다봤다. 초록색도 아니고 푸르딩딩한 색깔의 청개구리 인형이 보였다.
“저 청개구리 인형 말이야. 건드리기만 해도 떨어지겠다.”
“민석이 너 하고 싶으면 네 돈 가지고 해.”
“나 돈 없어. 의혁이 넌 돈 있냐고.”
“천 원 있긴 한데. 알림장 사야 돼.”
나는 청개구리 인형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민석이가 동전을 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진짜 하려고? 혼난다며. 너 중독이냐?”
“내가 왜 중독이야? 나 중독 아니야.”
“누가 뭐래. 그냥 물어본 거야.”
“너도 하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니까 더 하고 싶었다. 청개구리 인형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집게로 툭, 쳐서 떨어지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거였다. 나는 오백 원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슬쩍 민석이를 쳐다봤다.
“할까?”
“할래?”
“그럴까?”
“하던지.”
“너 때문에 한다.”
오백 원을 꺼냈다. 그리고 뽑기 기계 안으로 밀어 넣었다.
딸깍.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온몸이 털이 사르륵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손바닥을 마주 대고 비볐다. 마음이 자꾸만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금방이라도 몸이 둥실 떠오를 것 같았다. 집게를 움직일 수 있는 레버를 잡았다. 기회는 한 번이었다. 레버를 이용해 집게를 뒤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야 좀 더 가야지.”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의혁이 너 저 청개구리 뽑으려는 거 아니야? 그럼 좀 더 가야지.”
“아니야. 내가 알아서 한다고.”
턱!
갑자기 집게가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민석이랑 싸우는 동안 집게를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지난 것이다. 집게가 입을 쫘악 벌렸다가 접었다. 예상대로라면 청개구리 인형을 잡았어야 했다. 하지만 집게는 아무 것도 끌고 오지 못했다.
“네가 끼어들어서 놓쳤잖아. 오른쪽으로 너무 가서 놓쳤잖아.”
민석이는 자기가 더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그게 왜 나 때문이야. 오른쪽으로 간다고 잡을 거 같아.”
“잡으면 어쩔 건데. 백 대 맞을 거야?”
“잡고나 말해. 잡지도 못하면서.”
나는 화가 나서 기계 안에 남은 오백 원을 넣었다. 그리고 레버를 움직였다. 집게가 아래로 내려가면서 입을 좌악 벌렸다. 집게가 청개구리 인형의 머리를 움켜쥐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기우뚱!
청개구리 인형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잘난 척하더니 그럴 줄 알았어.”
“뭐야. 이게 너 때문에 그런 거잖아. 네가 하자고 했잖아.”
난 화가 나서 뽑기 기계를 발로 찼다. 다행히 주인아줌마에게 걸리지는 않았다. 아줌마는 텔레비전을 보며 혼자 중얼거리기만 했다.
“하라는 나랏일은 안하고 하지 말아야 할 짓만 하더니 결국 야단맞고 쫓겨났네.”
나는 아주머니의 말에 와락 겁이 났다. 진짜 야단맞고 쫓겨나면 어쩌지. 자꾸만 걱정이 되었다. 민석이는 이런 내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학원 시간 다 됐다는 말만 했다.
“이제 너랑 다시는 노는가 봐라.”
나는 민석이의 뒤통수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두 안 놀아. 넌 친구도 아니야. 맨날 인형이나 뽑아라.”
민석이는 혀를 삐죽 내밀더니 냉큼 학원으로 가버렸다. 나는 그제야 알림장 살 돈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돈을 다 써버리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엄마가 꼭 알림장 사오라고 했는데. 더구나 뽑기 게임으로 전부 날린 걸 알게 되면. 어휴, 상상만 해도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오백 원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나는 상상이 저절로 됐다.
‘문방구 아저씨한테 사정해볼까. 아니다, 줄 리가 없지.’
그래도 혹시나 싶어 문방구에 가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문방구 문이 닫혀 있었다. ‘외출 중’이란 쪽지가 문에 붙어 있었다. 옳다구나 싶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천 원은 사 먹으면 안 되냐고 물어봐야지. 은근슬쩍 사먹었다고 하면 모르겠지. 크크크 웃음이 나왔다.
“엄마, 문방구 문이 닫혔어. 알림장 못 사.”
“엄마, 지금 밖에 나와 있으니까 엄마가 사가지고 갈게.”
“그럼 천 원은?”
“천 원은 왜? 다시 가져와야지.”
“내가 그냥 사먹으면 안 돼?”
“그냥 가져와. 너 말하는 거 보니 벌써 천 원 썼네. 뽑기 게임하느라 쓴 거 아니야? 척 봐도 뽑기 했어. 엄마가 오늘은 그냥 안 넘어갈 거야. 얼른 집에 와.”
정말이지 엄마를 속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알림장을 샀다면 남은 돈은 내 건데. 괜히 뽑기 게임을 해서 돈도 잃고 야단맞고 쫓겨나게 생겼다. 자꾸만 후회가 됐다.
‘아, 다시는 인형 뽑기 하지 말아야지.’
나는 속으로 다짐하며 길을 건넜다. 멀리 뽑기 기계와 그 안에 수북하게 쌓인 인형들이 보였다. 그리고 민석이가 뽑기 기계 앞에 서 있는 것도 보였다. 학원에 간다더니 왜 저기 서 있는 것일까? 다시는 안 논다고 했지만 너무 궁금했다.
“민석아, 거기서 뭐해?”
“학원 쌤 오늘 아프대. 야, 축구나 하러 갈까?”
나는 축구라는 말에 귀가 번쩍했다. 그래, 하며 뛰어갔다.
“내가 너랑 축구 하려고 아까부터 기다렸어.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냐?”
민석이가 어깨동무를 하며 물었다. 역시 친구가 최고였다.
